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이산은 제도보다는 인사를 더 중시했다. 드라마 <이산>.
MBC
하지만, 실제의 정조 이산은 제도보다는 인사를 더 중시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는 무너져가는 조선왕조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유교적 이상사회를 구현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그 유교적 이상사회는 기존의 제도 속에서 얼마든지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새로운 세상을 희구하긴 했지만, 그 새로운 세상이란 것은 이상적인 유교 제도를 제대로 가동함으로써 산출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정조 임금은 진보적 개혁가가 아니라 보수적 개혁가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새로운 원료(제도)로 새로운 제품(세상)을 개발하기보다는 기존의 원료를 바탕으로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하고자 했다. 그러자면 보다 더 숙련된 고급 기술자(사람)들을 많이 충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이처럼 '더 나은 원료'보다는 '더 나은 기술자'를 중시한 관리자였다.
그는 '조선의 병(病)은 좋은 제도의 결여 때문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의 결여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람이 바뀌면 조선도 바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좋은 사람들을 조정의 요직에 배치해야만 조선왕조가 유교적 이상사회를 향해 전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제도보단 인사를 더 중시했던 정조집권 노론세력 중에는 좋은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사색당파를 골고루 기용하고자 한 것이고, 양반사회 외부에도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판단 하에 서얼들에게까지 눈길을 돌린 것이다. 그는 그처럼 좋은 사람들을 많이 얻고자 했다.
이처럼 정조는 인사관리에 주력한 군주였다. 이는 그가 탕평정치를 중시한 것과 맥락이 닿는 부분이다. 탕평정치라는 것은 제도개혁보다는 인사개혁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 물론 정조 임금이 제도개혁을 전혀 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분명히 제도보다는 인사를 더 중시하는 임금이었다.
동시에 이것은 정조 임금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랬다고, 새로운 세상을 열자면 사람들만 바꿀 게 아니라 제도까지도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정조는 제도개혁보다는 인사개혁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한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정조 임금의 진면모를 그려내고자 한다면, 그가 다양한 당파의 사람들을 어떻게 정부 요직에 배치했고 각 당파 간에 발생하는 갈등을 어떻게 조절했는지를 잘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제도보다는 인사를 더 중시하는 정조 임금의 한계를 함께 보여준다면, 보다 더 균형 있는 드라마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사관리는 하나도 보여주지 않은 채, 정조 임금이 즉위 후에도 여전히 최석주를 이조판서로 기용하고 또 반대파들만으로 정부를 구성했다고 묘사하고 있으니, 드라마 <이산>은 정조 이산의 실제 모습과 너무 많이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정조 임금의 매력은 '리더십'에 있다정조 임금의 매력은 무엇일까? 온 세상이 자신을 미워하는 속에서 반대파들에 맞서 싸우는 그런 것이 아니다. 서로 이질적이고 다양한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고 그들을 한 방향으로 이끄는 리더십에서 정조 임금의 매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산에게 정조 선황제라는 존호를 부여할 때에, 조선정부는 '안팎의 복종을 받은 임금'이기 때문에 그에게 정(正)자를 부여한다고 했다. 이는 그의 리더십을 칭송하는 말이다. 그만큼 정조 임금은 이질적이고 다양한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이끄는 면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정조 임금의 탕평정치가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탕평정치는 분명한 한계를 노정했다. 하지만, 제한적으로나마 탕평정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만큼 상당한 리더십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정조는 결코 자기 편 사람들을 장관에 임명하지도 못하고 또 편전회의장이 텅 비게 할 만큼, 리더십이 약한 군주는 절대로 아니었다. 비록 가상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최석주의 지원사격 덕분에 통치력을 되찾을 정도의 허약한 군주는 결코 아니었다.
정조 이산의 통치를 보다 더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드라마 <이산>의 잔여분에서는 인사관리를 매개로 한 정조 임금의 리더십과 그 리더십의 한계가 보다 더 구체적으로 묘사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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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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