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민족을 위해 살려면 자식 낳지마라"

[누가 이 나라를 지켰는가 41] 광주 - 김원국 김원범 형제 의병장 (1)

등록 2008.04.13 18:43수정 2008.04.2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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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의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에 체포된 호남의 의병장들로 대구감옥에 갇혀 있던 당시의 모습(앞줄 왼쪽부터 송병운, 오성술, 이강산, 모천년, 강우경, 이영준, 뒷줄 왼쪽부터 황장일, 김원국, 양진여, 심남일, 조규문, 안규홍, 김병철, 강사문, 박사화, 나성화 의병장).
일제의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에 체포된 호남의 의병장들로 대구감옥에 갇혀 있던 당시의 모습(앞줄 왼쪽부터 송병운, 오성술, 이강산, 모천년, 강우경, 이영준, 뒷줄 왼쪽부터 황장일, 김원국, 양진여, 심남일, 조규문, 안규홍, 김병철, 강사문, 박사화, 나성화 의병장). 눈빛출판사

위 사진의 주인공은 일제가 1910년 8월, 한일병탄을 앞두고 끝까지 항전하다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호남의병장들이다. 이 사진은 일본에서 한국독립운동사를 연구하고 있는 김의환 교수가 오사카의 한 고서점에서 입수한 것으로, 1910년 4월 5일에 발행한 '남한폭도대토벌 기념사진첩'에 수록된 사진 중의 하나다.

이 사진첩에는 한일병탄 1년 전인 1909년, 호남에서 끝까지 항거하다가 사로잡힌 심남일 등 의병장 16명이 함께 찍힌 이 사진을 비롯하여, 9장의 의병 인물사진과 함께 화승총·권총·삼지창·곤봉·죽창 등 의병들이 사용한 무기와 의병들을 추격하는 일군의 모습, 체포 후 끝까지 저항하다가 교수형에 처해지는 의병들의 의연한 모습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사진첩의 제목과 사진설명, 발행연도로 볼 때, 이 사진들은 1909년 9월 1일부터 두 달간 호남지방에서 벌인 '남한대토벌작전' 당시에 찍은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이 작전에 대해서는 조선주둔 일본군사령부가 펴낸 '조선폭도토벌지'에 자세한 기록이 나와 있는데, 이 사진첩은 작전에 참여한 일군이 그들의 공로(전과)를 자랑하기 위해 극소수 비매품으로 만든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 (이상 1986년 3월 1일자 <동아일보> 7면 기사 요약)

역사는 반복된다

 맥아더 기념관에 있는 미군정 당시의 게릴라 처형 사진첩
맥아더 기념관에 있는 미군정 당시의 게릴라 처형 사진첩박도


 일본 교토에 있는 미미즈까
일본 교토에 있는 미미즈까박도

이 사진과 기사를 보니 일본 교토 국립박물관 옆에 있는 '미미즈까(耳塚)'가 연상되었다.

지금부터 410여 년 전인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침략한 왜군들은 전과를 보고하기 위해 처음에는 조선인의 목을 베어 본국으로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목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이를 감당할 수 없어서 대신 조선군 시신의 귀나 코만 잘라 소금에 절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쳤다고 한다.


이렇게 헌상된 것들이 지금의 귀무덤, 즉 미미즈까에 묻혀 있다고 하여, 몇 해 전 나는 그곳을 답사하면서 묵념을 드린 바 있다.

나는 이와 비슷한 장면을 미국 버지니아 남쪽 노폭(Norfolk)이라는 항구도시에서도 본 적이 있다.


그 도시에는 맥아더 기념관이 있는데, 거기에는 미군 무관들이 한국전쟁 직전까지 처형한 한국인 게릴라 시신에서 목 자른 장면들을 사진에 담아 이를 맥아더사령부에 보고한 것을 앨범으로 만들어 소장하고 있었다. 

나라가 약해 이민족에게 침략을 당하면, 백성들의 삶은 비참해지기 그지 없다. 남정네들은 이민족의 침략을 막아내느라 목숨을 바치면서 거룩하게 산화하지만, 아낙네들은 성노리개로, 전리품으로 사로잡혀 가서 이국에서 귀신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전리품으로 사로 잡혀가서 돌아온 여인들을 '환향녀(還鄕女)'라 하여 평생 멍에를 지고 사는 이도 없지 않았다.

피로써 맺은 혈맹의 전우

나는 이번 호남의병 전적지를 순례하면서 '남한폭도대토벌 기념사진첩'에 수록된 의병장들의 후손들이 남다른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분들 선조들은 의진에서, 감옥에서 피로써 맺은 혈맹의 전우들이 아닌가. 서로가 상대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문경지교(목이 베어도 아깝지 않은 사귐)이었으리라.

이 사진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는 오성술 의병장으로, 그 손자 오용진씨는 당신 취재를 마치면서 나에게 할아버지 뒷자리에 앉아있는 김원국, 양진여 의병장 후손을 연결해 주었다.

나는 추천을 받은 뒤 기록을 살펴보니까 의병장으로 흠결이 보이지 않았고, 또 순천대 홍영기 교수도 추천한 분이라서, 먼저 양진여 의병장 후손 양일룡씨를 만난 바 있다.

김원국 의병장 후손 김복현씨는 청주에 거주하고 있기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침 지난 3월 18일 광주로 가는 길에 먼저 청주로 들렀다. 이른 아침, 내가 사는 안흥에서 횡성으로 가서 청주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버스기사에게 도착 예정시간을 물어 김복현씨에게 전화로 알리자, 도착시간에 맞춰 청주터미널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생면부지로 얼굴도 몰랐지만 손전화 덕분으로 쉬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터미널에서 가까운 밥집으로 가서 갈치조림 백반을 들면서 말문을 열었다.

"한 마디로 거지였습니다"

 김원국 의병장 손자 김복현씨
김원국 의병장 손자 김복현씨박도
- 가족들의 수난사를 들려주십시오.
"아시다시피 할아버님(김원국)은 1910년 대구 감옥에서 순국하셨고, 아우이신 작은 할아버님(김원범)은 1909년 2월 광주 무등산에서 일군과 교전 중 체포되어 광주수비대에서 취조를 받다가 스스로 혀를 끊어 23세 나이로 자결 순국하셨습니다. 저는 제 아버님 얼굴도 모르는데 아버님도 왜놈에게 강제 연행되어 군사비행장 노역장에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집안에 남자란 모조리 왜놈 총칼에 희생되니 저희 어머니는 큰 도둑질이라도 한양, 일체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제가 물어도 함구령을 내리면서 묵묵부답이었습니다."

- 할아버지 생가는 어딥니까?
"광산군(지금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리134입니다. 다른 문헌에는 광주시 당부면 북촌리로 나와 있는데, 이는 할아버지가 왜놈 순사에게 취조중 가명과 거짓 주소를 말한 게 계속 전해온 탓으로 여겨집니다. 그 생가 터는 일본군에게 몰수되어 비행장으로 사용돼 오다가 현재는 5·18 공원이 조성된 바, 이곳에 할아버지 형제 동상을 건립코자 광주시청에 동상부지 사용 허가신청 중입니다."

- 광주 태생이 어떻게 청주에서 자리 잡았습니까?
"그 이야기는 좀 깁니다. 제가 집안형편으로 뒤늦게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재학 중에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학도의용군으로 입대하여 상경하게 되었고, 그 이후 전투경찰에도 입문했고, 군에도 입대하였습니다. 제대 후, 서울에서 살다가 사업 때문에 청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사업하던 친구 때문에 오게 된 셈이지요. 청주로 온 지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 의병장 후손으로 살아온 얘기 좀 들려주십시오.
"저희 어머니와 제 동생, 세 식구가 거지처럼 살았지요. 한 마디로 거지였습니다.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글로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인생역정을 들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살아온 과정은 생략한다). 솔직히 의병 후손이 자랑스럽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살려면 자식을 낳지 말라' '씨앗을 뿌려놓지 말라'고 말합니다. 내 자식이 독립운동을 한다면 극구 말리겠습니다. 물론 권유도 하지 않고요."

올해 77세인 김복현씨는 살아온 70평생을 회고조차 하기 괴로운 듯 다른 얘기로 말문을 돌렸다. 얼마나 의병 후손으로 살아온 당신 삶이 고달팠으면 그러실까? 한창 점심시간으로 밥집에는 밀려들어오는 손님과 소음으로 더 이상 대담이 어려워 밖으로 나왔다. 조용한 찻집을 찾았으나 개똥도 약에 쓰려면 보이지 않는다고 눈에 띄지 않았다.
#호남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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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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