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사막에서 '피케팅'을 하다

[세계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동지들(2)

등록 2007.11.15 18:12수정 2007.11.1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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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호수에서의 휴식 (탈출하는 날, 푸른호수에서) ⓒ 양학용


지프는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왼쪽 산마루 너머로 해가 떨어지자 오른쪽 평원에서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유난히 밝고 노란 대보름달이었다. 차 소리에 놀란 야마 떼들이 그 큰 보름달 속으로 달아났다. 아름다웠다. 

“마침내 서바이벌 게임이 끝났군!”


우리 일행은 12시간 동안의 악전고투 끝에 막 산악지역을 벗어난 참이었다. 생각할수록 아찔한 순간들이었다. 대피소를 떠난 차는 ‘푸른호수’까지는 그런대로 잘 달렸다. 하지만 곧 4륜구동 지프도 폭설로 쌓인 눈길에서는 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이리저리 미끄러지며 위태로운 상황을 연출하더니 급기야 바퀴가 눈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6명이 안간힘을 다해 밀어보지만 요지부동. 마침내는 삽과 곡괭이로 수로를 만들 듯이 길을 파헤쳐야했다. 걷기만 해도 숨이 차오르는 해발 4000m 고산지역에서 삽질을 해댔으니, 10분도 안 되어 내 심장은 죽어라 방망이질을 치고 온 몸은 땀으로 젖어들었다.

그러기를 수차례, 길까지 잃어버리기도 했으니…. 베테랑 운전사에게도 바퀴자국 하나 없는 눈밭에서 길 찾기란 버거운 일인 모양이었다.    

“고립과 생존, 그리고 탈출! 어때? 한 편의 드라마 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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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간의 고립과 생존, 그리고 탈출 해발 4,000미터 고산에서 삽과 곡괭이로 길을 뚫다. 왼쪽이 베아트, 오른쪽이 후르헨, 삽을 든 운전사, 그리고 지켜보는 아내와 토비아.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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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의 악전고투 ... ⓒ 양학용


베아트가 드라마작가라도 되는 양 신이 나서 말했다.

“드라마고 뭐고, 난 뜨거운 물로 샤워부터 할 거야! 이거, 도대체 며칠만이지?”

촐랑거리는 의사 토비아가 말을 받았다. 연이어 베아트는 스위스인답게 초콜릿부터 사먹겠다고 하고, 두 자전거부부는 진한 커피 한 잔이 마시고 싶다고 했다. 아내와 난 명절을 맞아 고향집에 모여 있을 가족들에게 전화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을 기다린 건 여행사 사장의 일방적인 약속위반 통고일 뿐이었다.

“두 가지 옵션이 있어. 하나는 오늘 하루 공짜로 자는 거고, 두 번째는 낫싱(Nothing)이야! 날씨 때문이지 우리 잘못 아냐. 우린 6일 동안이나 먹여줬어. 더 이상은 곤란해! 만약 하루라도 우리 호텔에서 묵고 싶으면 투어계약서부터 내 놔!”

물도 없고 전기도 없는 그 추운 대피소에서 고립되었다가 살아온 사람들에게 빈말이라도 먼저 미안하다, 얼마나 힘들었느냐, 고생이 많았다, 그런데 우리 사정도…, 순서가 이래야 도리가 아니던가! 사실 우리는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고 피곤해서 얼른 쉬고만 싶었다. 그런데 이건 아니었다. 사장의 태도가 두 싸움닭의 눈에 불똥이 튀게 만든 것이다.

“응 그러셔? 아침엔 달랑 비스킷, 점심 땐 소스 없는 스파게티, 저녁엔 맨밥에 삶은 달걀 하나. 참 훌륭한 식사였지! 그리고 폭설이 내릴 줄 너희가 알았겠어? 다, 인정해. 그런데 다른 여행사에선 3일도 더 전에 다 모셔가더라고? 난 우리 여행사만 가난해서 그런가 보다 했지. 근데 우유니에서 젤로 크다 하더라고?”

“그래서 뭐야?”
“사실 관광객에게는 시간이 돈이거든. 그런데 천재지변으로 생긴 일이니 변상하랄 수도 없고. 그냥 위로나 한 마디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미 늦어버렸고. 그래, 이만 각설하고, 여기 계약서에 써진 대로 칠레 ‘산 페드로’까지만 데려다 줘! 그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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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서바이벌 투어 12시간의 악전고투 끝에 길을 찾았다. ⓒ 양학용


사장이 콧방귀를 뀌더니 스위스 친구들을 먼저 구슬린다. 처음에는 토비아와 베아트 역시 약속과 다르다며 따지는 것 같더니 이내 포기하려는 듯 우리 부부의 눈치를 살핀다. 대게 이런 상황에서 서양 여행자들에게는 작은 돈이기도 하거니와 부딪치기 싫어하는 그들은 그냥 넘어가고 만다. 그래서 여행사들의 나쁜 행태가 반복되는 면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마음이 맞는 자전거 부부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들은 자전거로 소금사막을 건널 거라며 인근 마을에 먼저 내렸던 것이다. 결국에는 우리 둘만 남을 상황이었다. 아내와 난 매우 피곤한 상태였지만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문제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미안해하는 스위스친구들을 올려 보내고 호텔로비 소파에다 가방을 부렸다. 그 자리에서 농성할 생각이었다. 대피소에 비하자면 스위트룸이나 다름없으므로 맘먹기에 따라 불편할 것도 없었다.

“투어계약서를 받지 않는 한 절대 객실을 내주지 마!”

사장은 직원에게 ‘명’을 내린 후 나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휭 가버렸다. 1시간이나 지났을까. 사장의 전화를 받고난 직원이 경찰을 불렀다. 한 달 배운 스페인어로 달려온 경찰에게 여차여차 사정을 설명했다. 의외로 경찰이 합리적인 중재안을 내놓았다. 투어계약서는 자기가 보관하겠으니 일단 오늘밤은 객실을 내어주라 한 것이다. 그리고 이튿날 사장을 불러 3자 논의를 갖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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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 하이웨이 세계 최다선 고속도로가 아닐까? ⓒ 양학용


그러나 다음날.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경찰과 사장은 손발이 착착 맞아 들어갔다. 태도가 돌변한 경찰이 오히려 우릴 설득하고 있었다. 볼리비아 경찰수준을 한 번 보자는 마음으로 나는 바로 찌르고 들어갔다.

“당신 상급자랑 얘기하고 싶어.”
“상급자 누구?”


“경찰서장 있을 거 아냐.”
“없어.”

“왜?”
“라파스 갔어.”

“언제 오는데?”
“몰라.”

“그럼 고소라도 해두겠어. 계약서 위반으로.”
“여긴 그런 거 없어.”   

“……!”

이쯤 되니 기가 막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설 우리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 아내와 난 최후의 수단을 뽑아들기로 했다.

“피케팅을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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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다! ... ⓒ 양학용


여행길에서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꿈엔들 알았으랴! 혹시 잘못해서 경찰서로…? 이런 걱정이 안 떠오른 건 아니지만, 항상 처음 하는 일이 그렇듯이 긴장 저 편에서 설렘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먼저 인포메이션센터에 도움을 청하러 갔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그곳에는 여행사 ‘콜께투어(Colque Tour)’에 대한 투서가 가득했다. 심지어 만취한 상태의 운전사 얘기까지 있었다. 왜 진작 여기에서 정보를 얻지 않았을까. 인포메이션 직원은 우리 부부의 계획을 듣더니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며 피켓 만드는 일을 도와주었다.

드디어 피켓을 들고 여행사 사무실 앞에 섰다. 이것 역시 여행의 일부라며 일단 기념사진을 하나 ‘박고’ 있자니 지나가는 원주민들부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하긴, 신기하기도 할 것이다. 외국인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고맙긴 한데… 원주민들보다야 여행자들이 와야 도움이 되는데 말야.”
“자기야! 저기 단체 관광객 온다!”

그들은 10여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피켓을 읽는 것 같더니 낯선 언어로 자기들끼리만 뭐라 하면서 그냥 지나쳐버렸다.

“쳇! 뭐라고들 하는 거야? 동유럽 쪽 같기도 하고.”

그 순간, 일행 중 한 명이 돌아서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일이 되어갈 모양이라며 나는 반색했다. 그런데 그는 내 앞에서 손을 펴보였다. 이~런! 10달러짜리 두 장이 놓여있었다. 우리가 차비가 없어 그런 줄 안 모양이었다.

“아, 아니…, 내참 이거, 고맙습니다만, 지금 저희 돈 문제가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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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호텔에서 침대, 의자, 탁자, 벽돌까지 모두 소금으로 만들어진 호텔, 너무 짜지 않을까요? ⓒ 양학용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돌아섰다. ‘나그네 부부, 마침내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거지신세 되다!’ 신문에 날 일이다. 그때였다. 독일 커플 한 쌍이 여행사문을 밀치려다 피켓을 보고는 다가와서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었니?”
“응. 이 여행사가 돈을 너무 많이 번 것 같아 한 수 가르쳐주려고!”

여차여차해서 저차저차 했는데 오리발을 내밀더라, 한바탕 설을 풀었다. 독일커플은 여행사이트에 투고하겠다는 둥 우리보다 더 분노(?)하다 기념사진까지 남기고 돌아섰다. 잠시 후. 두 번째로 프랑스 커플이 왔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일인 양 직접 따져보겠다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말이 안 통하는 놈들이라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 돌아갔다.

마침내 사장이 씩씩거리며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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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수단, 피케팅 독일, 프랑스, 스페인 세 커플의 지지로 승리하다.(독일커플과의 기념사진, 뒤로 악명 높은 '콜께투어' 여행사 간판이 보인다) ⓒ 양학용


“너희들 뭘 원해?”
“피켓 못 읽어? 계약서대로 칠레에만 데려다줘!”

“먼저 이‘짓’부터 그만두면 내일 보내준다!”
“그럼 영수증 만들어줘!”

“안 돼!”
“왜?”

“좋아, 니들 맘대로 해! 내일도 모레도 평생 한번 해 보라지! 흥!”

거친 협상(?)이 깨졌다. 그때였다. 이번에는 스페인 중년부부가 나타났다. 피켓을 읽어본 후 당연히 여행자인 우리에게 먼저 사정을 물어본다. 쭉 설명하자니 사장이 불쑥 끼어들어 진작 칠레로 보내주겠다는데도 이러고 있다며 새빨간 거짓말을 해댄다. 스페인남자가 사실이냐는 듯 눈짓으로 물었다. 난 어의가 없어 어깨만 으쓱했더니 그가 사장에게 제안을 내놓았다.

“그럼, 내가 보는 앞에서 서로 각서를 쓰면 어떨까요?”

그가 먼저 나에게 동의를 구했다.

“저야 좋죠. 저희가 바라는 게 그거니까요. 정말 사장이 동의한다면 말이죠.”

그가 이제 당신 차례라는 표정으로 사장을 쳐다보았다. 풋, 그 순간 사장의 똥 씹은 표정이라니! 결국 사장은 스페인 부부의 입회하에 ‘5km 앞에서 눈물을 삼키고 돌아와야 했던 칠레 산 페드로’까지 지프를 제공한다는 각서를 썼다. 사장은 신경질적으로 사인을 하고 나서 마지막 한 마디를 내뱉었다.

“차 시간은 내일 오전 8시야! 단 1분이라도 늦으면 국물도 없어!”
(다음날 아침, 물론 우리부부는 정시 10분 전에 도착했지만, 차는 8시가 지나고 9시가 넘어서야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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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가는 길 자전거로 소금사막을 넘어온 사스키아와 후르헨을 다시 만났다. ⓒ 양학용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다. 칠레에 도착하자마자 그렇게도 탈출하고 싶었던 볼리비아가 다시 그리워지는 것이다. 하얀 호수를 날던 플라맹고와 시린 청색의 설산을 비추던 달빛. 예상치도 원하지도 않았지만 찾아왔던 시간들 말이다.

그리고 쪼금 서운했던 촐랑대는 의사 토비아와 건들거리는 베아트, 배짱이 맞았던 사스키아와 후르헨 자전거부부, 대피소 관리인 막시마. 6일 동안이나 산중에 고립되어 생사를 함께 했던 동지들, 그들이 보고 싶었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양학용 & 김향미 부부는 결혼 10년째이던 해에 길을 떠나 2년 8개월 동안(2003년 10월 16일~2006년 6월 4일) 아시아·유럽·북미·중남미·아프리카·중동·러시아 등 세계 47개국을 여행했다.
기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wetravelin


덧붙이는 글 양학용 & 김향미 부부는 결혼 10년째이던 해에 길을 떠나 2년 8개월 동안(2003년 10월 16일~2006년 6월 4일) 아시아·유럽·북미·중남미·아프리카·중동·러시아 등 세계 47개국을 여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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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남미여행 #소금사막 #우유니 #피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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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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