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커피숍에서 겪은 일이다. 종이컵에 담아 뚜껑을 덮어주는 커피를 사서 조금씩 마시다 보니 어느새 바닥이 드러났다. 동전 하나만 내면 다시 채워준다고 해서, 컵을 들고 점원에게 갔다.
돈을 내고 계산대에 빈 컵을 밀어놓는데도 점원이 그 컵을 집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잠시 서로 눈을 번갈아 보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눈치를 보던 여자 점원이 뺨을 붉히며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
"뚜껑을 직접 열어 주시겠어요?"
"그러지요" 하고 컵을 끌어당기자, 여자가 미안한 투로 이방인에게 한 마디 보탠다.
"웃기지요? 점원들은 손님이 한 번 썼던 마개는 못 만지게 되어 있거든요."
도서관에서 반납 업무처럼 남의 손이 닿았던 물건을 만져야 하는 사람들의 책상 위에는 흔히 살균제가 놓여있다. 남의 손에 '오염된' 물건과 닿은 자신의 손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염려를 덜기 위해 다양한 살균제들이 '최고의 살균력'과 '간편한 용법'을 요란하게 선전한다. '99.99%의 살균력'을 자랑하는 이 손바닥 로션들은 물도 필요 없다. 손바닥에 문질러서 말리기만 하면 된다.
'손 위생'에 대한 미국인들의 큰 관심은 살균용품 시장을 거대한 규모로 키워 놓았다. 에이피(AP)의 2008년 3월 9일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팔리고 있는 살균용 세정용품만 해도 1600종류가 넘는다. 기업들은 살균용품을 팔아 매년 수천억의 수익을 내며, 이 시장은 매년 커지고 있다.
재채기는 손이 아니라 팔뚝으로 막아라
손에 대한 관리는 예절과 규범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손은 어느 경우든 항상 오염되어 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손이 사회적 관용의 대상인 '일상적 오염' 이상의 상황에 노출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손바닥에 재채기를 하거나, 손을 씻지 않고 화장실 밖으로 나가는 행위, 그리고 땀에 젖은 손으로 악수를 청하는 것은 모두 사회적 금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오염 상황이 공적 장소에서 일어난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하거나 취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재채기는 안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불가피한 경우는 입을 막은 채 해야 한다. 손바닥은 곤란하다. 그 손은 언제든지 '교류용'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화폐나 손잡이·컴퓨터 키보드·수도꼭지 등 공적 자산을 광범위하게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재채기를 막는 데 가장 바람직한 부위는 팔뚝이다. 손목 위쪽에서 어깨에 이르는 어느 부위든 상관없지만, 최대한 손목에서 떨어진 어깨 방향을 고르는 것이 좋다. 손에서 가장 먼 곳일수록 타인에게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고, 어깨에 가까울수록 표면적이 넓어 공중으로 퍼지는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개된 장소에서 코나 귀·입 속에 손가락을 넣는 행위는 피해야 한다. 화장실 문밖으로 나가기 전에는 반드시 수도를 틀어야 한다. 반드시 비누를 쓸 필요도, 오래 씻을 필요도 없다. 주위 사람들은 잠재적 오염 대상이 물소리를 내는 것만으로 충분히 안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