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임금은 장관 교체 안하시나?

[사극으로 역사읽기]

등록 2008.04.01 11:49수정 2008.04.0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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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이산>.
드라마 <이산>. MBC

지난 3월 25일 방영된 <이산> 제55회분에서는, 노비제도를 놓고 정조와 장태우가 대립하는 가운데에 최석주(가상의 인물)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정순왕대비(정순왕후)의 사주를 받은 최석주의 '배신'으로 인해 장태우 세력은 심각한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었다. 

노론 중신들이 장태우 집에 모여 수구세력의 파워를 과시하고 있을 때, '나 홀로' 달랑 편전회의에 참석한 최석주는 "전하, 관노비만 폐지하십시오!"라며 특유의 타협적 중재능력을 보여주었다. 장태우의 등장 이후 한동안 소외되는 듯했던 최석주가 또다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잠깐! 그때 최석주의 직함은 무엇이었을까? 정조 즉위 이후에 그는 무슨 직함으로 편전회의에 참석하는 걸까? '예전에는 최석주가 이조판서(이판)였는데…'라는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한 번 이판은 영원한 이판?

그럼, 즉위 이후에는 어떤 직함으로 나오고 있을까? 답은 '즉위 이후에도 최석주는 여전히 이판'이라는 것이다. 정조가 이미 한참 전에 즉위했는데도 불구하고 선왕시대의 이판 최석주가 여전히 이판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 번 이판은 영원한 이판일까? 

최석주의 직함이 여전히 이판으로 나오고 있는 데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드라마 <이산>에서는 여태까지도 제대로 된 장관교체를 보여주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었으면 응당 자기편 사람들을 정부 요직에 앉혀야 할 텐데도, 드라마 <이산>에서는 그 같은 인사교체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정조의 즉위 후에도 여전히 이조판서 직을 고수하고 있는 최석주. 드라마 <이산>.
정조의 즉위 후에도 여전히 이조판서 직을 고수하고 있는 최석주. 드라마 <이산>. MBC

이런 상황 속에서 정조의 여당세력은, 도승지 겸 숙위대장 홍국영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하위직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서얼 출신의 하위직 규장각 검서관들만이 집단적으로 정조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3정승 6판서 중에는 정조를 지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은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 


그리고 영조 임금이 손자에게 "그는 진실로 나의 사심 없는 신하이며 너의 충신"이라고 '강추'한 번암 채제공. 드라마 속에서 그는 언제나 정조 옆에 멀뚱히 서 있다가 이따금씩 홍국영을 근심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는 사람 정도로 묘사되고 있다. 정조 즉위 이후에 그가 무슨 직책을 받고 무슨 일을 했는지가 드라마에서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드라마 속 정조 임금은 이미 오래 전에 즉위해놓고도 아직까지 인사개편을 제대로 안하고 있다. 반대파들을 물리치고 어렵사리 즉위했는데도 그는 여전히 그 반대파들만 데리고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아주 관대하든가 아니면 능력이 아예 없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제55회 방영분에서 볼 수 있었던 바와 같이, 그나마 최석주라도 나와서 자리를 지켜주지 않으면 정조 임금은 편전회의조차 열 수 없는 입장이다. 채제공·홍국영·남내관을 제외하면 정부 내에서 정조를 따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인상을 느낄 수 있다. 드라마 속의 정조 임금은 그야말로 '리더십 F학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 역사 속에선 수시로 이뤄진 장관교체

이 세상에 반대파들에게 핵심 요직을 모두 맡기고도 24년씩이나 보위를 유지하는 군주가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정조 이산의 고뇌를 강조하기 위해 그의 처지를 보다 더 비극적으로 처리했다고 해도, 이처럼 일반 상식에서 한참 벗어나는 설정으로 정조 시대를 제대로 묘사할 수 있을까?

 정조 즉위 후에도 여전히 직책이 뚜렷하지 않은 채제공. 드라마 <이산>.
정조 즉위 후에도 여전히 직책이 뚜렷하지 않은 채제공. 드라마 <이산>. MBC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정조는 즉위 직후부터 상당히 자주 인사교체를 단행했다. 채제공 한 사람의 경우만 보아도 그렇다. 영조 52년(1776) 즉 정조 즉위년 3월 10월에 즉위한 정조 임금은 다음 날인 3월 11일에 채제공을 호조판서에서 예조판서로 옮겼다. 그리고 보름만인 3월 26일에는 그를 다시 형조판서로 옮겼다.

이런 인사교체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정조가 채제공의 직함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의도한 것은, 채제공이 사도세자의 신원문제를 보다 더 능률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실제 역사 속에서는 장관교체가 수시로 이루어졌고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정조의 여당세력이 계속해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이산>에서는 채제공과 홍국영을 제외하고는 정부 내에 여당세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정조 임금의 과감한 돌파력에 의해 정권이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드라마 <이산>에서는 정조시대의 정치와 관련하여 바로 이 점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잦은 인사교체를 통해 정조가 자신의 리더십을 강화해나가는 과정이 전혀 소개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너무 시시콜콜한 지적이 아닌가? 어떻게 정조시대의 인사개편까지 드라마에 일일이 반영할 수 있겠는가? '더 쉽고 더 간단하고 더 재미있게' 드라마를 구성하자면 시시콜콜한 인사개편 정도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주장을 펼 수도 있다.

물론 사소한 인사개편 정도는 생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 <이산>처럼 주요 인사개편마저 모두 다 생략하고 넘어갈 경우에는 정조 이산의 진면모를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는 결정적 문제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조 임금의 진정한 면모는 바로 인사관리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람이 바뀌면, 조선도 바뀔 것이란 게 정조의 생각

드라마 <이산>에서는 정조가 인사(人事)보다는 제도에 더 주력한 군주라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정조가 인사보다는 제도를 더 중시했을 것이라는 판단을 갖고 있기에, <이산>의 작가는 장관교체를 드라마에 거의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산>의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제도개혁을 둘러싸고 정조가 반대파와 어떻게 대립했는가 하는 점이다.

 정조 이산은 제도보다는 인사를 더 중시했다. 드라마 <이산>.
정조 이산은 제도보다는 인사를 더 중시했다. 드라마 <이산>. MBC

하지만, 실제의 정조 이산은 제도보다는 인사를 더 중시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는 무너져가는 조선왕조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유교적 이상사회를 구현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그 유교적 이상사회는 기존의 제도 속에서 얼마든지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새로운 세상을 희구하긴 했지만, 그 새로운 세상이란 것은 이상적인 유교 제도를 제대로 가동함으로써 산출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정조 임금은 진보적 개혁가가 아니라 보수적 개혁가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새로운 원료(제도)로 새로운 제품(세상)을 개발하기보다는 기존의 원료를 바탕으로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하고자 했다. 그러자면 보다 더 숙련된 고급 기술자(사람)들을 많이 충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이처럼 '더 나은 원료'보다는 '더 나은 기술자'를 중시한 관리자였다.

그는 '조선의 병(病)은 좋은 제도의 결여 때문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의 결여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람이 바뀌면 조선도 바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좋은 사람들을 조정의 요직에 배치해야만 조선왕조가 유교적 이상사회를 향해 전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제도보단 인사를 더 중시했던 정조

집권 노론세력 중에는 좋은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사색당파를 골고루 기용하고자 한 것이고, 양반사회 외부에도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판단 하에 서얼들에게까지 눈길을 돌린 것이다. 그는 그처럼 좋은 사람들을 많이 얻고자 했다. 

이처럼 정조는 인사관리에 주력한 군주였다. 이는 그가 탕평정치를 중시한 것과 맥락이 닿는 부분이다. 탕평정치라는 것은 제도개혁보다는 인사개혁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 물론 정조 임금이 제도개혁을 전혀 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분명히 제도보다는 인사를 더 중시하는 임금이었다.

동시에 이것은 정조 임금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랬다고, 새로운 세상을 열자면 사람들만 바꿀 게 아니라 제도까지도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정조는 제도개혁보다는 인사개혁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한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정조 임금의 진면모를 그려내고자 한다면, 그가 다양한 당파의 사람들을 어떻게 정부 요직에 배치했고 각 당파 간에 발생하는 갈등을 어떻게 조절했는지를 잘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제도보다는 인사를 더 중시하는 정조 임금의 한계를 함께 보여준다면, 보다 더 균형 있는 드라마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사관리는 하나도 보여주지 않은 채, 정조 임금이 즉위 후에도 여전히 최석주를 이조판서로 기용하고 또 반대파들만으로 정부를 구성했다고 묘사하고 있으니, 드라마 <이산>은 정조 이산의 실제 모습과 너무 많이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정조 임금의 매력은 '리더십'에 있다

정조 임금의 매력은 무엇일까? 온 세상이 자신을 미워하는 속에서 반대파들에 맞서 싸우는 그런 것이 아니다. 서로 이질적이고 다양한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고 그들을 한 방향으로 이끄는 리더십에서 정조 임금의 매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산에게 정조 선황제라는 존호를 부여할 때에, 조선정부는 '안팎의 복종을 받은 임금'이기 때문에 그에게 정(正)자를 부여한다고 했다. 이는 그의 리더십을 칭송하는 말이다. 그만큼 정조 임금은 이질적이고 다양한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이끄는 면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정조 임금의 탕평정치가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탕평정치는 분명한 한계를 노정했다. 하지만, 제한적으로나마 탕평정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만큼 상당한 리더십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정조는 결코 자기 편 사람들을 장관에 임명하지도 못하고 또 편전회의장이 텅 비게 할 만큼, 리더십이 약한 군주는 절대로 아니었다. 비록 가상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최석주의 지원사격 덕분에 통치력을 되찾을 정도의 허약한 군주는 결코 아니었다.

정조 이산의 통치를 보다 더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드라마 <이산>의 잔여분에서는 인사관리를 매개로 한 정조 임금의 리더십과 그 리더십의 한계가 보다 더 구체적으로 묘사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이산 #탕평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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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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