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258회

등록 2007.08.24 09:52수정 2007.08.2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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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곤은 지금껏 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의가 보주를 찾아오자마자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일까?

“성곤까지.....? 이 친구들 약속을 했나? 하기야 오히려 같이 술 한 잔 나누는 것이 좋은 일이지. 어서 모시거라.....”

보주가 진정으로 기쁜 듯 약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리며 덩치 큰 성곤의 모습이 보였다.


“이 친구들.... 나만 따돌리긴가?”

자못 섭섭하다는 듯 성곤이 너스레를 떨자 보주가 껄껄 웃었다.

“아닐세.... 아니야.... 오늘은 아이들하고 한 잔 하고 싶었다네...”

“어서 오게.... 지금까지 주작각에 있었던 겐가?”

중의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제자들을 물리고 운중과 단 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성곤이 온 이상 틀려버린 것이다.


“자네 빼고 늙은이들이야 의례 초저녁잠이 많지 않은가? 더구나 낮에 술을 좀 과하게 마셨더니 졸립더군....”

지금까지 주작각에서 자고 있었단 말이다. 그렇다고 폭발음까지 모르고 잤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그것을 따지고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자.... 그렇게 서있지 말고 앉게.”

빈 자리야 서너 개 되었지만 보주의 좌측에 앉아 있던 장문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리로 앉으시지요. 어르신들께서 오실 줄 알았으면 자리를 비워두는 건데 생각이 짧았습니다.”

대개 중요한 손님은 주인의 좌우양쪽으로 모시는 것이 예의다. 장문위는 중의와 성곤이 오자 오히려 잘 되었다는 표정이었다. 이 자리를 떠날 기회를 기회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성곤이 손을 홰홰 저었다.

“아니야.... 자네가 앉아.... 나는 이 자리가 편하군.”

성곤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중의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어느새 준비했는지 따라 들어온 미려가 쟁반에 수저와 접시, 그리고 술잔을 가져다 놓고 있었다.

“그래도..... 어르신께서....”

“허....괜찮다니까...... 어서 앉게. 일어난 김에 술이나 한 잔 따라주든지. 어... 저 친구들 잔도 비었구먼... 이런 날이 아니면 언제 고제자의 술 한 잔 받아 보겠나? 허헛....”

성곤은 이상하게도 다른 때보다 더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좀처럼 자신의 의견도 제시하지 않는 성곤이지만 또한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것도 성곤이었다. 무엇이 그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이러한 자리가 너무 즐거운 것이어서 기분이 들떠 있는 것일까?

“잔을 올리는 일은 오히려 제게 영광입니다.”

장문위는 사부의 잔에 술을 채우고는 중의....그리고 성곤의 잔에까지 술을 따랐다. 그리고는 사부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부님.... 두 분 어르신께서 오셨으니 제자들은 이만 물러가 봐도 될런지요...?”

그렇지 않아도 자꾸 중의의 눈치가 보인다. 그것은 장문위 뿐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중의가 천천히 고개를 끄떡이는데 반해 성곤이 술을 죽 들이키고는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고는 말했다.

“자네는 지금 밖이 몹시도 궁금한 모양이로군. 그렇기도 하겠지.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 일게고....”

목소리는 조금 전과 전혀 다르게 아주 나직했다. 꾸짖거나 나무라는 말이 아님에도 장문위를 비롯해 다른 제자들 역시 속내를 들킨 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런 뜻이 아니라.... 어르신들 말씀 나누시는데 저희가 방해가 되지 않으라 하여....”

장문위가 약간 당황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말을 맺지 않고 끌었다. 성곤이 장문위가 들고 있던 술병을 뺏듯이 낚아채어 다시 자신의 잔을 채웠다.

“특히 자네는 더욱 궁금하겠지. 양쪽에 발을 걸쳐놓았으니 상황에 따라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려면 얼마나 고심을 해야 하겠나? 더구나 이제는 결정을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시기이지.”

성곤의 말에 장문위의 얼굴색이 변하고 있었다. 붉은빛이 떠올랐다가 서서히 탈색되어가고 있었다. 다른 제자들의 얼굴에도 변화가 일고 있었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 자네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밖에서 일어나는 한 순간의 상황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여기에 있으니 답답하기도 하겠지.”

성곤은 옆에 서있는 장문위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자신이 따라놓은 술잔의 호박색 술에 가있었다. 마치 장난치듯 잡고 있는 손을 약간씩 움직여 술이 넘칠락 말락 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운중보의 허수아비 보주자리가 무에라고.....? 자신의 믿음과 신의를 버려가면서 양쪽에 타협을 했더냐? 허헛.... 물론... 다른 사람들은 그러더구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뒷통수에 묵직한 둔기가 내려치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왔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어르신.....”

반드시 사부의 후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나서지 않고 자신의 존재만 각인시키며 기다려왔다. 허허실실의 태도를 견지하며 그 어느 쪽과도 손을 잡을 준비를 했다. 그의 생각대로 어디든 자신과 손을 잡기를 원했다.

물론 그 대가는 자신이 원하는 그 자리의 보장이었다. 항상 어느 쪽에든 확답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네 탓만도 아니겠지. 가문의 기대와 사내라면 가져야 하는 목표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열망이 너를 눈 뜬 장님으로 만들었겠지. 또한 사부를 비롯한 어른들이라는 작자들이 너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것이고.... 허나 어제 내가 자네에게 말했지? 이제 자네가 나설 때라고....”

“.............!”

애써 부인했지만....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곤의 말이 그저 움직이지 않는 사부를 대신해 자신에게 나서라는 것으로만 알았다. 허나 그것이 아니었다. 성곤은 자신에게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것이었다. 더 늦기 전에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던 것이다.

“그만하게....”

뜻밖에도 보주가 나섰다. 자신의 제자가 야단을 맞는 것이 보기 싫었던 것일까? 한 마디 하고는 술잔을 훌쩍 비웠다.

“사부님.... 불충한 제자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못난 소리.... 이 사부도 그렇고.... 너희들을 당당히 탓할 사람은 없다.... 지금 네가 부끄럽다면 왜 부끄러운지를 깨닫고 다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되는 게야... 이리와 앉거라.....”

“그 사부에 그 제자로고.... 허헛......”

성곤이 비웃듯 보주를 힐난했다. 그렇다고 기분 나쁘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이쯤에서 친구의 탓으로 돌리고 말자는 의미였다.

덧붙이는 글 | 오늘 집 컴퓨터가 인터넷이 안 되는 바람에 사무실에 나와 올리다보니 조금 늦어졌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오늘 집 컴퓨터가 인터넷이 안 되는 바람에 사무실에 나와 올리다보니 조금 늦어졌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천지 #추리무협소설 #이웅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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