프랑크푸르트를 뒤덮은 승리의 세리모니

[무작정 떠난 러시아-유럽여행 42] 독일 월드컵 4

등록 2007.07.13 08:29수정 2007.07.13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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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로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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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 1 승리를 알려주는 전광판 ⓒ 박동구


따가운 햇살과 경기장 가득 들어찬 응원단의 열기에 천장이 막혀있는 프랑크푸르트 경기장은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계속된 응원으로 이미 쉬어버린 목에다 이런 온도가 더해지니, 갈증을 세 배쯤 더 느끼게 했다.

전반이 끝난 쉬는 시간, 이런 갈증에도 현기와 동구 형에게 맡은 짐 때문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응원하시느라 힘드시죠? 맥주 한 잔하세요.”

내 옆자리의 처음 보는 사람이 그렇게 맥주를 한 잔 권해주는데,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너무 고마웠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맥주잔을 받아들고, 서로 응원하느라 너무 수고했다는 말도 건넸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분도 내 생각처럼 오늘의 전반전이 너무 답답하셨단다. 하긴 토고전 전반전을 본 경기장의 한국을 응원하는 모든 사람들, 늦은 시간 한국에서 보고 있을 국민 모두가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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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페인팅을 한 한국 응원단 ⓒ 김현기


하지만 또 한 가지, “오늘 질 것 같지는 않아요”라는 내 말에, “아니요. 오늘 분명히 이깁니다. 후반에 난리가 날거에요”라는 확신의 찬 말이 돌아왔다. 그랬다. ‘질 것 같지 않다’는 소극적인 표현을 했지만 사실 내 생각도 ‘분명 오늘 이긴다’는 뭔가 모를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도 이 경기를 보고 있는 한국을 응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일치된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시원한 맥주 한 잔과 함께 하고 있을 때쯤 전광판에 ‘Sold Out’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전반을 볼 때 거의 꽉 차 보이기는 했지만, 드문드문 빈 자리가 있었는데, 티켓이 매진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경기장 입구에서까지 암표를 팔던 암표상과 예매는 했지만 여기까지 못 온 사람들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시아 팀과 아프리카 팀의 경기가 유럽에서 매진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이 메시지는 경기장의 있는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메시지와 함께 “와~~!!!” 하는 소리가 났고, 전반의 약간 힘 빠진 경기와 휴식시간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한 번에 정리되며, 다시 “대~~한민국!!” 하는 응원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뒤로 쉬는 시간은 없었다. 응원이 계속되었고, 경기가 시작될 때쯤엔 더 큰 소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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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응원하는 외국인 ⓒ 김현기


후반 시작을 위해 선수들이 다시 입장하자 ‘응원 소리는 더 커졌다’ 그런데 어디서 “어? 안정환 아니야?” 하는 소리가 났다. 나도 보는 순간 ‘안정환이다’ 하는 생각이 들며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후반이 시작되고 교체선수로 “안정환”이란 이름이 들리자 환호소리는 더욱 커졌다.

감사한 맥주 한 잔부터 마치 지금 막 경기를 시작한 듯한 응원과, 후반이 되자 정말 꽉 들어찬 경기장, 그리고 안정환의 교체출전까지 뭔가 승리를 위한 공식이 만들어지는 느낌이었다.

첫 골! 두 번째 골!! 그리고 원정 첫 승

전반전 매섭게 한국을 몰아치던 토고전사들은 갑자기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 선수들은 전반전의 고양이 모드에서, 대표팀 상징처럼 호랑이로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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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고전 첫 골 된 이천수 선수의 프리킥 ⓒ 박동구


그리고 후반 10분경, 드디어 일이 벌어졌다. 소속팀에서처럼 부지런히도 움직이던 박지성이 토고의 페널티에어리어 바로 근처에서 파울을 얻어냈다. 더구나 파울을 범한 그 선수는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하게 되었다. 응원석에서는 난리가 났다. “박지성!! 박지성!!” 하는 응원소리와 “골~~~. 골~~. 골! 골!” 하는 응원이 토고 골키퍼 뒤로 무섭게 울려 퍼졌다.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이천수의 킥이 공을 때리는 순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골’이었다! 선수들은 뒤엉기고, 응원석은 정말로 난리가 났다. 처음 보던 우리 자리의 사람들이 모두 부둥켜안았고, 여자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 응원소리는 더욱 켜졌다. 경기장을 뒤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런 일방적인 응원이 불편했는지, 독일 사람들의 토고 응원도 소리를 높여갔는데, 나중에는 우리의 응원소리를 뒤덮으려는 듯, 우리의 응원에 맞춰 휘파람을 불어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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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골에 환호하는 응원단 ⓒ 김현기


하지만 이미 광란모드에 들어간 우리들에게 그깟 장애가 문제될 리 없었다. 상대편 방해 소리가 심해질수록 우리의 응원은 더욱 열기를 더해갔고, 그런 응원에 기가 죽은 듯한 토고선수와 반대로 점점 더 활기차지는 우리 선수들이 대비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후반 30분경 드디어 역전골이 터졌다. 주인공은 기대했던 대로 안정환이었다. 관중석은 열기를 넘어 불타오르는 지경이었고, 다들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한 토고선수들의 매서운 반격과 마지막 공격기회를 시간끌기로 돌리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경기는 그렇게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승리의 세리모니, 프랑크푸르트를 뒤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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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후, 승리 메시지를 펼치는 응원단 ⓒ 김현기


승리에 취한 우리 응원단은 경기장을 쉽사리 빠져나가지 못했다. 이곳저곳에서 풍악이 울리고, 둥글게 모여 계속 응원을 하였다. 얼굴 모르는 사람들도 모두 얼싸 안고 기뻐했고, 다들 쉰 목소리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한국인이 아닌 응원단들도 우리만큼이나 기뻐하고,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너무나 신나게 노는 우리들 틈에 끼어 불분명하지만, 사랑스러운 응원을 같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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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나도 계속되는 응원 ⓒ 김현기


경기장을 빠져나가는데 한 1시간은 걸린 것 같다. 5시쯤 경기가 끝났지만, 경기장 앞 트램 역까지 걸어가니 6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거기서도 승리의 세리모니는 그칠 줄 몰랐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앞은 이제 용산구 이태원동 프랑크푸르트 거리 수준을 넘어, 아예 한국이 되어 있었다. 외국인은 정말 드문드문 보였고, 길거리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거의 한국인이었다.

여기서도 길을 걷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면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인사를 했고, 모두 반갑게 답해주었다.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는 그날 밤에도 계속되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이곳이 신촌거리 어디쯤, 종로 어디쯤이 되어있었다.

소주는 없었지만, 맥주를 들고 서로 즐겁고 신나게 건배를 했다. 여전히 이 사람들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그날 프랑크푸르트는 우리를 위한 완벽한 결론으로 끝났다. 그리고 그런 날을 기념하기 위한 우리의 세리모니는 다음날이 되도록 멈출지 몰랐다.

단 안타까웠던 점이라면, 그날 너무 흥분해 마임강변에 있는 분수대에 태극기를 꽂았다는 아저씨. 사실 분수대에 태극기 꽂은 부분이 고장 나고 파손 됐답니다. 조금 덜 기뻐하셨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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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세리모니를 펼치는 풍물응원단 ⓒ 김현기

덧붙이는 글 | 중동부 유럽 정보는 지역의 특성상 다른 자료를 통해서도 많이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여행기는 독일월드컵 이야기와 함께, 유럽 중에서 제가 경험한 특별한 이야기와 흔히 잘 소개되지 않는 여행지를 중심으로 소개 하겠습니다. 

지난 2006년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약 3개월간의 즐거운 여행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다음 기사는 7월 17일(화요일)에 이어집니다. 

사진을 제공해주신 김현기, 박동구님께 감사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중동부 유럽 정보는 지역의 특성상 다른 자료를 통해서도 많이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여행기는 독일월드컵 이야기와 함께, 유럽 중에서 제가 경험한 특별한 이야기와 흔히 잘 소개되지 않는 여행지를 중심으로 소개 하겠습니다. 

지난 2006년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약 3개월간의 즐거운 여행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다음 기사는 7월 17일(화요일)에 이어집니다. 

사진을 제공해주신 김현기, 박동구님께 감사드립니다.
#독일 월드컵 #유럽 #독일 #토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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