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차량에 탑승한 거야?

[자전거 세계일주 43] 멕시코 산 루이스

등록 2008.01.18 12:59수정 2008.01.3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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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슈아 트리 미국 남서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여호수아 나무. 개척 시대에 한 선교사가 기도하는 모습의 나무를 보고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멕시코 북부에는 선인장을 흔하게 볼 수 있다. ⓒ 문종성

▲ 죠슈아 트리 미국 남서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여호수아 나무. 개척 시대에 한 선교사가 기도하는 모습의 나무를 보고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멕시코 북부에는 선인장을 흔하게 볼 수 있다. ⓒ 문종성

펑크난 자전거와 부실한 견인 차량으로 인해 제대로 달리지도 못한 채 다시 산 루이스로 돌아온 밤. 검문소 앞에서 갑자기 차량이 우회전 했다.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견인차량이나 견인된 차량 일행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군인도 아니고 경찰도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아무튼 그들의 지시대로 그들은 모두 밖에 나왔고 졸린 나는 그대로 웅크린 채 차에 남아 상황을 지켜봤다.

 

그 때 검문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힐끗 나를 쳐다보며 나에 대한 얘기가 오고가고 한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말을 걸어왔다.

 

"너, 누구니?"

"나? 자전거 여행자. 아침에 여기 검문소 지나가던 사람이야. 기억 안 나?"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우리 안 원숭이 바라보듯 창을 사이에 두고 손전등을 비춘 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침에 본 거 같기도 하고…. 여권 좀 보여줘."

"여권? 있긴 있는데 그거 빼내기 귀찮은데."

 

한밤중에 만난 느닷없는 검문

 

나는 몹시 피곤하고 또 여권은 가방 깊숙이 있어 빼내기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으므로 오만 피곤한 인상을 다 쓴 채 부담감을 표시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망부석처럼 기다리고 있는 그의 표정에 질려 기어이 차에서 내리고 말았다.

 

"이상 없으면 어떡할 건데?"

다분히 감정적인 어조로 쏘아댔지만 심각하게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네 사정이야'라는 표정의 그들을 보니 부아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 때 한 남자가 내 핸들바 가방을 손대려고 할 때 난 그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손대지 마!" 날카로운 목소리가 어수선한 틈을 메워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물론 둘이 있다거나 상황이 더 악화된 곳에서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를 말이다.

 

하지만 경찰같이 보이는 사람들과 두 차의 일행 등 스무 명은 넘게 있었으므로 뭐라도 믿을 구석이 있어 큰 소리를 외칠 수 있었다. 경찰이라도 최소한의 사전 양해 없이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에 기분 좋을 리가 없었다. 나쁜 의도는 없어 보였지만 그는 내 말에 뜨끔했는지 이내 손을 치웠다.

 

트렁크로 가 가방 깊숙이 보관해 둔 여권을 어렵사리 빼냈다. 여권을 조사하던 그에게 이런저런 나에 대한 얘기를 했고, 펑크가 나 이 차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있는 그대로 사실을 얘기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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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질주 나도 지치고 자전거도 탈나고... ⓒ 문종성

▲ 끝없는 질주 나도 지치고 자전거도 탈나고... ⓒ 문종성

그들은 R15총을 소지한 나보다 젊어보이는 PGR대원들이었다. PGR(Police Generation Republic)은 미국 FBI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한다.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 검문하는 그들의 분위기에 뻥튀기 냄새가 물씬나지만 그대로 믿어주기로 했다. 내 신변이 이상없음을 확인하자 그때서야 나와 경찰들 간의 분위기는 부드러워질 수 있었다.

 

"무슨 문제요?"

"이 사람들에게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차량의 사람들을 잡고 있었다. 영문을 몰랐지만 조지 역시 표정이 그리 유쾌해 보이지는 않을 걸로 봐서 뭔가 건수가 걸린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포박하거나 거칠게 대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살인이나 마약 같은 특수 범죄는 아닌 듯 보였다. 단순한 음주 운전 문제 때문일까? 그렇다면 검문소 오기 전 앞서 진행된 검문에서 걸렸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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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걸렸어! 자전거에 후미등을 달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고 딱지를 뗐다. ⓒ 문종성

▲ 딱 걸렸어! 자전거에 후미등을 달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고 딱지를 뗐다. ⓒ 문종성

"나 아무래도 감옥갈 것 같아, 너 혼자 가"

 

내가 확실히 이들과 한 통속이 아니란게 밝혀지자 슬슬 분위기가 나만 배려받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사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어수선하고 축 처진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얼른 사진기를 꺼내든 나는 철없이 말했다.

 

"저기 사진 좀 찍어도 될까?"

"노!"

그들은 한결같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이, 왜 이래? 이것도 인연인데. 그럼 총만 찍을게."

"안 돼."

다시 한 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짜 안 돼?"

"글쎄, 안 된다니까."

 

삼세 번 거절하자 더 이상 물어보지 못하고 입맛을 다신 채 사진기를 다시 집어넣었다. 어느 새 이곳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난 그들과 이런저런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 이제 날은 아까보다 더욱 추워졌다. 잠바를 걸친 채 치아를 떨던 난 셔츠에 조끼만 입고 있는 대원에게 춥지 않냐고 물었다.

 

"별로. 늘 이렇게 생활하는데, 뭘."

별 싱거운 녀석 같으니. 분명히 추울텐데 폼 잡기는.

"종성. 나 아무래도 감옥 들어갈 것 같아. 자전거를 내려 너 혼자 가야 할 것 같은데."

 

잠자코 상황을 주시하던 조지가 사태가 장기화될 것 같아 말을 건넸다. 옆에서 듣고 있던 대원도 그게 좋겠다며 나 혼자 가라고 거든다. 하지만 검문소에서 이 찬바람에 또 자전거를 타고 가라니 난 갈 수 없다며 망설였다. 대원이 말했다.

 

"그럼 트럭 한 대 잡아줄테니 거기에 싣고 가."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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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그저 황량할 뿐. ⓒ 문종성

▲ 사막 그저 황량할 뿐. ⓒ 문종성

 

조지는 대관절 어떤 잘못을 저지른 걸까?

 

그렇게 트럭을 잡고 다시 산 루이스 시내로 가기로 했다. 그래도 이 순간 내게 잘해 주었던 조지와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

 

"고맙고 아쉬운데 사진이라고 찍죠?"

조지는 지금 상황이 그리 유쾌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배려해 응해 주었다. 그의 태도로 봐서 사실 그리 큰 범죄인 건 아닌 듯했다. 다만 시간이 좀 필요한 조사인지는 모르겠다. 조지와 사진을 찍은 후 대원이 잡아준 트럭에 올라탔다. 이제 대원들은 내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잘 가. 조심하고."

"뭘, 내일 아침이면 또 여기서 보게 될텐데."

"하하, 그건 모르지. 내일 아침 근무 때 내가 여기 있을지 어쩔는지."

"어쨌든 고마워, 트럭 잡아줘서. 갈게. 조지, 나 갈게요. 고마워요."

 

복잡한 분위기 속에서 혼자만 빠져 나가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내일 다시 이 사막을 지나기 위해 몸을 추슬러야 하는 나도 마냥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조지는 대관절 어떤 잘못을 저지른 걸까? 거기에 견인된 차량의 사람들은 또 왜 묶여 있는 걸까? 나쁜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아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부디 심각한 상황은 아니기를. 그래도 나쁜 사람들 같지는 않아 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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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그냥 그늘도 없는 도로 옆에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먹는 꿀맛 식사. 이 때가 가장 행복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 ⓒ 문종성

▲ 식사 그냥 그늘도 없는 도로 옆에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먹는 꿀맛 식사. 이 때가 가장 행복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 ⓒ 문종성

아침에 출발한 도로를 역으로 들어오니 익숙한 풍경이 마음을 또 한 번 무겁게 했다. 그리고 나는 밤을 넘어 새벽으로 치달을 무렵 참 괜찮은 청년 하나를 만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강도 사건으로 사진이 없어 미국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

2008.01.18 12:59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강도 사건으로 사진이 없어 미국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
#세계일주 #자전거 #문종성 #멕시코 #비전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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