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는 왜 전쟁 중에 조공을 거절했을까?

등록 2007.12.16 13:21수정 2007.12.1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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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115년에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운 뒤부터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1117년에 고려를 번속국(사대하는 나라)으로 만든 금나라는, 1125년에는 송나라(북송)와 연합하여 요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1125년 연말부터 송나라를 공격한 금나라는 1127년에 송나라 황제 흠종을 체포해서 북쪽으로 끌고 가는 이변을 일으켰다(정강의 변). ‘여진족의 역사는 한민족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올라간 것보다도 더 큰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흠종의 형제인 고종이 조정의 추대를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역사가들은 이때부터를 편의상 남송이라고 부른다. 고종이 즉위할 당시만 해도 송나라는 아직 중원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금나라의 파상공세에 밀려 황하도 내주고 회수(황하와 양자강의 중간)도 내주고 급기야는 양자강까지 내줄지 모르는 상황으로 내밀리게 되었다.

이 시기에 송나라 정부가 특히 힘들었던 것은 물자 부족 때문이었다. 동북쪽의 금나라는 물론 서쪽의 하나라도 이따금씩 공격해 오는데다가 지방세력들의 반란이 끊임없이 발생했기 때문에, 송나라는 전쟁물자를 확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졌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송나라가 외국의 조공을 거절하는 사건들이 계속 발생한 것이다. 송나라는 고려의 조공도 거절하고 안남(베트남 쪽)의 조공도 거절했다. 

송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송사> ‘고종본기 3’에 따르면, 건염 4년(1130) 12월 경오(庚午)일의 외교관계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 날, 남쪽의 안남국에서 조공을 해왔지만, 송나라 정부가 이 조공을 거절했다고 <송사>는 말하고 있다. 전쟁물자 확보가 시급한 전시상황에서 송나라가 고려나 안남 같은 이웃나라들의 조공을 거절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점을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것은, 송나라가 이상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많은 한국인들이 그동안 조공에 대해 중대한 착오를 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시대에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조공의 경제적 본질을 파악한다면, 물자가 시급히 필요하던 송나라가 조공을 거절한 데에는 당연한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일반적인 착오와는 달리, 조공은 동아시아 특유의 국제무역 시스템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조공은 일방적인 증여행위가 아니라 쌍방적인 매매행위였다.

이와 같이 조공이 쌍방적인 매매행위였기 때문에, 조공물자를 갖고 들어오는 고려나 안남에 대해 송나라가 부담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웃나라에서 갖고 온 물건들이 탐나기는 하지만, 자국에서도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다. 돈 없고 배고플 때에 는, 식당에서 고기 냄새가 풍겨 나온다 해서 무턱대고 식당 문을 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송사> ‘고종본기’를 보면, 송나라가 전시에 국내 교역을 일정 정도 제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시 중에 상품의 지역적 이동에 대해 국가권력이 개입하는 방식을 취했던 것이다. 이는 송나라의 물자가 금나라 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국내의 부족한 물자를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였다.

이렇게 자국 물자의 해외 유출을 통제하던 송나라 입장에서는, 고려나 안남의 조공을 받고 기뻐하기에 앞서 그 나라들에게 자국의 물자를 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더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아쉽지만’ 조공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거 동아시아의 무역 원리를 살펴보면, 송나라가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동아시아의 무역을 지배한 그 원리라는 것은 바로 전통적인 예법질서였다.

중국이나 고려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지배층은 조공무역을 통해 실질적으로는 장사행위를 하면서도 자신들은 결코 장사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특히 중국인들은 “신하의 나라 혹은 아들의 나라 또는 동생의 나라에서 선물을 들고 인사를 하러 왔기 때문에 우리도 주군 혹은 아버지 또는 형으로서 아랫사람에게 답례를 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윤 논리가 아닌 예법 논리가 동아시아 조공무역을 지배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조공무역에서 윗사람의 위치에 있는 나라는 경제적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일정한 예외는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에 주군·아버지·형의 입장에 있는 나라는 자국이 받은 것보다도 더 많은 답례를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는 설날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찾아가 선물을 하면, 윗사람은 체면상 혹은 도의상으로라도 더 많은 선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좀 더 가까운 실례를 들면, 후배가 항상 평균적으로 5만원치 정도의 술을 사면 선배는 그 이상의 술을 살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높은 나라’들은 받는 것 이상으로 회사(回賜, 답례)를 해야 했던 전통시대 동아시아에서, 중국 같은 나라들은 조공무역에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외국과의 전쟁에 물자를 쏟아 부어야 하는 송나라 같은 입장에서는, 고려나 안남처럼 ‘눈치 없게’ 조공을 하는 나라들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똑같은 규모의 답례가 아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규모의 답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서는, 그런 조공을 거절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상국(上國)은 하국에게 더 많은 답례를 해야 한다는 WTO(세계무역기구) 규정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 일종의 국제관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이 이웃나라들과 관계를 맺을 때에는 의례히 “우리에게 사대를 하면 우리에게 조공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는데, 이 약속은 ‘우리에게 사대만 하면 너희는 조공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깔고 있는 것이었다. 이처럼 처음부터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이웃나라들의 사대를 받은 중국의 입장에서는 조공무역에서 기본적으로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 중국은 무슨 대가를 바라고 조공무역을 받아들인 것일까? 1945년 이후에 미국이 한국을 경제적으로 원조한 사실을 생각하면 그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조공무역에서 경제적 손실을 보는 대신에 역내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중국이 대외무역에서 언제나 적자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정부 간 무역형태인 조공무역에서는 대체적으로 손실을 보았지만, 갖가지 편법으로 진행된 각종 무역까지 포함하면 중국은 오히려 무역흑자를 누린 편이었다.

이와 같이 전통시대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조공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경제적 손실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송나라가 전쟁 중에 고려나 안남의 조공을 거절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공을 ‘갖다 바치는 것’으로 생각하면 위의 현상을 이해할 수 없지만, 조공을 ‘이익이 남은 무역’이라고 생각하면 송나라가 왜 조공을 거절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법질서 하에 진행된 조공무역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조공을 수치스러운 일로 오해한 서양 지식인들의 영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조공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조공이란, 사대하는 나라의 입장에서는 체면이 좀 구기기는 해도 경제적으로는 이익이 남는 동아시아 특유의 무역행위였던 것이다.
#조공 #동아시아 #송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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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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