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잡던 검사들이 삼성 잡겠다고?

[取중眞담] 3인의 삼성특검 후보 그리고 대통령의 선택

등록 2007.12.17 21:19수정 2007.12.17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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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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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국 신부 등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관계자들과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1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이진강 대한변협 회장의 면담을 요구했으나 문전박대로 불발됐다. ⓒ 장윤선


"대한변협이 대통령을 조롱했다. 변협 회장 자리는 개인권한만 있는 게 아니다. 변협 회장 직함을 가진 자에게 믿고 맡길 테니 민의에 따라 공정한 인사를 추천하라는 게 특검법의 취지다. 이걸 악용했다. 최소 3인을 추천하라면 수사능력 갖춘 원로검사·형사법원 출신 판사·시민단체 활동 중인 법조인… 뭐 이래야 공정한 것 아닌가. 공안검사 일색이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17일 오전 대한변호사협회가 삼성 특검 후보로 조준웅·고영주·정홍원 3인을 추천했다는 긴급뉴스가 타전되자 한 중견 법조인은 긴 한숨을 토했다.

민변 출신 변호사들이 대통령부터 민정수석, 대통령 비서실장, 법무부장관, 노동부장관 등까지 두루 차지하면서 비롯된 법조 내부 '반노 정서'가 결국 삼성 특검에서 '대통령을 조롱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걱정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최대의 부정부패사건이 터졌고, 이를 엄정하게 수사해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데 변협이 이걸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이 이 가운데 선택할 사람은 딱 1명이라는 게 더 황당하다고 개탄했다. 

박정희-전두환 시절을 호가했던 공안검사들이 삼성특검?

기실 조준웅 전 인천지검장과 고영주 서울남부지검장은 박정희-전두환 시절을 호가했던 이름난 공안검사다. 우리나라 검찰에 공안부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64년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에서다. 간첩이나 반체제세력 수사를 전담하는 부서에 '공공의 안전'을 뜻하는 '공안'이라는 용어를 붙였다는 것이다. 그 뒤 73년에는 대검에도 공안부가 생겼다.

1964년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도 참여했던 한일회담 반대투쟁, 베트남 파병반대 같은 학생시위가 극렬했던 때다. 또 73년은 유신개헌 직후다. 이를 미뤄볼 때, 검찰 공안부와 정권안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함수관계에 놓여 있다. 국가안보를 위해 공안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정권안보를 위해 일해왔기 때문이다.


79년 크리스찬아카데미사건으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김세균 서울대 교수, 장상환 진주 경상대 교수 등을 수사한 바 있는 조준웅 전 지검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평가가 있다. 당시 사건 관계자였던 한명숙 전 총리는 조 전 지검장을 일컬어 '냉전적 사고방식이 투철한 반공투사'로 표현하고 있다.

장상환 진주 경상대 교수도 조 전 지검장을 가리켜 "박정희정권 유지에 맹렬한 사람이었다"며 "군사 독재적 사고방식에 젖어 기득권 옹호에 앞장섰던 공안검사가 '삼성 이건희왕국'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또 "조 전 지검장이 직접 피의자들을 고문한 적은 없지만 협박한 적은 있다"며 "안기부에서 진술한 내용을 사실로 자백하지 않으면 형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 똑똑히 기억에 남아 있다"고 전했다.

조 전 지검장은 평검사 시절 긴급조치 사건에도 관여했다. 긴급조치 사건은 올해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대표적 인권침해사건으로 재심이 필요하다고 천명한 바 있다. 긴급조치는 유신시절 최다 사법피해자들을 양산했던 사건이다.

김포매립지 환경소송에서 기업 편든 검사가 특검 자격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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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비자금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 조사를 받고 있는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의 야경. ⓒ 권우성



고영주 전 서울남부지검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에 관여했던 '부림사건'을 맡았던 공안검사다. 1983년 서울지검 검사로 부산지역 시국사건인 '부림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고 전 지검장과 당시 이 사건을 맡았던 노 대통령은 적대적 관계에 있었다. 노 대통령은 이 사건으로 인권변호사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고 전 지검장은 27년간 검사생활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남은 구(舊) 공안'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검사생활을 마감할 때도 '정부가 공안검사를 홀대한다'고 비판하고 떠났다.

2006년 퇴임 당시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도 그는 "공안사건은 개인의 이익이 아닌 국익을 침해하는 사건이어서 국민 개개인은 큰 관심이 없다"며 "그러나 공안이 일을 안 하면 나라는 겉으론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멍이 든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고 전 지검장은 본인 스스로 "김대중 정부 때 '제거 대상 검사 10걸' 가운데 1명이었다"며 "날 내보내려고 비리나 인권침해 사례 등을 찾았는데 그런 게 없으니까 결국 좌천하고 말았다"고 민주개혁정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피력했던 바 있다.

고 전 지검장의 이력을 보면 83년 서울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수사에 참여했으며, 부림사건 수사, 전학련 삼민투 이적단체 기소, 검찰 최초로 한총련(5기)에 대한 이적단체 규정을 했던 인물이다.

그는 보수 인터넷신문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전교조가 내세우는 '참교육'과 민중민주주의 이론에 이적성이 있다"며 "공산주의 선전 이론의 거대한 사기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적도 있다.

98년 서울지검 형사2부 재직시절에는 김포매립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공유수면매립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과 류성용 사장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그 당시 동아건설이 80년 농경지 용도로 김포매립지 매립 면허를 받았음에도 황무지로 방치하다 용도변경을 신청한 것은 개발차익을 챙기려는 탈법적인 기업경영의 전형이라고 비판했었다.

시민단체 "노 대통령, 대한변협에 삼성 특검 재추천 요구해야"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 지난 28일 오후 삼성비자금 특별수사·감찰본부가 설치된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권우성


고영주 전 지검장과 조준웅 전 지검장 모두 '공안통'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선뜻 삼성그룹 비자금 비리 수사의 권한을 부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는 정권 초기부터 이어져 온 '반노정서'가 있는 터라 자칫 '대선 당선 축하금 조사' 등에서 노 대통령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 재임 시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바 있는 정홍원 전 법무연수원장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정홍원 전 법무연수원장은 대검 강력과장, 중수부 3과장·4과장, 서울지검 3차장, 대검 감찰부장, 부산지검장 등을 지냈다. 노무현정부에서는 장관급 대우를 받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바 있다.

그는 97년 서울지검 특별범죄수사본부 시절, 의정부지원 판사비리 사건과 관련 변호사들로부터 수백만원을 받는 등 금품 및 향응을 제공 받은 판사 15명에 대해 대법원에 명단을 통보해 중징계를 요청했다. 광주지검 검사장으로 재직 시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인터넷 음란사이트 사냥대회'를 전국 최초로 열어 '사이버공간의 오염실태'를 알리기도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특수수사통으로 대검 중수3과장 시절에는 컴퓨터해커를 처음으로 적발하기도 했다. 동기생 가운데는 가장 먼저 검사장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현재는 대형 로펌 로고스 소속 고문변호사다. 법무법인 로고스는 기독교 변호사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졌으며, 김승규 전 국정원장도 이 로펌 소속 고문이다. 삼성비자금 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와 삼성그룹 법무팀에서 3년간 함께 활동했던 윤영철 전 헌법재판소장도 로고스의 고문변호사다.

로고스 역시 삼성 측 사건을 상당부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입장을 대변하기에는 충분하지만, 삼성 측을 수사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뜻이다. 자신이 소속된 로펌에서 삼성 측 법률대리인을 하고 있는 판에 임기 105일짜리 삼성 특검을 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법조계 내부의 우려 섞인 시각도 존재한다.

"대한변협, 노무현 대통령 조롱하는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변협이 특검 후보를 추천한 날로부터 3일 이내 특별검사를 결정해야 한다. 민변과 참여연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떡값검사' 수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검찰 출신 후보자가 특별검사가 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변협이 재추천을 해야 한다는 비판인 것이다.

하창우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이 회원들의 뜻을 어긴 채 특검 후보를 추천하고 사라진 배경에 대해서도 해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헌법소원이라도 제기할 판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대한변협에 재추천을 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삼성 특별검사를 결정할 날은 딱 3일 남았다. 이 후보자 가운데 낙점할만한 인물이 없다면 노 대통령은 대한변협에 재추천을 요구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삼성 비자금 #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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