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비밀노트엔 어떤 내용이 있을까

[서평] 로버트 해리스 <아크엔젤>

등록 2008.07.15 14:04수정 2008.07.1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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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엔젤> 겉표지 ⓒ 랜덤하우스

▲ <아크엔젤> 겉표지 ⓒ 랜덤하우스

오랫동안 권력을 쥐고 있던 독재자가 어느날 갑자기 죽으면, 세상에는 그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떠돌기 마련이다.

 

독재자를 추종했던 세력은 온갖 찬사와 함께 그를 미화시키려고 할 테고,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를 비판하면서 생전의 업적을 축소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런 찬사와 비난 이외에 다른 소문들도 돌아다닐 수 있다. 예컨데 독재자의 사망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들이 의문투성이라거나, 그가 모아둔 막대한 재산이 어디에 감추어져 있다거나, 그의 숨겨진 자식이 어디에서 자라나고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한술 더떠서 그의 사망을 두고 음모론의 시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은 척하고 자취를 감추었을뿐 실제로는 어딘가에 숨어서 모종의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

 

사망의 원인이 아무리 명백하다 하더라도 한 개인의 죽음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하나둘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철권을 휘둘러왔던 독재자가 죽고나면, 뒤에서 갖가지 소문들이 퍼지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할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죽음에 대한 온갖 의문들이 아직도 인터넷을 배회하고 있는 것처럼.

 

히틀러와 비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스탈린의 죽음도 그렇지 않을까. 공식적인 기록에 의하면 스탈린은 1953년 3월 뇌일혈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있다. 스탈린의 사망이후에 그의 측근들의 운명은 곤두박질쳤고, 모스크바에서는 권력투쟁 끝에 흐루시초프가 공산당 서기장으로 임명된다. 후대의 평가야 어찌되었건 한시대 동안 소비에트연방을 이끌었던 풍운아 스탈린도 자신의 죽음을 극복하지는 못한 것이다.

 

사후 45년 후에 드러나는 스탈린의 비밀

 

역사미스터리 소설로 유명한 작가 로버트 해리스(Robert Harris)의 <아크엔젤>은 스탈린이 남겨놓은 비밀노트를 소재로 한다. 때는 스탈린 사후 45년이 경과한 시점이다. 모스크바에서 '소비에트 기록보관소의 개방에 관한 심포지엄'이 열리고, 이곳으로 세계의 날고긴다는 소비에트 역사 전문가들이 모여든다.

 

옥스퍼드에서 10년 동안 소비에트 역사를 강의한 중년의 남성 켈소도 그중 한명이다. 켈소가 스탈린과 기록보관소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고 나서, 한 러시아 노인이 켈소의 호텔로 찾아온다. 그곳에서 그 노인은 켈소에게 '스탈린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흥미를 느낀 켈소는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며 노인과 대화한다.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내용은 놀랄만한 것이다. 그 노인은 45년 전, 스탈린의 죽음을 친히 목격한 증인이다. 당시에 자신의 상관과 함께 스탈린의 침실로 들어섰고, 그곳에서 의식을 잃은 스탈린의 몸을 뒤져서 열쇠 하나를 찾아내서 그 열쇠가 가리키는 물건을 감춘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랬던 그 노인이 무려 수십 년이 지난 이후에 한 서양인 학자 앞에 나타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다. 켈소도 혼란스럽다. 술에 취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이 노인의 이야기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고민이다.

 

노인은 전형적인 스탈린 추종자다. 스탈린을 비난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격렬한 반감을 드러낸다. 스탈린이 죽고나서 나라가 반쯤은 똥통에 쳐박혔다고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스탈린을 비난하지만, 노인은 스탈린이 정말 노동자처럼 살았다고 말한다. 스탈린의 방은 보통 사람의 방이고 그는 항상 부하들과 같았다는 것을 강조한다.

 

45년이 지났지만 모스크바에도 여전히 스탈린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소비에트 기록보관소의 개방에 반대하는 거리 시위를 벌인다. 개중에는 스탈린의 커다란 초상화를 들고 행진하는 사람도 있고, 망치와 낫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걷는 사람도 있다. 스탈린은 나무 쟁기밖에 없는 나라를 물려받아서, 핵폭탄으로 무장한 제국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패배한 것은 스탈린이 아니라 그 후손들이라는 것이다.

 

역사와 허구를 뒤섞은 히스토리 팩션(Fact+Fiction)

 

노인의 이야기를 반신반의 하면서도 켈소는 점점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노인과 그의 상관이 정말 스탈린의 물건 중 일부를 빼돌렸다면,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감추어야할 비밀이 담겨있거나, 아니면 특정한 때가 되기 전에는 공개를 미루어야할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다. 노인은 왜 하필이면 스탈린 사후 45년이 지난 이후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을까? 죽고나서 수십 년이 흐름 지금, 스탈린의 유물이 후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아크엔젤(Archangel)'은 러시아 북부 백해(White Sea)에 접한 항구도시 이름이다. 현재는 아르항겔스크(Arkhangelsk)라고 불리는 지명이다.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1300km 가량 떨어진, 그야말로 세계의 북쪽 끝이라고 할만한 장소다. 켈소는 스탈린의 비밀을 찾기 위해 모스크바를 떠나 아크엔젤로 향한다. 러시아 북부의 광활한 타이가, 툰드라를 헤치고 처녀림을 뚫으며 나아간다.

 

켈소의 눈앞에는 얼어붙을 듯한 잿빛의 파도, 황량하기 그지없는 늪지, 흰눈을 뒤집어쓴 밀림이 펼쳐진다. 끝없이 뻗어있는 숲속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 늑대인간이나 설인일 것이다. 1930년대에 스탈린은 200만명의 부농들을 아크엔젤 지역으로 이주시켰다고 한다. 프랑스 영토보다도 넓은 숲과 툰드라 지역으로, 전쟁후에 그 광대한 지역은 핵무기 실험에 쓰이기도 했다.

 

작품 속에는 병에 걸린 채 죽어가는 스탈린의 모습을 포함해서 다수의 실존인물들이 등장한다. 스탈린은 살아생전에 '죽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 - 인간이 없으면 문제도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스탈린도 죽음과 함께 자신을 둘러싼 모든 문제가 해결되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와 허구를 뒤섞어서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로버트 해리스의 상상력은 스탈린의 죽음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 <아크엔젤>은 어두웠던 스탈린 시대에 대한 극단적인 상상력이다.

덧붙이는 글 | <아크엔젤> 로버트 해리스 지음 / 조영학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2008.07.15 14:04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아크엔젤> 로버트 해리스 지음 / 조영학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아크엔젤 - 스탈린의 비밀노트,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2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추리소설 #아크엔젤 #로버트 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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