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뚝 떨어진 동백의 슬픔을 너는 아는가!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81] 쪽동백

등록 2008.05.14 14:10수정 2008.05.1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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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동백 때죽나무과의 쪽동백 ⓒ 김민수

▲ 쪽동백 때죽나무과의 쪽동백 ⓒ 김민수
 
지난 달인가? 이파리가 소담스러운 작은 나무에 꽃줄기가 삐죽 나와 작은 꽃망울들을 줄줄이 매달고 있었다. 그리고 분주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다. 국수나무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벌써 다 피어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그 나무를 찾았다.
 
때죽나무와 거의 흡사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커다란 이파리나 수피가 갈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가 때죽나무와 비슷한(때죽나무과) 쪽동백이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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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동백 작은 등불을 킨듯 밝은 꽃 ⓒ 김민수

▲ 쪽동백 작은 등불을 킨듯 밝은 꽃 ⓒ 김민수
 
'쪽동백'이란 이름이 어떻게 붙었을까? '쪽'이란 '물건의 쪼개진 한 부분'이라는 뜻이요, 쪽대문, 쪽박, 통나무를 쪼개서 속을 파서 만든 쪽배, 쪽상 등의 단어와 연관시켜보니 '작은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은 동백', 동백은 동백이로되 작은 동백이라는 말이다.
 
노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의 다른 이름은 개동백이다. 개동백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동백기름보다 훨씬 고급기름으로 사용된다. 쪽동백 역시도 기름을 짜서 사용하는데 동백과 개동백의 중간지점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 이름에 비춰보면 동백의 성격을 많이 닮은 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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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동백 꽃은 한결같이 아래를 향하고 있다. ⓒ 김민수

▲ 쪽동백 꽃은 한결같이 아래를 향하고 있다. ⓒ 김민수
 
바람이 불면 꽃은 떨어진다. 꽃은 언젠가 떨어진다. 꽃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때가 되면 슬며시 자리를 비켜준다. 어떤 꽃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도 씨앗이 맺힐 때면 조금이라도 멀리 날아가게 하기 위해 뻣뻣하게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다. 목에 힘을 잔뜩 주고 있어도 밉지 않은 때이다.
 
바람이 후두둑 불자, 쪽동백 작은 꽃이 흰 눈처럼 후두둑 떨어진다. 동백의 낙화를 보는 듯하다. 비록 선홍색 붉은 동백처럼 처절한 아름다움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동백처럼 쪽동백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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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동백 낙화하는 모습이 동백과 흡사하다. ⓒ 김민수

▲ 쪽동백 낙화하는 모습이 동백과 흡사하다. ⓒ 김민수
 
쪽동백이라는 이름이 실감 나는 대목이다. 떨어진 꽃들이 있어 남은 꽃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법이다. 꽃 피었다고 다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남겨둔 꽃들이 끝내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러니 떨어진 꽃 없이 열매는 없는 법이다. 낙화한 꽃들의 이유다.
 
무한경쟁의 사회를 살면서 우리는 떨어진 꽃들과 같은 이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무심결에 우리 발에 밟히는 떨어진 꽃과 같은 존재, 그들이 있어 비교우위라는 행복감에 젖어서라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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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동백의 낙화 ⓒ 김민수

▲ 동백 동백의 낙화 ⓒ 김민수
 
뚝뚝 떨어진 동백의 슬픔을 아는가! 그들도 꽃을 피운 이상 열매를 남기고 싶었을 터이다. 그러나 뚝뚝 떨어져 차라리 환하게 웃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사회 저변으로 밀려나 낮은 삶을 강요당하는 이들의 슬픈 웃음 같다. 슬퍼 눈물을 흘려야 마땅할 상황에서도 그냥 웃어버리는 그 웃음의 의미는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 슬픔을 경험한 이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슬퍼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깊은 슬픔.
 
봄바람을 타고 그 슬픔에 동참하는 쪽동백의 꽃이 하나 둘 떨어진다. 말로는 할 수 없는 아픈 마음을 벗겨진 수피에 둘둘 말아 붙잡아둔다. 꽃은 떨어졌어도 아직 떨어진 꽃의 의미를 더 간직해야겠다는 듯.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5.14 14:10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쪽동백 #개동백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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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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