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은 무슨 말을 배워야 할까?

[역사소설 소현세자 22] 언어의 관계학

등록 2008.03.25 17:40수정 2008.03.2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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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심양궁.  심양궁 후원에 있는 연회장소. 청나라가 북경으로 천도 할 때까지 대소 연회가 이곳에서 벌어졌다.

심양궁. 심양궁 후원에 있는 연회장소. 청나라가 북경으로 천도 할 때까지 대소 연회가 이곳에서 벌어졌다. ⓒ 이정근


조선 철군 본대보다 먼저 심양에 도착한 홍타이지는 연일 전승축하 연회를 열었다. 명나라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조선에 출정하여 삼전도에서 조선 국왕의 항복을 받아냈으니 신경 쓰일 일이 없었다. 이제 마음 놓고 만리장성을 넘어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홍타이지는 옥에 갇혀 있는 홍익한을 끌어내라 명했다.

숭정전 앞에 끌려나온 홍익한은 초췌했다. 조국 땅에서 조국의 관리에게 결박당하여 청나라 황제에게 인도 된 홍익한. 머나 먼 이국 땅, 심양까지 끌려오는 동안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전곶에서 홍타이지를 전송하던 인조는 척신(斥臣)을 묶어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어명을 받은 평안감사가 증산현령 변대중에게 홍익한을 체포하라 명한 것이 2월 12일. 변대중이 결박을 풀어주지 않아 물도 마실 수 없고 밥도 먹을 수 없었다. 홍익한의 모습이 안타까워 은산현감 이순민이 결박을 풀어주어 겨우 밥을 먹게 해주었다.

함거에 실려 의주에 도착한 홍익한은 미관첨사(彌串僉事) 장초에게 압송되어 황제의 행렬을 뒤따랐다. 조선을 정벌한 홍타이지의 전리품이었다. 홍익한을 발견한 용골대가 다가왔다.

a 숭정전 편액. 한자와 만주문자로 새겨져 있다.

숭정전 편액. 한자와 만주문자로 새겨져 있다. ⓒ 이정근


"너는 무슨 까닭으로 잡혀왔느냐?"

"나는 척화를 앞장서서 주장한 대간으로서 붙잡혀 왔다."

홍익한은 사헌부 관원이었다. 장령이면 정4품이다. 12월 14일. 남한산성으로 피신하던 인조가 홍익한에게 서윤(庶尹) 직책을 주며 평안도 보산성으로 떠나라 명했다.


이무렵 청나라 군대는 평안도를 휩쓸고 도성에 진입하고 있었다. 적지에 보낸 것이다. 이 때 이미 홍익한은 인조의 의중을 읽었다. 단순한 좌천이 아니라 화의를 위한 희생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너의 나라 조정의 관리 중에는 척화를 주장한 자가 많은데 어찌 유독 너 한 사람뿐인가?"


"내가 비록 이 지경에 이르렀으나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여 남을 끌어들이겠는가. 작년 봄에 네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소를 올려 너의 머리를 베자고 청한 것은 홀로 나 한 사람뿐이다."-<일사기문>

청나라 사신을 죽이자고 주장한 사람은 홍익한뿐만이 아니었다. 조정대신들도 척화와 주화로 갈려 극렬하게 대립했고 태학생 김수홍 외 138명과 유학(幼學) 이형기가 오랑캐 사신을 참하고 청나라에서 보내온 국서를 불사르자고 상소 했다. 심지어 사간 조경은 용골대가 대동한 서달(西㺚)을 국문(國門)에 들이지 말라고 주청했다.

서달(西㺚)의 대장 47명, 차장 30명과 종호(從胡) 98인을 거느리고 조선에 입국한 용골대는 "청나라가 이미 대원(大元)을 평정했고 옥새를 획득했다. 서달의 여러 왕자들이 대호(大號)를 올리기를 원하고 있으므로 귀국과 의논하여 처리하고자 차인을 보냈다. 그러나 이들만 보낼 수 없어서 우리들도 함께 온 것이다"라고 완곡하게 밝히고 있으나 궁극적인 요구는 군신관계였다.

조정대신들의 갑론을박이 비등점을 향하여 치솟고 있을 때, 홍익한이 상소를 올렸다.

"오랑캐 사신이 온 것은 바로 금한(金汗)을 황제라 칭하는 일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이 태어난 처음부터 다만 대명(大明)의 천자가 있다고만 들었을 뿐이었는데 이런 말이 어찌하여 들린단 말입니까? 우리나라는 천하가 소중화(小中華)라 일컫고 있으며 열성(列聖)들이 서로 계승하면서 한마음으로 사대하기를 정성스럽고 부지런히 하였습니다. 오랑캐의 한(汗)이 보낸 사신을 죽여 머리를 함에 담아 명나라 조정에 보내소서."-<연려실기술>

병자호란의 분수령

조정의 공기가 험악하다고 판단한 용골대는 황급히 창경궁을 빠져나와 북으로 말을 몰았다. 북상 길에 임금이 평안감사에게 보내는 밀서를 탈취했다. 밀서는 청나라와 화친을 끊었으니 국경 방비를 강화하라는 내용이었다. 보고를 받은 홍타이지는 대노했고 조선정벌을 결심하게 되었다. 병자호란의 분수령이었다.

2월 25일 심양에 도착한 홍익한은 심양궁 옥에 갇혔다. 햇빛도 들어오지 않은 어두운 감옥이었다. 3월 3일 답청일(踏靑日)이다. 우리나라는 삼월 삼짓날이라 하여 제비가 오는 날이라 하지만 청나라에서는 답청일로 경사스러운 날이다. 감옥에도 봄은 찾아왔다. 감옥에 파고드는 봄기운을 느끼며 홍익한은 시를 한수 읊었다.

양지바른 언덕에 새싹이 움트니/陽陂細草折新胎
새장 속의 외로운 새 더욱 슬프구나./孤鳥樊籠意轉哀
형의 답청 풍속 생각조차 못할소냐/荊俗踏靑心外事
금성에서 들던 술잔 꿈속에 떠오르네/錦城浮白夢中來
밤바람 돌을 날려 음산이 진동하고/風飜夜石陰山動
봄물은 눈이 섞여 월굴이 열리누나./雪入春澌月窟開
굶주리고 목마른 목숨 겨우 이어가는데/飢渴僅能聊縷命
백년 눈물이 오늘에 뺨을 적신다./百年今日淚沾腮
-<병자록>

"왜 무릎을 꿇지 않느냐?"
홍익한을 바라보던 홍타이지가 호통을 쳤다.

"이 무릎을 어찌 너에게 꺾을 수 있겠느냐?"

a 숭정전. 심양궁의 정전이다. 바닥과 계단이 옥으로 되어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 등 조선 궁궐 정전보다 품격이 떨어진다.

숭정전. 심양궁의 정전이다. 바닥과 계단이 옥으로 되어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 등 조선 궁궐 정전보다 품격이 떨어진다. ⓒ 이정근



홍익한의 두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홍익한은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창경궁의 한쪽 귀퉁이보다 못한 전각에 황제랍시고 좌정하고 앉아있는 홍타이지가 가소로워 보였다. 저런 무뢰한에게 머리를 조아린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지켜보던 용골대가 조마조마했다. 칼이 번쩍일 것만 같았다.

"무엇 때문에 척화를 주창했느냐?"

"너는 우리나라와 형제가 되기로 약속을 해 놓고 우리를 신하로 삼으려고 했다. 우리는 군신맹약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토록 척화를 주창하던 사람이 어찌 싸움을 하지 않고 이렇게 잡혀 와 있느냐?"

홍타이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조선 정벌을 결심할 때, 조선군의 군세가 강력할 것이라 예상했다. 일본 수군을 격파한 조선 수군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몇 차례의 대 회전(會戰)을 예상하고 동정(東征)에 나섰다.

압록강을 건너 한성에 이르는 동안 변변한 저항이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전투 없는 남진은 매복에 걸릴 위험이 있다며 진군 속도를 조절했다. 직접 동망봉에 올라 산성을 향하여 대포 몇 방 쏘았더니 조선왕이 항복하고 나왔다.

a 홍이포. 홍이포 포구. 심양궁에 전시되어 있는 홍이포. 산성에서 항전하던 조선군들은 동망봉에서 발사한 홍이포탄이 떨어지자 혼비백산했다.

홍이포. 홍이포 포구. 심양궁에 전시되어 있는 홍이포. 산성에서 항전하던 조선군들은 동망봉에서 발사한 홍이포탄이 떨어지자 혼비백산했다. ⓒ 이정근



임금도 그렇고 사대부라는 신하들도 그렇다. 도대체 무얼 믿고 그렇게 큰 소리치고 버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모든 힘은 칼끝과 대포에서 나온다는 것을 모르는 조선인들이 답답해 보였다. 군신관계를 유지하며 끌고 간다하더라도 아둔한 조선 때문에 골머리 아플 일이 많을 것만 같았다.

"대명(大明) 조선국에서 잡혀온 신하 홍익한이 화의(和議)를 배척한 사유는 분명히 설명할 수 있는데 다만 말이 서로 통하지 않으니 글씨로 써서 밝히겠다. 천하에 아버지가 둘 있는 자식은 없다. 하늘과 땅 사이에 어찌 두 천자가 있을 수 있겠는가?"

조선말을 만주어로 직통 통역할 능력이 있는 정명수는 도르곤과 소현세자와 함께 오느라 이 자리에 없었다. 조선말을 명나라말로 통역하고 그 말을 만주어로 통역해야 하니 답답했고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홍익한은 지필묵을 달라고 하여 거침없이 써내려갔다.

홍익한이 청나라 말이나 만주어를 구사할 줄 알았으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글은 건조하지만 말은 인간적인 감정을 실어 상대를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떠도는 말

말(言語). 이거 참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 성쇠를 다한 대한제국을 노려보는 열강들의 눈초리가 번뜩일 때, 이 땅의 젊은이들은 어느 나라 말을 배워야 미래가 있을까 고민했다. 청나라가 우세할 것이라 믿었던 사람은 중국말을 배웠고 노서아가 강할 것이라 예상했던 사람은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대륙보다도 해양세력이 강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영어를 배웠고, 일본이 일 낼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일어를 공부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이 들어오고 레닌의 '코민테른'이 들어올 무렵 노어가 반짝했지만 결과는 일어 세상이 되었다.

일어 천하가 누 백년 지속될 것이라 판단한 껍데기들이 일어판으로 몰려들었지만 일어 세상은 36년으로 끝났다. 그리고 영어가 밀려왔다. 영어가 한반도의 하늘을 덮고 있은 지 60여년. 이것도 부족하니 영어가 세세년년 지속될 것이라 믿는 사람들은 어륀쥐로 몰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한반도가 품고 있는 말의 의미다.

홍익한의 손에 쥐어진 붓이 신들린 듯 춤을 추었다. 까만 먹물을 적시며 백지를 점령해갔다.

"명나라는 조선에 대하여 오랫동안 어루만져 길러준 은혜가 있는 만큼 큰 은혜를 잊고 너희들을 따른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사리에 부당하다. 그러므로 앞장서서 척화의 논의를 세워 예의를 지키고자 한 것이다. 어찌 감히 다른 뜻이 있었겠는가. 더 할 말이 없다. 오직 빨리 죽기를 바란다."-<일사기문(逸史奇聞)>

홍익한은 처형되었다. 홍익한의 죽음은 명분이었다. 명분 하나에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다는 것은 가상한 기개다. 아무나 못하는 일이다. 홍익한은 조국에 노모가 있었고 전란에 어미 잃은 세 딸이 있었다.

홍익한이 죽음을 불사하며 내세운 명분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조선 임금에게 바치는 충성의 명분도 아니었고 전란에 고통 받는 조선백성들을 가엽게 여기는 명분도 아니었다. 대명(大明)이었다. 명나라 세상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조선국왕을 쓰다듬어주는 명나라 황제에 대한 의리였다.
#홍익한 #삼학사 #병자호란 #심양 #홍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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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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