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당이 없었다면 어디서 싸웠을까?

등록 2007.12.15 14:29수정 2007.12.1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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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정치투쟁은 국제 영역과 국내 영역에서 서로 다른 발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제적 투쟁의 경우에는 무력의 강도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예컨대, 국가 간의 정치투쟁은 재래식 무기에서 핵무기를 확보 혹은 사용하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그에 반해, 국내적 투쟁의 경우에는 무력의 강도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국내 정치세력 간의 투쟁은 들판의 칼싸움에서 의사당의 말싸움으로 발전해왔다.

 

논의를 국내적 차원에 한정시켜 보면, 인류의 정치투쟁은 과거에 비해 계속해서 세련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국가의 통치권력이 갈수록 첨단화되는 무기를 기반으로 군사력을 독점함에 따라, 일반 정치세력이 무력 이외의 수단을 구사할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귀족들이 사병을 보유했던 고대나 중세의 경우에는 정치권력 간의 갈등이 종종 군사력의 행사를 통해 해결되곤 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조선 초기에 와서야 사병이 혁파됨에 따라, 국가의 무력 독점이 그때서야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게 되었다.

 

조선 초기에 사병이 혁파된 이후로 당쟁이라는 새로운 정치투쟁의 양상이 출현하기 시작한 것은, 정치세력들이 군사력을 용이하게 확보하기 힘들게 된 새로운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정치세력들이 순화됨에 따라, 사병군단을 시켜 정적을 제거하는 방식보다는 상대방의 약점을 파악해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왕명을 이용해서 사약을 받도록 하는 방식이 보다 더 선호되기에 이르렀다.

 

사약을 통한 정적 제거 방식은 오늘날에도 그 형태만 변했을 뿐 기본적인 골격은 유지되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가신들을 보내 백주대낮에 정적을 죽이는 방법을 생각도 할 수 없는 오늘날에는, 상대방의 뇌물 비리 등을 조사해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검찰을 이용해서 정적을 감옥에 집어넣는 방식이 선호되고 있다.

 

그리고 자기 집단의 정치적 의사를 관철시키는 방식 역시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세련된 편이다. 고대나 중세 같으면 중요 국가정책의 결정 혹은 정권교체 등의 경우에는 말보다는 칼로써 자기 집단의 의사를 반영시키고 싶은 유혹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의회 안에서의 숫자 싸움을 통해 상대방을 누름으로써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시키려는 쪽으로 이미 바뀌어 있다. 그러므로 고대나 중세의 정치투쟁에 비한다면, 오늘날 정치세력들이 의회를 무대로 벌이는 정쟁은 그나마 신사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정치세력들이 깡패와 각목을 동원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요즘에는 그러한 광경을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의 정치세력은 의사당이라는 ‘온실’ 속에서 자신들의 ‘야성’을 순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투쟁은 본래 상대방을 배제함으로써 자신이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기 때문에, 그것은 본질적으로 격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의회정치시대인 오늘날에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가 의사당 안에서 완전히 해소될 수는 없을 것이다.

 

평소에는 점잖던 국회의원들도 막상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15일의 특검법 소동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그러한 본능적인 투쟁상태를 연출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사는 지역의 국회의원은 어제 국회에서 침 세례까지 받았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깡패와 각목의 동원도 불사했을 사람들이 이제는 ‘겨우’ 침 세례나 주먹질 정도에 그치고 있으니, 좀 깨끗하지는 않더라도 그래도 예전보다는 낫다고 해야 할까?  

 

본질적으로는 들판에서 칼이나 총을 들고 싸웠을 사람들인데, 국가가 군사력을 독점하고 있는지라 무력을 구사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국회 안에서나마 주먹다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회의원들의 의사당 내 몸싸움은 그들의 정치적 야성을 순화시키는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은 것이다.

 

어찌 보면, 현대의 의사당은 정치세력 간의 물리적 싸움이 사실상 용인된 공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국회 안에서 벌어지는 ‘말에 의한 폭력’은 면책특권에 의해 헌법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한편, ‘신체에 의한 폭력’은 사법권이 개입을 자제함에 따라 사실상 보호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러한 공간을 제공받지 못한다면, 그들은 필시 의사당 밖에서 무기를 들고 승부를 보려 할 것이다.

 

15일은 물론이고 가끔 국회 안에서 벌어지는 몸싸움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저것은 추태다!’라고 느끼고 있다. 그런데 문제를 좀 달리 생각해보면, 그곳에서 그 정도의 추태마저 부릴 수 없다면 그들은 필시 의사당 밖에서 그보다 더한 ‘추태’를 벌일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합법적인 싸움 공간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정치세력은 본래 칼이나 총을 들고 상대방을 제거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의사당 내에서의 몸싸움은 현대 인류의 정치생활에서 필요악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국회의원들의 몸싸움을 지켜보면서 ‘저런 것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았나?’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저들이 저 정도로 싸우고 끝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생각을 하면 유권자들의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그런데 인류의 정치투쟁방식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세련된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지금은 정치투쟁의 양상이 의사당 안에서의 물리력 행사까지만 사실상 용인하는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앞으로는 그것마저 제한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가 군사권에 이어 사법권에서까지 보다 더 강고한 권력을 확보한다면, 국가는 필시 의사당 안으로까지 권력을 확대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의사당 안에서 주먹다짐을 하고 이단 옆차기를 하는 진풍경을 볼 수 없게 되어 유권자들의 마음이 편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발전인 동시에 퇴보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국가가 보다 더 강고한 권력을 확보하여 정치세력 간의 물리적 싸움을 극도로 제약하는 현상은 최고권력자의 독재를 한층 더 강화하는 데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려면, 시민사회와 국가가 권력을 일정 정도 분점하는 상태에서 그 가운데에 있는 정치세력들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별다른 거리낌 없이 의사당에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그런 행동을 견제할 만한 국가의 역량은 물론 시민사회의 역량도 아직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시민사회의 정치적 성숙만이 세련된 국회의원들을 배출하는 본질적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07.12.15 14:29 ⓒ 2007 OhmyNews
#이명박 특검법 #국회 #정치투쟁 #정치발전 #시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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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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