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내디딜 때마다 생각나는 제자가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불편한 진실에 대하여

등록 2008.05.04 13:29수정 2008.05.0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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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발을 내디딜 때마다 생각나는 제자가 있습니다. 그만큼 보고 싶다거나 되새길 만한 추억거리가 많아서만은 아닙니다. 졸업한 지 서너 해 만에 만난 제자가 제 걸음걸이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걷는 자세를 교정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흔히 허리디스크라고 말하는 병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도 잘못된 걸음걸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습관이 된 걸음걸이를 고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자연스러운 상태로 걸으면 오른발이 30도 가량 바깥쪽으로 벌어져 있어서 의도적으로 오른발을 왼쪽으로 심하게 뒤틀어서 내딛어야 겨우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너무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워서 별 소득도 없어 보이는 걸음 교정을 그만 둘까 싶기도 하지만, 이미 제 마음은 그런 불편함을 받아들인 듯합니다.


걸음걸이는 교정하는데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릴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남은 생애에 비하면 그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그런 현실적인 계산이랄까, 건강상의 이유만으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불편함을 견디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왠지 모르게 그렇게 하고 싶었고, 그래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이런 제 심리상태를 허리를 앓았던 그 무렵에 쓴  한 편의 시가 대신 설명해줄 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에 병을 얻으니
생이 느리고 조용해진다
한 존재가
내게로 와서
내게서 멀어지는
그 속도와 시간이

 

한 계절을 누워서 보낸 사람만이
앉아서 책을 보는 행복을 안다
다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려다
문득, 하늘을 나는 철새를 본다
삶의 어느 한쪽이 삐끗하여
몸 뒤척이거나 눈 돌리면
저렇게 새가 날아가기도 한다

 

이즈음 나는
식물이 되고 싶다
광속의 시대에
뿌리를 상하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옮겨갈 수 없는
내게로 와서
내게서 멀어지는
모오든 존재 앞에
우두망찰 서 있어야 하는

 

때론, 주목받지 못하는 생이
얼마나 즐겁고 환한가.
 
-「병가」전문
 
이십년 넘게 저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시인으로서 시를 쓰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입니다. 시는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진실의 연습을 통해서 얻어지기도 합니다.

 

시를 쓰는 것이 불편한 것은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욕구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욕심이 지나치다보면 정공법으로 시를 쓰지 않고 그럴듯한 기교를 부려 눈속임을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지요. 그때마다 돌이켜 다시금 제대로 된 걸음걸이를 유지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도 그렇습니다. 아이들과의 만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들을 자기 삶의 주체를 인정해주는 일일 것입니다.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이어서 열정이 강한 교사일수록 자칫하면 학생들을 대상화하는 잘못을 범하기 쉽습니다.

 

그때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연습을 다시 해야 하지만 그런 일종의 교정 작업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교사와 학생 사이의 진정한 소통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겠지요. 오래전에 쓴 시입니다.

 

시를 쓸수록
마음 더 가난한 느낌이다

 

오해 없기를,
이 가난한
아침 공복 같은
복된 가난함 아니니

 

오늘 새벽
시월 찬 기운이
우리가 보통 ‘심금’이라고 말하는
마음 그곳까지 와서

 

내게 말한다
아이들에게 돌아가라고
첫 이슬 맺던, 늘
눈시울 아리던 그때로 돌아가라고

 

시보다도
천하보다도 귀한
아이들에게 돌아가라고
아이들이 시였던 시절로 돌아가라고

 

가당찮지 않느냐고.

 

-「서시」 전문

 

살다보면 진실이 불편해질 때도 있습니다. 사람됨의 본바탕이 그렇지 못하니 더욱 그렇겠지요. 다행인 것은 진탕 속에서 뒹굴다가도 화들짝 놀라 다시 마음을 추스르게 하는 그 무엇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양심이든, 시심이든 그걸 붙잡고 씨름하는 일을 반복하는, 남의 눈에 조금은 멍청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제도 학교가 파하자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도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지만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발을 내딛는 순간들이 진지해서 좋습니다. 일상이 살아 있는 느낌이랄까요. 제 잘못된 걸음걸이를 교정해준 제자가 눈물이 날만큼 고맙고 그립습니다. 

2008.05.04 13:29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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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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