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나 항공 우리가 탈 비행기. 유대인 자본으로 유대인들이 경영하는 회사란다.
문종성
쿠바.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유기농법, 혹은 빔 벤더스의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이 네 가지 정도가 그간 쿠바를 찾는 대다수 여행자들의 핵심 키워드였는지 모르겠다. 나 역시 여기에 명실상부한 '아마야구 최강'이라는 타이틀만 하나 더 알고 가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만큼 쿠바는 국제사회에서 어느 정도 단절되어 있고, 또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마음의 그것도 멀어 보인다.
하지만 쿠바는 꽤나 매력적인 동네다. 무엇보다 무너질 것이라는 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여전히 사회주의의 이름은 변증된 자본주의와의 타협 아래 시들지 않고 있다. 그리고 탐험가 콜럼버스도 울고 갔다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가난한 나라의 오기인지 깡인지 열악한 환경에서도 세계 최강을 달리는 그들의 구기종목성적은 늘 파헤쳐 지지 않는 일급비밀감이다. 거기에 말이 필요없는 시대의 혁명가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두 인물에 의해 사회개혁의 꿈을 이뤄낸 곳도 바로 이 곳이다.
이런 나라에 함부로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이 어쩌면 누구나 그 땅을 밟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오묘한 성취감이 매력을 더해주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도 그들이 기름난 타개를 위해 가장 공을 들인 자전거라는 수단으로 그들의 땅을 누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유쾌한 발상인가!
그런데 쿠바를 향하는 내 마음엔 한 가지 불투명한 확신이 있었다. 특별하면 엄청 특별하거나 평범하다면 너무나 평범한 여행이 될 것 같다고. 그리고 어쩐지 준호와의 여정이 그 이유의 전부가 될 것 같다고. 과연 그 느낌이 맞을까?
자전거 운송료만 40달러? '돈 독' 오른 코파 항공살짝 마음이 들뜬 상태에서 맞은 아침은 의외로 한산했다. 전날까지 파나마 시티를 다 뒤져가며 준호에게 필요한 모든 장비와 부품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막상 결전의 날이 다가오니 분위기가 진정되는 것이다. 준호는 긴장했는지 밤새 잠을 한숨도 못 이뤘다. 피곤에 붉게 상기된 곰같은 얼굴이 더욱 커 보였다.
"우리 준호가 이런 어려운 일에 한 번도 도전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도 많이 하고 자네가 많이 힘들 수도 있을 걸세. 그래도 잘 부탁하네. 준호가 처음 보는 형인데도 자네를 많이 따르지 않는가."거듭되는 준호 부모님의 부탁에 오히려 내가 송구스러워졌다. 어쩌면 나 때문에 준호가 더 힘들 가능성 역시 존재했고, 준호는 아직 나의 본모습을 보지 못한 까닭이다. 집에서는 항상 웃는 낯이었지만 밖으로 나가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른다.
나는 거대한 벽 앞에 적잖이 경직된 준호의 얼굴을 보며 세 가지를 다짐했다.
'첫째, 나는 어려운 윗사람이 아닌 편한 동지 관계로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준호에게 존댓말을 쓰며 한 인격체로 대해 준다. 둘, 준호가 쿠바 자전거 횡단을 무사히 마치기 위한 모든 수고의 짐은 내가 진다. 셋, 나는 내 의견만큼이나 준호의 의견이 중요함을 인정하고 모든 선택은 그와 함께 의논하고 판단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