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서 시작된 이야기
2007년 8월 초, 금세라도 비를 내릴 짙은 구름 사이로 새파란 하늘이 빼꼼한 스페인 ‘갈리시아Galicia’의 세상의 끝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동네, ‘피니스테레Finisterre’. 절벽처럼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간 동료 순례자는 비밀스러운 작은 해변에 짐을 놓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 역시 잠시 길을 벗어나 절벽을 따라 그가 앉아있는 바위로 다가갔다. 그는 바위에서 뛰어내려 상아색의 고운 모래밭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자 지금부터 잘 봐. 여기가 네가 살고 있는 땅, 한국이야.”
지팡이를 척하니 들고 스페인의 김정호가 되어 그는 모래밭 위에 일필휘지를 시작한다. 먼저 한반도를 그려내고 그곳을 시작으로 중국, 인도, 아프리카, 구불구불한 지중해와 구두모양의 이탈리아를 그려내고 마침내 이베리아 반도를 완성한다.
“그리고 여기가 바로 네가 지금 서 있는 스페인의 갈리시아, 피니스테레. 세상의 끝이지. 너는 여기, 동쪽 세상의 끝 한국에서 이렇게 먼 거리, 일만 킬로미터를 떨어져 지금 바로 이 곳, 서쪽 세상의 끝에 서 있어. 이게 너에게 있어 어떤 의미일지, 한 번 잘 생각해 봐!”
가볍게 웃음 짓는 그는 나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지팡이를 건네주고 해변의 저편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모래위의 약식 유라시아 지도와 함께 남겨진 나는 지도 위로 지팡이를 짚어가며 자신의 모토(母土)로부터 시작된 지난 40여일을 회상한다.
그것은 순례였고, 나는 순례자였다.
길의 탄생
가톨릭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세 곳의 큰 성지가 있다. 구교인 가톨릭과 신교인 개신교에서 모두 인정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탄생지인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그리고 신교는 인정하지 않으나 구교에서는 여전히 주요 성지순례지인 곳이 교황의 거처인 로마 바티칸 시국과 앞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이다. 이곳은 스페인 서북 '갈리시아Galicia'지역의 작고 유서 깊은 도시로, 기원후 예수의 사도였던 산티아고, 한국어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있는 곳이다.
기원후 44년, 기독교의 구세주인 예수가 유대인의 손에 처형된 후, 세상에 남겨진 열두 사도 중 한 명인 성 야고보는 예루살렘을 떠나 이베리아 반도까지 전교여행을 떠난다. 그의 수훈(?)으로 입교한 이는 겨우 일곱이었다고 한다. 언뜻 보기에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전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성인은 당시의 가톨릭 탄압정책에 휘말려 장렬히 순교하고,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스승의 몸을 수습해 바다에 띄워 보낸다.
천여 년의 세월을 지나 유럽세계는 곧 가톨릭의 세계였다. 그러나 아프리카를 통해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점령한 이슬람의 세력은 가열찼다. 소수의 가톨릭 세력이 남아있던 스페인 북서쪽 거친 땅덩어리에서, 9세기 한 신앙인이 밤하늘의 무수한 별바다를 따라 들판을 헤맨다.
바로 그 바닷가 근처 들판에서 한 구의 유골이 발견되고, 가톨릭 교회는 그것을 천 년 전 스페인에 복음을 전하러 온 성 야고보로 인정한다. 더불어 유골의 발견지를 성지로 선포한다. 더불어 몇 년 뒤, 스페인 북서지역 ‘아스투리아스Asturias’의 왕인 알폰소 2세가 이곳을 방문하고, 성당을 건축한 뒤 성 야고보를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한다.
성지가 유럽의 대표적 순례지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유럽 대륙에서 가톨릭 세력과 이슬람 세력이 대립을 계속하던 중세에 두드러진다. 당시의 왕과 교황은 이 길을 종교적이자 정치적이며 동시에 경제적인 이유로 발전시킨다. 12세기에는 프랑스 수도자가 쓴 순례 안내서가 등장하고, 교황은 이 길을 걸으면 죄를 감면한다는 칙령을 내린다.
길의 재발견
중세시기의 신심한 순례자들로 가득했던 길은 인본주의의 근대와 격동의 세계대전 등의 굴곡을 겪으며 사람들에게 잊혀진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들어와 유명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이 길을 걷고 <순례자>를 쓰고, 유럽연합의 문화유산 제 1호로 ‘산티아고 가는 길’이 선정되는 등 일련의 사건을 통해 길은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현재는 종교적 이유만이 아닌 다양한 이유로 여행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가속하는 세계화(?)의 힘으로 이제는 유럽인만이 아닌 다양한 나라에서 이 매력적인 길을 걷기 위해서 스페인을 향하고 있다.
특히 1999년을 기점으로 길에 오르는 이들이 다국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2006년 조사 결과 100,377명의 순례자들이 스페인 북쪽 땅을 배낭을 지고, 자전거 혹은 말을 타고, 나귀를 끌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이 길을 걸었다. 순례자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급격한 변화를 인지한 스페인 역시 순례지를 재정비하고 순례자 서비스를 확장하는 등의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순례지 위에 있는 수많은 마을들은 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와 식당 등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람들은 순례의 상징인 조개(성 야고보를 상징)와 호리병(물 혹은 와인을 담기 위한 도구), 지팡이를 짚고 천 년 동안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길로 다져진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는 길 위에 서 있다.
즉 산티아고 가는 길이란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모든 길’을 의미하며, 이 길은 스페인만이 아닌 전 유럽을 거미줄처럼 잇고 있다. 브뤼셀, 로마, 파리에 사는 사람이 각각 자기 집 앞에서 출발하여 몇 달을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길을 안내하는 ‘노란 화살표’ 역시 전 유럽에 걸쳐 분포되어, 파리에서도, 로마에서도 이 화살표를 찾을 수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주요한 순례루트로써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이 곧 ‘프랑스의 길’이라고 하는 ‘카미노 프랑세즈Camino Frances'이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마을인 ‘생장피드포르Saint Jean-Pied-de-Port’에서 시작해 산티아고까지 약 760km에 이르는 이 길은 스페인의 북부지역을 일직선으로 횡단하며 ‘나바라Navarra’, 라 리오하‘La Rioja’, ‘까스띠야 레온Castilla y Leon’, ‘갈리시아Galicia’지역을 거친다.
이 길은 상시 순례자들로 가득해 마을 사이의 거리가 가깝고 잠자리와 식사를 해결하기에 다른 지역에 비하여 수월한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http://simplyjh.egloos.com과 동시에 게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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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동안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길로 다져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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