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자주 떠드는 아이들이 천사라니?

상상력이 풍부한 교사는 매를 들지 않는다

등록 2008.04.13 12:28수정 2008.04.1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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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꽃과 상상력 꽃은 가지에서만 피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나무 둥치에도 꽃이 피더군요. 저꽃은 아마도 햇빛이나 바람이 키운 것이 아니라 나무의 상상력이 피워올린 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요.

꽃과 상상력 꽃은 가지에서만 피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나무 둥치에도 꽃이 피더군요. 저꽃은 아마도 햇빛이나 바람이 키운 것이 아니라 나무의 상상력이 피워올린 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요. ⓒ 안준철



수업을 재미있게 해볼 요량으로 그날 배울 새로운 영어 단어를 칠판에 적어놓고 아이들과 스무고개 놀이를 할 때가 있습니다. 가령 이런 식이지요.
       
"선생님이 아주 좋아하는 말입니다."
"돈요."

"선생님 돈 좋아하는 건 맞는데, 아주는 아니야. 그리고 돈은 머니잖아."
"맞다. 그럼…."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매를 대지 않는 것도 이 단어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랑이요."

"녀석아, 사랑은 러브잖아."
"아, 그렇지."

"선생님처럼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달나라를 정복하기 전에 시인들은 이것으로 달나라를 먼저 다녀왔지요."
"알았어요. 상상력이요. 맞죠?"

"그래. 1점 플러스."


a 벽에 핀 꽃 벽에도 꽃이 피었네요. 대단한 상상력이네요.

벽에 핀 꽃 벽에도 꽃이 피었네요. 대단한 상상력이네요. ⓒ 안준철



아이는 수행평가에서 1점을 얻은 것이 무척 좋은 모양인지 금세 입이 귀에 걸립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는 듯 눈의 초점이 모아지더니 이렇게 묻습니다.  


"근데 선생님이 저희들에게 매를 대지 않는 것과 상상력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응. 그거?"

그렇지 않아도 그 말을 해주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다 싶어 전체 아이들을 향해 이렇게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여러분들 말 안 들을 때 매를 대면 말을 잘 듣잖아요. 그러다가 또 말을 안 들으면 또 매를 대고. 그런 식으로 매가 만병통치약이 되면 선생님은 머리를 써야할 일이 별로 없게 되잖아요. 교사로서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다고나 할까 기회가 없어진다고나 할까?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상상력이 다 고갈될 테고요. 하지만 선생님은 매를 대지 않겠다고 여러분과 약속을 했으니까 매가 아닌 다른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요. 고민을 많이 하다보면 선생님의 상상력도 그만큼 풍부해질 테고요."

a 땅에서 핀 꽃 진달래꽃이 땅에 떨어져 다시 환생했네요. 상상력이 풍부한 화가의 그림 같네요.

땅에서 핀 꽃 진달래꽃이 땅에 떨어져 다시 환생했네요. 상상력이 풍부한 화가의 그림 같네요. ⓒ 안준철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한참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잡담소리가 들렸습니다. 고백하자면, 제 수업시간은 좀 시끌벅적한 편입니다. 하지만 수업시간의 절반 이상이 수행평가와 관련된 재미있는 퀴즈놀이거나, 모둠끼리 상의하여 주어진 문제를 푸는 그런 방식이어서 조금 떠들어도 수업 진행에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영어기초가 부족한 전문계 학생들에게 영어를 재미있게 가르치기 위한, 제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든 비방인 셈이지요. 물론 이런 수업방식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수년 동안의 고민과 상상력의 산물이랄까요.

제가 학생들에게 정숙을 요구하는 시간은 딱 15분입니다. 아이들도 저와 약속한 그 시간만큼은 정신을 집중하고 수업에 임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물론 학교에는 이런 최소한의 규칙조차도 아랑곳하지 않는 녀석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말입니다.

저는 잡담의 주인공들을 교실 앞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두 아이가 엉거주춤 일어나 나오려고 하자 다시 자리에 앉게 했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계속하다가 문득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a 얼레지 산에 가서 얼레지처럼 빼어나게 예쁜 꽃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지요. 저렇게 예쁜 꽃이 어디에서 왔을까? 왜 피었을까? 이런 생각을 끝도 없이 하다가는 문득, "아, 나더러 이런 상상력에 빠져보라고 피어 있는 것이구나!"하고 웃고 말지요.

얼레지 산에 가서 얼레지처럼 빼어나게 예쁜 꽃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지요. 저렇게 예쁜 꽃이 어디에서 왔을까? 왜 피었을까? 이런 생각을 끝도 없이 하다가는 문득, "아, 나더러 이런 상상력에 빠져보라고 피어 있는 것이구나!"하고 웃고 말지요. ⓒ 안준철



"방금 전에 선생님이 한 행동도 일종의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그걸 생각해내는데 한 사오년 걸렸을까요? 누구를 막론하고 인간에게는 인격이라는 것이 있어요. 혼날 줄 알았다가 그냥 자리에 앉게 되면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기 마련이지요. 봐요. 지금 두 친구 열심히 공부하잖아요. 만약 그렇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게요."

저는 두 아이를 쉽게 용납했지만 두 아이도 저에게 꼼짝없이 당한 꼴이 되고 말았지요. 문제는 두 아이가 그런 일이 있은 뒤 채 오 분이 지나지 않아 잡담을 하다가 걸려 또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것인데, 그것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두 아이는 또 일어나자마자 자리에 앉게 되었으니까요.

두 번씩이나 용서를 받았으니 세 번을 연거푸 떠들기는 좀 뭐할 테고, 그러다보면 수업도 다 끝이 날 텐데, 정작 제 걱정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용서를 해주었는데도 떠들면 사람도 아니라고 말한 바로 그 때문이었지요. 사람이 되고 안 되고는 제 할 탓이지만 그래도 어딘지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전매특허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렇게 말을 해주었지요. 

"너희들 그래도 떠들면 정말 사람도 아니다, 천사지."

그런 말을 듣는 그 순간, 두 아이가 어떤 눈빛을 하고 있을 것인지 상상해보는 것도 매우 흥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저는 알고 있지요. 두 아이의 눈빛을 직접 목격했으니까요. 제가 농담 삼아 발음한 ‘천사’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바로 그런 눈빛이었지요. 수업시간에 막무가내로 떠들기만 하는 한심한 녀석들이 말이지요.

교육은 아이들에 대한 믿음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봅니다.

a 꽃마리  아주 흔한 꽃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꽃이지요. 학교에도 그런 아이들이 참 많지요. 상상력이 고갈된 교사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 숨은 보석과도 같은 아이들 말입니다.

꽃마리 아주 흔한 꽃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꽃이지요. 학교에도 그런 아이들이 참 많지요. 상상력이 고갈된 교사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 숨은 보석과도 같은 아이들 말입니다. ⓒ 안준철


#교육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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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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