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에 있는 미미즈까
박도
이 사진과 기사를 보니 일본 교토 국립박물관 옆에 있는 '미미즈까(耳塚)'가 연상되었다.
지금부터 410여 년 전인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침략한 왜군들은 전과를 보고하기 위해 처음에는 조선인의 목을 베어 본국으로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목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이를 감당할 수 없어서 대신 조선군 시신의 귀나 코만 잘라 소금에 절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쳤다고 한다.
이렇게 헌상된 것들이 지금의 귀무덤, 즉 미미즈까에 묻혀 있다고 하여, 몇 해 전 나는 그곳을 답사하면서 묵념을 드린 바 있다.
나는 이와 비슷한 장면을 미국 버지니아 남쪽 노폭(Norfolk)이라는 항구도시에서도 본 적이 있다.
그 도시에는 맥아더 기념관이 있는데, 거기에는 미군 무관들이 한국전쟁 직전까지 처형한 한국인 게릴라 시신에서 목 자른 장면들을 사진에 담아 이를 맥아더사령부에 보고한 것을 앨범으로 만들어 소장하고 있었다.
나라가 약해 이민족에게 침략을 당하면, 백성들의 삶은 비참해지기 그지 없다. 남정네들은 이민족의 침략을 막아내느라 목숨을 바치면서 거룩하게 산화하지만, 아낙네들은 성노리개로, 전리품으로 사로잡혀 가서 이국에서 귀신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전리품으로 사로 잡혀가서 돌아온 여인들을 '환향녀(還鄕女)'라 하여 평생 멍에를 지고 사는 이도 없지 않았다.
피로써 맺은 혈맹의 전우나는 이번 호남의병 전적지를 순례하면서 '남한폭도대토벌 기념사진첩'에 수록된 의병장들의 후손들이 남다른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분들 선조들은 의진에서, 감옥에서 피로써 맺은 혈맹의 전우들이 아닌가. 서로가 상대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문경지교(목이 베어도 아깝지 않은 사귐)이었으리라.
이 사진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는 오성술 의병장으로, 그 손자 오용진씨는 당신 취재를 마치면서 나에게 할아버지 뒷자리에 앉아있는 김원국, 양진여 의병장 후손을 연결해 주었다.
나는 추천을 받은 뒤 기록을 살펴보니까 의병장으로 흠결이 보이지 않았고, 또 순천대 홍영기 교수도 추천한 분이라서, 먼저 양진여 의병장 후손 양일룡씨를 만난 바 있다.
김원국 의병장 후손 김복현씨는 청주에 거주하고 있기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침 지난 3월 18일 광주로 가는 길에 먼저 청주로 들렀다. 이른 아침, 내가 사는 안흥에서 횡성으로 가서 청주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버스기사에게 도착 예정시간을 물어 김복현씨에게 전화로 알리자, 도착시간에 맞춰 청주터미널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생면부지로 얼굴도 몰랐지만 손전화 덕분으로 쉬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터미널에서 가까운 밥집으로 가서 갈치조림 백반을 들면서 말문을 열었다.
"한 마디로 거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