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며, 보릿고개의 아픈 추억을 떠올린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82] 국수나무

등록 2008.05.16 17:29수정 2008.05.1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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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수나무 장미과의 국수나무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는 요즘이다.

국수나무 장미과의 국수나무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는 요즘이다. ⓒ 김민수

▲ 국수나무 장미과의 국수나무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는 요즘이다. ⓒ 김민수

국수나무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습니다. 작고 수수하게 생긴 꽃은 5월의 신부를 닮은 듯하고, 국수나무라는 이름 때문인지 고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조팝나무, 이팝나무, 국수나무는 보랫고개와 관련이 있는 이름입니다. 그래도 국수나무는 한 겨울을 보내고 청보리가 익어갈 무렵에 피어나니 아무래도 조팝나무나 이팝나무보다는 덜 슬픈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논밭에서 일을 하다 새참으로 먹는 국수 정도의 느낌이지요.

 

a 국수나무 조그만 꽃은 마치 국수에 고명을 얹은 듯 하다.

국수나무 조그만 꽃은 마치 국수에 고명을 얹은 듯 하다. ⓒ 김민수

▲ 국수나무 조그만 꽃은 마치 국수에 고명을 얹은 듯 하다. ⓒ 김민수

 

"언제 국수 먹여 줄 거야?"

 

결혼과 관련이 있는 말입니다. 요즘 결혼식이야 전문식당을 통해서 뷔페나 갈비탕으로 손님 대접을 하지만 옛날에는 잔치가 열리면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놓고 국수를 끓여내곤 했습니다.

 

제 결혼식 때에도 국수를 삶아내어 손님을 대접했는데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막 건져낸 국수에 고명을 얹어 김치와 함께 내어 놓았습니다. 국수로 손님을 대접하던 시절만 해도 요즘처럼 호화 결혼식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도 많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a 국수나무 수줍은 5월의 신부를 닮은 듯한 국수나무의 꽃

국수나무 수줍은 5월의 신부를 닮은 듯한 국수나무의 꽃 ⓒ 김민수

▲ 국수나무 수줍은 5월의 신부를 닮은 듯한 국수나무의 꽃 ⓒ 김민수
 
먹을 것이 위협당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광우병 공포로 인해 쇠고기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고, 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해 가금류의 고기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습니다. GMO(유전자 변형 조작식품) 옥수수가 농약잔류검사도 받지 않고 가공식품으로 둔갑을 하게 되었으니 매장에 먹을 것은 그득하지만 뭣 하나 마음놓고 먹을 것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때깔이 좋은 채소류는 화학비료나 농약 범벅이고 그나마 유기농채소라는 것은 일반 서민들에게는 문턱이 너무 높습니다.
 
a 국수나무 조팝나무, 이팝나무, 국수나무 모두 보릿고개의 설움이 들어있는 꽃이다.

국수나무 조팝나무, 이팝나무, 국수나무 모두 보릿고개의 설움이 들어있는 꽃이다. ⓒ 김민수

▲ 국수나무 조팝나무, 이팝나무, 국수나무 모두 보릿고개의 설움이 들어있는 꽃이다. ⓒ 김민수
 
국수나무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유년 시절 보릿고개를 떠올렸습니다. 그때는 우리 집 뿐 아니라 몇몇 집을 빼고는 대부분 배고프게 살았던 시절이라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았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자식 새끼들 세 끼를 먹이려고 바둥거리지만 보릿고개를 넘겨야 할 시기가 되면 하얀 흰 쌀밥을 고사하고 수제비라도 거르지 않고 세 끼를 건사하면 잘 먹은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지금처럼 학교 공부에 목을 매지 않을 때였으니 언 땅이 풀리기도 전에 삽과 곡괭이를 들고 산으로 나가 칡도 캐고, 논에 들어가 미꾸라지도 잡고, 우렁이도 잡았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풀 하나라도 허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어려웠어도 인간미 넘치는 삶을 살았던 것 같고, 지난 일이니 하나의 추억처럼 남았습니다.
 
a 국수나무 옹기종기 모여 피어나는 꽃이 풍성하다.

국수나무 옹기종기 모여 피어나는 꽃이 풍성하다. ⓒ 김민수

▲ 국수나무 옹기종기 모여 피어나는 꽃이 풍성하다. ⓒ 김민수
 
지금은 국수를 주식으로 먹는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쌀이 없어 국수로 주식을 삼고, 국수에 물려서 국수만 보아도 헛구역질을 할 정도로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었습니다. 어쩌다 라면이라도 하나 생기면 물을 많이 잡아 국수를 넣어 끓였고, 꼬들꼬들 파마머리를 한 것 같은 라면발을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꽃 이름에 들어 있는 사연들은 많지만 이렇게 조팝나무, 이팝나무, 국수나무처럼 정말 배고파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이름을 붙여진 꽃들을 보면 그 여느 사연들보다도 마음 깊이 새겨집니다.
 
먹을 것이 부족해도 무엇이든지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먹을 것은 지천에 쌓였지만 어느 것 하나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시절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네 몸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추억들까지도 다 도둑 맞는 것 같아 슬픕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5.16 17:29ⓒ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국수나무 #보릿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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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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