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엔 있고 <대조영>엔 없는 '사위일체'

정치+경제+기술+종교 결합이 주는 다채로움

등록 2007.09.23 12:29수정 2007.09.23 12:38
0
원고료로 응원
a

드라마 <주몽>에 등장한 주요 인물. 주몽-소서노-모팔모-여미을. ⓒ MBC


똑같이 고구려 열풍을 소재로 했는데도 <주몽>과 <대조영>은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연기자들의 열연은 별 차이가 없겠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이나 드라마의 느낌이 확연히 달랐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드라마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은 <주몽>은 어딘가 다채로운 느낌을 준 데 반해 <대조영>은 사뭇 단조로운 느낌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 신(scene)에서 겨우 10여명의 군사가 등장해서 빈축을 사기도 했지만, <주몽>이란 드라마에서는 그래도 왠지 어딘가 다채로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특히 역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주몽>은 판타지 드라마”라는 비판이 심했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어딘가 ‘그럴싸한 느낌’도 풍겨 나왔다. 많은 시청자들이 <주몽>에 빠져든 데에는 다채로움 외에도 이 같은 ‘실제적임’이라는 요소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 똑같이 고구려를 소재로 한 두 드라마가 이처럼 확연한 차이를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왕조수립이나 역사발전의 원동력에 관한 드라마 제작진들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경제+기술+종교 '사위일체' 보여준 <주몽>

공상적이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자주 나왔음에도 시청자들이 <주몽>으로부터 다채로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 드라마가 정치+경제+기술+종교의 사위일체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주몽>은 기존 역사 드라마가 안고 있던 정치 일변도의 한계를 어느 정도 탈피한 드라마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정치세계의 인물인 주몽뿐만 아니라 경제·기술·종교 세계의 인물인 소서노·모팔모·여미을 등이 등장하여, 여러 분야의 원동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고구려라는 나라가 세워지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해모수의 아들 주몽은 혈연적 정통성과 측근세력을 기반으로 영역을 넓혀 가고, 상인 집안의 계승자인 소서노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주몽의 정치·군사 활동을 지원하고, 기술자인 모팔모는 강철 무기 등을 개발하여 주몽의 정복활동을 뒷받침했고, 신녀인 여미을은 초월적 능력과 권위를 바탕으로 주몽에게 고구려 건국자의 위상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정치와 경제와 기술과 종교가 사위일체를 이루는 속에서 고구려가 건국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주몽>은 드라마 전개상의 판타스틱한 측면에도 시청자들에게 ‘그럴싸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고구려 건국과정에서 실제로 <주몽> 드라마와 같은 일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믿었다기보다는 ‘고구려라는 나라가 건국되는 과정에서 저런 요소들이 필요했겠구나’라는 느낌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단지 개국시조의 탁월한 정치적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의 공동 노력이 총체적으로 작용해야만 한 나라가 세워질 수 있다는 점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주몽>은 훌륭한 역사 교과서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 위주 건국 틀 못 벗어난 <대조영>

a

<대조영>. ⓒ KBS


이에 반해, ‘가늠할 수 없는 꿈의 크기’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가진 <대조영>은 정치 일변도의 기존 드라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주몽>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고구려보다도 고구려의 후예인 발해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더 끌 수 있는 소재임에도, <대조영>은 ‘왕조 수립=정치활동’이라는 기존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시청자들에게 어딘가 단조로움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조영> 출연진의 열연은 <주몽> 출연진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열연뿐만 아니라 연기경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주몽>에서 볼 수 있었던 정치+경제+기술+종교 등의 사위일체를 찾아볼 수 없다. 어느 시대든 간에 새로운 왕조를 수립하거나 외국을 정복하려면 단순히 군사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군사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조직 외에도 경제력·기술력이 필요하고 또 종교나 사상체계를 통해 인민들의 정신력을 결집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점일 것이다. 아무리 경영지식이 충분하다 해도 자금이 없다면 회사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을 것이고, 또 경영지식·자금이 있더라도 상품을 생산할 기술이 없다면 이 경우에도 회사를 운영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경영지식·자금·기술이 있더라도 직원들을 이끌어갈 리더십이 없다면 그 경우에도 회사를 운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조영>에서 나타나는 발해 건국의 원동력은 주로 정치적 요소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구려 멸망 이후로 대조영이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은 주로 대조영의 신념과 열정, 측근 인물들의 의리, 거란 가한 이진충의 비상식적인 파격적 원조 등이다.

특히 여기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진충이 대조영 세력에게 비상식적인 원조를 제공하는 부분이다. 당나라에 억류되어 있다가 거란으로 도주해온 대조영에게 이진충이 식량을 제공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번에 저를 도와주시면 훗날 가한께서 무상가한(국제사회의 최고 지존)이 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라는 대조영의 ‘약속’이었다.

‘빈털털이’ 대조영이 말 몇 마디로 이진충의 허영심을 자극해서 대규모 식량원조를 받아냈다는 것이다. 국제관계에서 과연 이런 일이 쉽게 발생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는 거란이 대조영 세력을 돕는 이유를, 최강인 당나라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런 이유도 가능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설명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거란 옆에서 고구려 계승자들이 나라를 세우는 것만으로도 거란에게는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데, 거란이 당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발해라는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는 논리는 어딘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발해가 거란족에게 멸망했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보더라도, 대조영 세력과 거란 세력의 ‘돈독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을 것이다.

역사드라마, 상상하려면 제대로 상상하라

드라마 <대조영>은 이처럼 국제적 역학관계를 충분히 그려내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조영이라는 사람이 발해를 세운 과정을 제대로 ‘상상’해내지도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고구려를 재건하겠다는 대조영의 열정, 걸사비우·흑수돌의 끈끈한 의리, 미모사의 기가 막힌 계책, 대조영 하면 무조건 OK 하는 거란가한 이진충. 대체로 이런 요소들이 드라마 <대조영>에 반영된 발해 건국의 원동력이다. 이로 인해 이 드라마에서는, ‘가늠할 수 없는 꿈의 크기’라는 수식어처럼 주로 대조영이나 몇몇 사람들의 의지만으로 발해가 건국되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는 과정에서는 <주몽>의 경우처럼 경제력·기술력이나 상징조작 등의 비정치적 수단들이 동원되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리고 단순히 무장(武將)들 외에도 상인·기술자·종교인들이 대조영의 발해건국에 기여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러한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인식상의 한계를 갖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학적 자료도 없는데, 무슨 수로 정치+경제+기술+종교의 복합적 측면을 다 보여줄 수 있겠는가?”고 이의를 제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상상으로 극복하라는 것은 드라마에 주어진 사명이자 특권일 것이다. <주몽>이 그것을 잘 해냈다고 볼 수 있다.

또 <대조영>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자체도 어차피 역사적 사실과는 동떨어진 상상의 결과가 아닌가? 정치적 상상은 잘하면서 다른 분야의 상상은 못한다면, 이것은 자료의 부족이 아니라 상상력의 부족이라고밖에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는 어차피 허구이므로 드라마를 통해 제대로 된 역사학습을 전개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이며 정확한 역사교육은 드라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드라마는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가 역사에 대한 인상을 시청자들에게 잘못 전달하면, 사회적 범위에서 역사인식상의 오류가 보편화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단지 군사적 우위를 가진 세력만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오류를 심어줌으로써, 정치·군사 외에도 경제·기술·종교·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총체적인 노력이 있을 때에만 비로소 역사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는 나아가 사회 각 분야의 공헌도에 대한 공정한 가치평가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나 대중소설 등을 통해 역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학생들이 대학원에 들어와서는 “역사학이 왜 이리 지루한가?”라면서 1학기 만에 그만두는 사례가 많다. 드라마 등에서 보던 것과 달리, 역사를 배우려면 경제도 알아야 하고 기술도 알아야 하고 기타 등등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대학원에 와서야 깨우치고는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TV 방송 등의 미디어가 역사교육과 관련하여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일례가 될 것이다. TV 역사 드라마를 포함하여 대학원 이전의 사회교육 시스템이 단순히 정치 일변도의 역사지식만을 제공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역사 드라마를 만드는 작가나 방송 관계자들은 ‘역사는 정치 외에도 사회 여러 분야의 복합적 노력에 의해서 발전할 수 있다’는 보다 더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주기 위해서라도, 왕조 건국이나 역사발전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공부와 관찰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대조영 #주몽 #역사 드라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봉 천만원 올려도 일할 사람이 없어요", 산단의 그림자
  2. 2 '라면 한 봉지 10원'... 익산이 발칵 뒤집어졌다
  3. 3 은퇴 후 돈 걱정 없는 사람, 고작 이 정도입니다
  4. 4 구강성교 처벌하던 나라의 대반전
  5. 5 기아타이거즈는 북한군? KBS 유튜브 영상에 '발칵'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