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홍보처의 엠바고 제재 '역주행'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행정편의주의에 빠진 참여정부

등록 2007.08.07 11:04수정 2007.08.0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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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8일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국회 문광위에 출석해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대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국정홍보처가 '취재지원에 관한 기준안(총리 훈령)'을 만들었다. 국정홍보처 차장과 각 부처 정책홍보관리관들로 '취재지원 운영협의회'를 구성하고, 이 협의회가 비보도와 엠바고(보도유예) 설정 권한은 물론 비보도·엠바고를 어긴 언론사에 대한 제재권한까지 갖도록 했다.

정부가 정한 비보도·엠바고를 파기한 언론사에 대해 보도자료 제공이나 인터뷰를 거부하는 등의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얼핏 봐선 큰 차이가 없다. 정부가 비보도나 엠바고를 요청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제재도 있었다. 특종 욕심 때문에 비보도·엠바고를 깬 기자에게 출입 정지나 기자간담회 참석 금지와 같은 제재를 가한 적도 다반사였다. 슬쩍 봐선 국정홍보처의 '취재지원에 관한 기준안'은 이런 질서를 제도화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현격하게 다르다. 역주행이다.

엠바고를 왜 정부가 결정하나?

비보도·엠바고를 최종 결정하는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언론이다. 비보도·엠바고를 깬 기자에게 제재를 가하는 주체 역시 동료 기자들이다. 정부는 단지 '요청'했고, 동료 기자들의 제재를 '수용'했을 뿐이다.

국정홍보처는 이런 질서를 뒤집으려 한다. 질서를 제도화하는 게 아니라 전복하려 한다.

이러면 균형이 깨진다. 행정편의주의에 빠지기 쉬운 정부를 견제하면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언론사간 과열경쟁을 방지하면서 행정의 효율성을 견인하는 균형 잡힌 질서가 깨진다.

균형이 깨지면 힘이 쏠리고, 힘이 쏠리면 독단이 횡행한다. 이는 자연의 이치다.

엄밀히 볼 필요가 있다. 비보도·엠바고는 정부와 언론이 끊임없이 벌여온 '사실논쟁'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비보도·엠바고 대상이 되는 정보는 대개가 정부에 의해 발표되는 것들이다. 사실성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질 여지가 거의 없는 것들이다.

이런 정보에 대해 국정홍보처가 손을 대려 한다. 그럼 뭐가 달라질까? 속도가 달라진다. 정보유통 속도가 달라지고 그에 비례해 정보유통 범위가 달라진다.

또 하나의 상식을 환기하자. 똑같은 정보라도 언제, 어느 상황에서 공개되느냐에 따라 그 파장이 달라진다.

정부가 비보도·엠바고 설정권한을 갖게 되면 파장을 조절할 수 있다. 최소한 특정 정보가 여러 상황과 맞물려 상승효과를 나타내는 현상을 제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정보공개의 전략적 조율이 가능해진다. 정보공개 의무를 다 하면서도 정보공개에 따른 여파를 최소화할 수 있다.

되짚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알권리라는 신성불가침의 기본권도 현실 영역에 진입하면 모습을 달리 한다는 사실이다. 무엇을 알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언제 알 것인가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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