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사태, 아직은 민주화 시위라 할 수 없다

등록 2007.09.25 10:15수정 2007.09.2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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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5일 기름 값(국영 주유소 판매가 기준) 100% 인상조치를 계기로 시작된 미얀마의 시위사태가 8월 28일 승려들의 시위 참여 이후로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AFP 등의 보도에 의하면, 9월 24일에는 10만 명의 시위대가 옛 수도 양곤에 모여 반정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정부의 기름 값 인상이 사전 예고 없이 단행된 데에다가 별다른 인상 이유도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얀마 국민들의 분노가 한층 더 가열되었다고 인터넷 <알자지라>의 최근 업데이트 판이 보도했다. 참고로, 이에 관한 지난 8월 24일자 <알자지라> 인터넷 판이 날짜 변경 없이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어서 정확한 보도 날짜를 소개할 수 없음을 밝혀둔다. 

 

시위 사태가 미얀마 군부정권의 몰락으로 귀결될지 아니면 기름 값 인상 철회로 끝날지 혹은 적절한 타협으로 끝날지 아직은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미국측과 일부 국내외 언론의 성격규정은 성급한 감이 없지 않다.

 

미국은 이번 사태를 주저 없이 ‘민주화 요구 시위’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 언론들 역시 미국의 태도를 따라 민주화 시위라는 관점에서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를 민주화 시위로 규정하는 미국과 일부 언론의 태도는 과연 공정하고 객관적인 것일까?

 

모든 민중의 궐기가 곧바로 민주화 시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민중의 궐기가 어떤 요건을 갖추느냐에 따라서 폭동이 될 수도 있고 민생시위가 될 수도 있고 항쟁이 될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혁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 이 중에서 항쟁 류(類)에 포함되는 민주화 시위는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할까? 민생문제에서 비롯됐든 정치문제에서 시작됐든 간에 민중의 궐기가 민주화 시위로 규정될 수 있으려면, 적어도 그 주체나 구호 중 하나가 민주화와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이번 사태의 성격 규정을 위해 시위의 주체와 구호를 각각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이번 사태의 주체는 누구인가?

 

8월 15일 기름 값 인상조치로 인해 교통비·식품비 등이 급등하자 수백만 명의 빈곤층이 불만을 터뜨렸다. 그리고 첫 시위가 터진 것은 나흘 뒤인 8월 19일이었다.

 

<알자지라>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 날 500명 정도의 군중이 민주화 활동가들의 지도하에 시위에 참가했다고 보도했다. 이때 시위를 주도한 곳은 20년 전에 반정부활동을 전개한 바 있는 유명한 ‘88세대 학생 그룹’이다.

 

그리고 8월 21일에는 유명한 민주화 활동가인 민 코 나잉을 포함한 13명의 지도자가 시위를 주도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처럼 사태 초기만 해도 민주화 활동가들이 미얀마 일부 지역의 시위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8월 28일부터 시위의 주체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얀마 서북부에 있는 시트웨라는 도시에서 불교 승려들이 시위에 참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던 미얀마 정부는 승려들의 시위 참여에 당혹해 했으며, 이들의 참여를 계기로 시위는 현재와 같은 대규모 수준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미얀마 사태가 국제적 초점이 된 데에는 승려들의 시위 참여가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으며, 현재 미얀마 사태를 주도하고 민중을 주도하는 것도 승려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에 사태를 장악하던 민주화 활동그룹은 이미 승려 세력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상태다.

 

이와 같이 승려 세력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사태를 두고 무조건 민주화 시위라고 규정하는 성급한 태도일 것이다. 승려가 본래 민주화운동을 하는 직업이라면 모르겠지만, 그것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주도한 일을 두고 무조건 민주화 시위라고 단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만약 민주화 활동가들에 의해 사태가 주도되고 있다면 시위대의 구호가 무엇인가를 살필 필요도 없이 이번 사태를 민주화 시위라고 규정해도 무방하겠지만, 승려들에 의해 사태가 주도되고 있다면 문제가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승려들에 의해 주도되는 사태를 민주화 시위라고 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시위대의 구호만큼은 민주화와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이에 관한 논의를 뒤이어 전개하기로 한다.

 

둘째, 이번 사태의 구호는 무엇인가?

 

미국정부나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사태를 민주화 시위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정작 미얀마 거리의 시위대가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정황은 아직 보고되고 있지 않다.

 

해외에 망명 중인 미얀마 반체제 인사들이 민주화를 운운하고 있을 뿐, 정작 시위 현장에서 민주화 구호가 나왔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확실한 것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미얀마 국민들이 승려들의 주도 하에 기름 값 인상에 저항하고 있다는 점뿐이다. 

 

미국 등이 ‘시위대가 아웅산 수지의 자택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특히 부각시키는 것은, 어떻게든 이번 사태를 민주화 시위로 연결하여 미얀마 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의 표현에 불과하다. 미국 등이 그처럼 궁색한 홍보전을 펴고 있는 것은, 이번 사태를 민주화 시위라고 규정할 만한 뚜렷한 자료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승려들이나 국민들이 의식적으로 아웅산 수지의 자택을 향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이번 시위를 민주화 시위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제스처는 국제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미얀마 정부를 압박하려는 시위 주도세력의 기획 작품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위 주도세력이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를 이용하려 한다고 해서, 이번 시위가 곧바로 민주화 시위가 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위와 같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미얀마 거리의 시위 현장에서 민주화 요구 구호가 나오고 있다는 뚜렷한 정황을 확인할 수 없다. 현상적으로 드러난 것은 유가 인상과 물가 급등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뿐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알자지라>처럼 ‘기름 저항’(fuel protests) 혹은 ‘기름 시위’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인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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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사태를 ‘기름 저항’(fuel protests) 혹은 ‘기름 시위’로 표현한 <알자지라> 8월 24일자 기사 제목. 이후에도 <알자지라>는 기사 본문에서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 <알자지라>

미얀마 사태를 ‘기름 저항’(fuel protests) 혹은 ‘기름 시위’로 표현한 <알자지라> 8월 24일자 기사 제목. 이후에도 <알자지라>는 기사 본문에서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 <알자지라>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승려들의 주도 하에 기름 값 인상 반대 구호가 나오고 있는 미얀마 사태를 민주화 시위라고 규정하는 것은 성급할 뿐만 아니라 공정하지 못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별다른 근거도 없이 이것을 민주화 시위라고 규정하는 것은 미얀마 정부를 국제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에 휘말려드는 일일 뿐이다. 미얀마 국내문제와 별다른 이해관계도 없는 한국이 미국의 이해관계에 휘말려들어 어느 한쪽을 불공정하게 매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 앞으로 시위대가 민주화 구호를 명확하게 외치는 단계로 상황이 발전한다면, 그때 가서 민주화 시위라는 표현을 써도 늦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그저 기름 값 인상에 대한 민중의 저항 즉 민생시위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태도일 것이다.  

2007.09.25 10:15 ⓒ 2007 OhmyNews
#미얀마 사태 #아웅산 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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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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