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요원의 진정한 적은 타락한 정치인이다?

[서평] 빈스 플린 <임기종료>

등록 2008.07.04 17:30수정 2008.07.0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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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종료> 겉표지 ⓒ 랜덤하우스

▲ <임기종료> 겉표지 ⓒ 랜덤하우스

한 고위 정치인이 자택에서 살해당했다. 이 경우 어떻게 수사를 시작할까. 일반적인 살인 사건이라면 피살자의 가족과 친지가 우선 용의자 명단에 오를 것이다. 하지만 살해당한 사람이 고위 정치인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를 죽일 만한 동기를 가진 사람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 동기도 여러가지가 될 것이다. 개인적인 원한부터 시작해서 정치적인 이해관계까지.

 

그렇기 때문에 높은 위치에 있는 정치인들은 주변에 항상 경호원을 두고 움직이려 한다. 이런 경호망를 뚫고 정치인을 살해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소리없이 목표물에 접근해서 임무를 완수하고,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경찰의 수사망을 빠져나갈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일 것이다. 그럴만한 능력과 배짱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가지 중 하나다. 전문살인청부업자, 테러리스트 아니면 특수요원.

 

살인사건 현장을 꼼꼼하게 살피면, 이 세가지 부류의 사람들 중에서 누가 이 범행의 용의자인지도 알 수 있다. <임기종료>에 등장하는 CIA 테러 전문가에 의하면, 특수요원 또는 살인청부업자는 꼭 필요한 사람만 죽이도록 훈련을 받는다.

 

반면에 테러리스트들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도 주저하지 않는다. 테러리스트들은 극단적인 폭력을 사용해서 대중들의 머릿속에 공포를 심어두려 한다. 그러니까 조금 번거로운 방법을 쓰더라도 목표가 되는 사람만을 죽이려 했다면, 그 범행은 테러리스트의 소행이 아니라고 어느 정도 단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특수요원과 전문살인청부업자다. 살인청부업자들은 대부분 전직 특수요원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다 하더라도 수사망은 광범위하게 넓어질 수밖에 없다.

 

하나 둘씩 암살당하는 부패 정치인들

 

빈스 플린(Vince Flynn)의 스릴러 소설 <임기종료>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예산안 통과를 앞두고 미국의 정계에 커다란 영향을 행사하던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이 잇달아 살해당한다. 현장을 분석한 결과, 범인들은 고도의 복잡한 훈련을 거친 특수요원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특수요원들이 무엇 때문에 정치인들을 목표로 삼았을까. 표적이 된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타락한 인물들이었다. 겉으로는 개혁과 예산삭감을 주장하지만, 돌아서서는 자신과 정당의 이익을 위해서 예산을 조작하고, 의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온갖 비열한 방법을 동원하던 사람들이었다. 사건 이후에 국민들의 상당수가 살해당한 정치인들에게 동정심을 나타내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더라도 이런 폭력을 용인할 수는 없는 법. FBI를 중심으로 수사가 시작되지만 범인들은 이런 노력을 비웃듯이 한발 앞서가고 있다. 미국의 국내 정세는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불필요한 예산이 너무 많고, 그 때문에 올해에도 1천억 달러의 예산적자가 예상된다.

 

미국의 국가채무는 5조 달러가 넘고, 매일 10억 달러 이상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대로 간다면 이번 세기가 끝날 때에는 채무가 10조 달러까지 증가할 것이다. 자손들에게 엄청난 빚더미를 떠안겨 주는 셈이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측근들은 이에 대해 뾰족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다음 재선에서 어떻게 하면 당선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측근들은 재선에 성공하면 자기도 한자리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수사도 난항을 거듭한다. 전직 그린베레, 델타포스, 네이비실의 대원들이 1차 수사 대상이 된다. 그들에 관한 자료를 FBI가 열람하려고 하면, 국가안보국에서는 안보를 이유로 자료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틈을 타서 범인들의 행동은 점점 대담해진다. 급기야는 대통령까지 공포에 질릴 정도로 강력한 수단을 들고 나선다. 범인들은 자기들의 의지대로 대통령과 부패한 정치인들에게 '임기종료'를 선언할 수 있을까?

 

정치인을 혐오하는 전직 특수요원들

 

작품에서 묘사하는 특수요원들의 심리가 흥미롭다. 특수요원들의 지능지수는 평균 이상이고, 신체는 지극히 건강하다. 겉으로는 딱딱하고 냉담하며 감정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감정적이고 인정이 많다. 승리에 집착하지만, 속임수나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주 싫어한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특징은 이들이 정치인과 관료를 증오해서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해가 된다. 자신들은 머나먼 타지에서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우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의회에 틀어박혀서 말 한마디로 대원들의 생사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정부패로 얼룩진 정치인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특수요원들이 어느날 자신들의 진정한 적이 국내의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지구 반대편에 가서 갖은 고생을 하며 죽이고 돌아온 테러리스트 지도자들보다, 미국의 정치가들이 더욱 사악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많은 국민들도 거기에 공감한다면?

 

<임기종료>의 인물들도 이런 논쟁을 한다. 상원의원은 '폭력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하고, IRA 출신의 한 노인은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막으려면 폭력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어'라고 응수한다. 폭력이 또다른 폭력을 부르는 전형적인 악순환이다.

 

그렇다면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이는 테러리스트 식의 폭력이 아니라, 썩어빠진 정치인들만을 골라서 응징하는 식의 폭력은 어떨까. 폭력이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사람들의 유일한 대응책이 될 수는 있을테니까. 그런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타락해가는 정치인들에게 일종의 경고가 될 수는 있을 테니까.

 

<임기종료>를 읽으면서 특수요원들의 행동에 심적으로 동조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임기종료> 빈스 플린 지음 / 김승욱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2008.07.04 17:30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임기종료> 빈스 플린 지음 / 김승욱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임기종료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1

빈스 플린 지음, 김승욱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추리소설 #임기종료 #특수요원 #그린베레 #델타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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