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 칭기의 모습
김성호
트럭을 타고 칭기로 가는 길바오밥 거리에 이어 다음날 내가 간 곳은 모론다바에서 북쪽으로 150km 떨어진 베마라하 칭기 국립공원이다. 얼굴이 여우를 닮았다는 여우원숭이와 석회암이 부식된 뾰족한 바위 탑으로 유명한 칭기를 보기 위해서이다.
베마라하 가는 길도 험하고 힘들다. 마다가스카르의 오지 중의 오지이다. 당연히 제대로 된 길이 없고, 사는 사람들도 거의 없으니 대중교통이 있을 리 없다. 모론다바에서 베마라하를 갔다 오는데 보통 3일이 걸린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힘 안 들이고 제대로 구경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오지를 여행하는 배낭여행객에게 편한 여행은 오히려 여행의 참맛을 떨어뜨릴지도 모른다. 산악인들이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고 말하듯, 배낭여행객들은 험한 길이 있어 오지에 간다.
오전 9시께 나는 찰스와 함께 모론다바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갔다. 버스가 아니라 대형 트럭이 우리가 타고 갈 차량이다. 칭기로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에다 험하고 승객들도 많지 않아 트럭이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일반 여행객들은 모론다바에서 투어회사를 통해 지프를 이용한 단체구경에 합류한다. 나는 홀로 구경을 가다보니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방법 밖에 없다. 당연히 힘든 고생길이다.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는 대형 트럭을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프랑스어로 “카미옹-브루스(Camion-Brousse)”라고 불렀다. 트럭을 프랑스어로 “카미옹”이라고 하고, 니, “카미옹-브루스”는 영어로 “부시 트럭(Bush Truck)”이란 뜻이다. 이미 트럭 짐칸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트럭 천장에 비를 맞지 않도록 폴리에틸렌 가마니를 덮어 천장을 만들었다. 트럭 난간에는 양쪽으로 철제 간이의자를 설치해 7명씩 앉도록 했고, 가운데 트럭 바닥에는 나무판으로 깔아 승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도록 했다. 내가 탄 트럭도 모두 21명을 태우고 출발했다.
닭장차와 같이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말라위 음주주에서 은카타베이까지 짐과 승객이 뒤범벅이 되어 타고 갔던 트럭이 생각났다. 말라위에서는 대중교통수단인 트럭을 “마톨라(Matola)”라고 불렀다. 말라위의 마톨라는 마다가스카르의 카미옹-브루스에 비하면 정말 양반이다.
마귀할멈 같은 승객이 내 옆 자리에... 나는 트럭 난간의 간이의자에 간신히 끼워 앉았다. 그런데 내 바로 옆에 앉은 80대 할머니가 문제다. 똑바로 앞을 보고 앉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모아 옆으로 비스듬히 앉다보니 두 명 좌석의 공간을 차지해 버린다.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가 엉덩이를 비비며 할머니쪽으로 자리를 넓히려 하자 할머니는 발로 나의 엉덩이를 밀어낸다. 할머니의 횡포를 모든 승객들이 알아차린다. 보다 못한 한 아주머니와 남자 승객이 할머니에게 똑바로 앉으라고 이야기한다. 할머니는 아예 못 들은 척하다가 끝내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네가 뭔데 상관하느냐”는 투다. 마치 마귀할멈 같다.
마다가스카르는 역시 동양적 정서가 있다. 할머니가 두 좌석을 차지해 여행객에게 불편을 끼치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이 아닌데도 할머니한테 항의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에서는 “손님 보기 창피하다”는 우리네 정서와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아마 다른 아프리카 대륙이었으면, 할머니의 행동에 대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도 대다수 사람들이 모른 척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승객들 중에는 남자보다 여자들이 많았다. 남자가 8명이라면, 여자가 13명이다. 주로 모론다바에서 생활용품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장보는 것은 어디나 여자들의 몫이다. 어린아이도 두세 명 있는데 엄마 품에 안긴 곰 인형처럼 움직이지를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트럭짐칸에 타고 가는 지혜를 배우고 있다.
트럭 역시 타나에서 모론다바까지 왔던 봉고버스인 ‘택시-브루스’처럼 사람이 밀어야 시동이 걸리는 차량이다. 터미널부터 4명의 남자가 밀자 시동이 걸렸다. 택시-브루스 저리가라이다. 택시-브루스는 그래도 4~5시간을 달리다 고장이 났는데, 트럭은 한 시간마다 차가 달리다 선다. 고장이 아니라, 엔진의 열을 식히기 위해서 시간마다 멈춰야 했다. 얼마나 오랜 된 차량이면 엔진 과열 때문에 시동이 꺼지겠는가.
마다가스카르의 오지를 오가는 교통수단은 성한 차량이 하나도 없다. 트럭은 일본제인 닛산(Nissan) 트럭인데, 30년은 다 된 폐차 일보직전의 고물차량이다. 아니, 폐차 처분된 중고차량을 다시 수리해 사용하는 것 같다. 운전석과 조수석의 유리창문은 아예 없고, 차가 한번 멈췄다가 출발한 자리는 검은 기름이 땅에 흘러 검게 물들인다. 기름이 줄줄 새는 차량이다. 운전석 지붕 위에는 수시로 엔진오일과 물을 갈아주기 위해 큰 물통에 물을 가득 싣고, 엔진오일도 여러 통 준비해 다닌다.
젊은 남자차장이 3명인데, 이들은 차가 멈췄다가 출발할 때 시동을 걸기 위해 뒤에서 차를 밀고, 차 엔진이 꺼지면 일제히 엔진오일과 물통을 트럭 지붕 위에서 가져와 숙련된 조수처럼 보닛을 열고 물과 엔진오일을 교체한다. 10분 정도 엔진을 식힌 뒤 다시 차를 밀면 신기하게도 다시 시동이 걸려 출발한다. 워낙 큰 트럭이라 3명의 차장만으로는 부족해 남자 승객 중 젊은 사람들이 내려 차를 미는데 힘을 보탠다. 아프리카 차는 고장은 많아도 목적지까지는 간다는 사실이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