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서 '입시'를 빼고도 남는 것이 풍성해야

'전국참교육실천대회'에서 아름다운 교사를 만나다

등록 2008.01.23 10:34수정 2008.01.2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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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배우고 가르치고  방학은 교사들에게 재충전의 기회다. 제 7회 전국참교육실천대회 사회교육분과마당에서 열심히 연수중인 선생님들의 모습을 담았다.

배우고 가르치고 방학은 교사들에게 재충전의 기회다. 제 7회 전국참교육실천대회 사회교육분과마당에서 열심히 연수중인 선생님들의 모습을 담았다. ⓒ 안준철

▲ 배우고 가르치고 방학은 교사들에게 재충전의 기회다. 제 7회 전국참교육실천대회 사회교육분과마당에서 열심히 연수중인 선생님들의 모습을 담았다. ⓒ 안준철

 

교육은 내게 무엇일까? 가령, '교육은 (        )이다'라는 식으로 괄호 속에 들어갈 내용을 채워야 한다면 맨 먼저 떠오르는 글자는 과연 무엇일까? 

 

교육은 아픔이다. 그렇다. 교육은 지금 내게 아픔이다. 왜 하필 아픔일까? 교육과 입시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 나라에서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자로서 아픔 없이 교육을 얘기하고, 아픔 없이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입시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 것이다.


고등학교의 존재 이유를 대학진학에 있다고 보는 것이 입시교육이다.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지만 엄연히 틀린 말이다. 그런 논리라면 중학교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초등학교는 중학교 진학을 위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공식을 압축하면 초등학교가 대학 입시를 위해서 존재하는 꼴이 된다.

 

하긴 한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 먼 훗날의 대학 입시만을 염두에 두는 학부모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사회가 돼 버린 지 이미 오래이다. 오히려 일찍부터 아이의 미래를 염려하고 준비하는 현명한 부모의 전형이 될 소지마저 있다. 조급한 현실주의가 대세가 되면서 만들어진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교육’에서 ‘입시’를 빼면 남을 것이 별로 없는 사람에게 입시교육은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교육에서 입시를 빼도 남는 것이 풍성한 사람들의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내 아이가 자기 자신과 이웃에게 진실하고 넉넉한 인간으로 커가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아이들이 학창의 경험을 통해 ‘나’도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거나 생각의 변화 과정을 겪는 것은 또한 얼마나 중요한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한 번도 나무를 심어본 경험이 없는 교사가 문득 학생들도 자기와 비슷하겠거니 생각하고 특별재량활동 시간을 이용하여 나무를 심어보자는 제안을 한다. 단, 나무를 구해서 특정 장소에 나무를 심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교사의 도움 없이 모둠별로 상의하여 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학생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땅을 파서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가슴 뿌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막막해 보이는 일도 함께 마음을 모으고 방법을 찾다 보면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자발성과 협동을 통해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낸 것도 하나의 소득이었다.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자기 발견도 큰 수확이었다.  

 

중학교 3학년 사회과목에는 ‘민주 정치와 시민 참여’라는 단원이 있다. 이 단원을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회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데 있다. 이것이 입시교육의 관점이다. 옳다고 보는가? 옳지 않다면 고치는 것이 마땅하다. 마땅한데도 하지 않는 것은 엄연한 직무유기다. 다행히도 그 마땅한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교사들이 있다. 이른바 ‘참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교사들이다.

 

a '제 7회 전국참교육실천대회' 개회식 장면  지난 1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 4일 동안 전남대학교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주최하는 제 7회 전국참교육실천대회가 열렸다. ‘교육주체 소통하여 참교육과정 실현하자’라는 주제를 갖고 38개 분과 1,200 여명이 참여하여 다양한 현장 연구 및 실천사례들을 발표했다.

'제 7회 전국참교육실천대회' 개회식 장면 지난 1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 4일 동안 전남대학교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주최하는 제 7회 전국참교육실천대회가 열렸다. ‘교육주체 소통하여 참교육과정 실현하자’라는 주제를 갖고 38개 분과 1,200 여명이 참여하여 다양한 현장 연구 및 실천사례들을 발표했다. ⓒ 안준철

▲ '제 7회 전국참교육실천대회' 개회식 장면 지난 1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 4일 동안 전남대학교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주최하는 제 7회 전국참교육실천대회가 열렸다. ‘교육주체 소통하여 참교육과정 실현하자’라는 주제를 갖고 38개 분과 1,200 여명이 참여하여 다양한 현장 연구 및 실천사례들을 발표했다. ⓒ 안준철

 

전국참교육실천대회 사회교육분과마당에서 만난 정금자 교사(전남사회교사모임, 무안 현경중)는 ‘민주 정치와 시민 참여’ 단원을 다루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참여활동을 하도록 수업계획안을 짰다. 수업을 하는 이유랄까, 목표랄까 하는 것은 다음 세 가지였다.


첫째, 사회참여활동을 통해 내가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둘째, 공동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 해결과정에 참여하려는 태도가 사회를 발전시킨다.

셋째,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나 또한 행복하게 한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사회를 만들려면 어렸을 때부터 사회 참여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정 교사의 주장이다. 하지만 자발성이 부족하고 사회과목을 암기과목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학생들을 설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굳건히 뿌리내린 입시교육의 풍토가 최대의 걸림돌이었다. 정 교사는 마치 자기 자신에게 속삭이듯 아이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일을 실천에 옮길 수만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학교와 이웃과 지역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첫 걸음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생각한 바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게 된다면 그것을 시작으로 더 큰 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a 정금자 선생님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는 글자가 보인다. 정교사가 수행평가로 실시한 '사회참여활동'에서 한 모둠이 발표한 내용이다. 자료집에는 학생들이 군청직원들과 통화한 내용까지 빼곡하게 적혀 있다.

정금자 선생님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는 글자가 보인다. 정교사가 수행평가로 실시한 '사회참여활동'에서 한 모둠이 발표한 내용이다. 자료집에는 학생들이 군청직원들과 통화한 내용까지 빼곡하게 적혀 있다. ⓒ 안준철

▲ 정금자 선생님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는 글자가 보인다. 정교사가 수행평가로 실시한 '사회참여활동'에서 한 모둠이 발표한 내용이다. 자료집에는 학생들이 군청직원들과 통화한 내용까지 빼곡하게 적혀 있다. ⓒ 안준철

 

정 교사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해결해야 할 문제로 가득 차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도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일부 학생들. 청소년들이 활용하려는 시간에는 문을 닫고 있는 사회시설들. 움푹 패여 비가 오면 물을 튀기게 만드는 도로들.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 일부 외국인 노동자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만성적인 실업자들 등등.


아름다운 것은 이런 문제들을 바라보는 정 교사의 시각이다. 학생들의 사회참여 활동 안내를 위한 학습지에는 이런 내용도 눈에 띈다.  


“문제로 가득 찬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인생을 보람 있게 만듭니다.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고 우리가 개선해야 할 것들이 남겨져 있지 않다면 얼마나 재미없는 세상이 될까요?”

 

사회참여 활동 수업 일정은 총 3차시로 구성되어 있다. 첫 시간에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회참여수업 안내 및 사회참여 수행평가 안내를 한다. 둘째 시간에는 모둠을 구성하여 사회참여 계획을 세우고 모둠별로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 후 3주간의 실시 기간을 갖고 마지막 셋째 시간에 활동내용을 발표하고 평가한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님히히밤’이라는 아리송한 이름을 가진 한 모둠은 부서지거나 고장 난 사물함을 새 것으로 교체해 달라고 건의하는 것을 활동주제로 정했다. 먼저 부서진 사물함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사진 촬영을 한 뒤에 그것을 교장선생님 앞에 ‘문제점 사진자료’로 제시했다. 그 결과,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빠른 시일 내에 사물함을 교체해주겠다는 확답을 얻고 사인까지 받는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이룬 쾌거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지만 사물함 교체는 학생들의 요구가 있기 전부터 이미 계획된 일이었다고 한다. 물론 정 교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모른 체하고 이렇게 ‘립 서비스’를 해주었다고 한다.

 

“햐, 교장선생님을 움직이다니 너희들 정말 대단하다!”

 

a 장경주 교사와 사회교육분과 선생님들  사회교육분과마당에서는 평화교육, 지역 모임의 사례발표, 대안교과서 사업 등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잠시 들렸다가 다른 분과로 자리를 옮기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교사들의 뜨거운 열기 때문이었다.

장경주 교사와 사회교육분과 선생님들 사회교육분과마당에서는 평화교육, 지역 모임의 사례발표, 대안교과서 사업 등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잠시 들렸다가 다른 분과로 자리를 옮기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교사들의 뜨거운 열기 때문이었다. ⓒ 안준철

▲ 장경주 교사와 사회교육분과 선생님들 사회교육분과마당에서는 평화교육, 지역 모임의 사례발표, 대안교과서 사업 등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잠시 들렸다가 다른 분과로 자리를 옮기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교사들의 뜨거운 열기 때문이었다. ⓒ 안준철

 

장경주 교사(대안사회분과 모임, 난곡중)는 “시키는 것만 하거나 시키는 것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주체가 될 수 없다”라는 인상 깊은 말로 사례발표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주체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대안사회분과’라는 명칭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 답은 ‘제 3의 길을 찾아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장 교사가 소속한 대안사회분과모임에서 단행본으로 발간한 <사회선생님이 뽑은 우리 사회를 움직인 판결>(휴머니스트)도 훌륭한 대안제시의 한 사례이다. 장 교사에 의하면, 대안사회분과에서는 2006년 법무부에 교사와 학생을 위한 판례집 프로젝트를 제안하였고, 2007년 1월경에 판례와 수업지도안을 결과물로 제출한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39개의 사건들을 모아 휴머니스트 출판사에 출판을 제안하였고, 6개월 정도 내용을 보완하여 한 권의 책으로 서점에 자리 잡게 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판결문일까? 장 교사는 <우리 사회를 움직인 판결>의 의의를 ‘법에 대한 관점의 변화’에서 찾고자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법은 일반인이 감히 접근하기 어려운 법전문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책은 법이 법전문가들만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시민의 법’이라는 관점을 새롭게 제기한다.


“개별적인 판례들을 전체적으로 읽어 보면 법을 통해 이해하는 하나의 현대사가 됩니다. 과거의 판례들은 당시 사회의 정의 수준과 사회적 논쟁점을 보여주고 최근의 판례들은 현재의 우리 사회의 합의된 정의 수준, 혹은 사회적 논쟁점들을 이해하게 해줍니다.”

 

판결문이 시사하는 것은 법이 완결된 형태가 아닌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완결된 형태의 사회가 아니듯, 법 또한 절대 진리로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완결된 법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럼에도 역사적 과정을 다루지 않음으로서 화석화된 법조문 교육은 법을 완결된 형태로 이해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 장 교사의 주장이다.

 

학교 현장의 입시교육은 이런 법조문의 화석화 현상을 가중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장 교사와 대안사회교육모임은 판례집의 현장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판례집을 활용한 수업지도안을 개발하여 현장에서 보완하고 전국사회교사모임에서 상설연수가 개설된다면 그 방안 모색이 가능하리라 보고 있다.

 

교육은 내게 무엇일까? 교육은 여전히 내게 아픔이다. 하지만 교육은 내게 사랑이요, 희망이기도 하다. ‘참교육실천대회’에서 만난 아름다운 교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여건상 그곳에서 만난 분들의 활동 내용을 다 소개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참교육’을 향한 사회교육분과 선생님들의 열정과 노력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2008.01.23 10:34ⓒ 2008 OhmyNews
#전국참실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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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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