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용의주도 1
.. 우리들의 관심은 그 장래의 순간으로 집약된다. 아버지인 임금이 용의주도하게 재앙을 일으킬 만한 위험물을 죄다 없애 버렸는데도 어떻게 재앙은 일어나는 것일까? 그런데, 아주 자연스레 일어난다 .. 《릴리언 스미스/석용원 옮김-아동문학론》(교학사,1966) 50쪽
“우리들의 관심(關心)”은 “우리들 눈길”이나 “우리 눈길”로 다듬습니다. “그 장래(將來)의 순간(瞬間)으로 집약(集約)된다”는 “그 앞날 어느 때로 모인다”나 “앞으로 다가올 그 어느 날로 쏠린다”로 손질하고, ‘재앙(災殃)’은 ‘나쁜 일’이나 ‘궂은 일’로 손질합니다. ‘위험물(危險物)’은 ‘걸림돌’로 손보고, “일어나는 것일까”는 “일어날까”로 손봅니다.
┌ 용의주도(用意周到) : 꼼꼼히 마음을 써서 일에 빈틈이 없음
│ - 용의주도한 계획 / 용의주도한 작전 / 일을 용의주도하게 처리하다 /
│ 사전 계획이 물샐틈없이 용의주도했으니
├ 주도면밀(周到綿密) : 주의가 두루 미쳐 자세하고 빈틈이 없음
│ - 모든 방면에 주도면밀한 계획을 수립하다 / 그는 매사에 주도면밀하다
│
├ 꼼꼼하다 : 일을 할 때 아주 조그만 것도 잘 살피거나 따지며 조심스럽다
│ <물건에 흠이 없는지 꼼꼼히 살핀 뒤 사렴 /
│ 성격이 꼼꼼해서 장부 정리를 잘합니다>
├ 빈틈없다
│ (1) 비어 있는 곳이 없다
│ <물이 새면 안 되니 빈틈없이 잘 막아 둬 / 빈틈없이 채워 넣다>
│ (2) 허술하거나 모자란 곳이 없이 잘 살피며 조심스럽다
│ <어떤 일을 해도 빈틈없는 우리 어머니 / 계획은 빈틈없이 세우자>
│
├ 용의주도하게
│→ 빈틈없게
│→ 꼼꼼하게
│→ 찬찬히 살펴서
│→ 구석구석 살피어
└ …
‘용의주도’라는 말을 듣고 ‘주도면밀’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두 가지 ‘네 글자 한자말’은 거의 같은 뜻에다가, 거의 같은 자리에 쓰이곤 합니다. 그리고 국어사전에 실린 뜻풀이를 살펴보면, 두 낱말은 한결같이 “빈틈이 없음”을 뜻합니다.
┌ 용의주도한 계획 → 빈틈없는 계획
├ 용의주도한 작전 → 물샐 틈 없는 작전
└ 일을 용의주도하게 처리하다 → 일을 꼼꼼하게 하다
말뜻이 “빈틈이 없음”이라면, 우리 말로 ‘빈틈없다’고 하면 됩니다. 빈틈이 없는 모습을 가리키는 ‘꼼꼼하다’나 ‘촘촘하다’도 있고, ‘물샐 틈이 없다’ 같은 말도 있습니다.
┌ 사전 계획이 물샐틈없이 용의주도했으니 (x)
└ 밑 계획이 물샐틈없이 훌륭했으니 (o)
그런데 국어사전에 실린 보기글을 보니, ‘물샐틈없이’ ‘용의주도했으니’라고 나오면서 겹치기입니다. 같은 말을 잇달아 적습니다. 우리들이 “사전 계획이 물샐틈없이 빈틈없었으니”처럼 말하지 않음을 생각한다면 이와 같이 쓸 수 없을 텐데. 어느 한편으로 보면, “사전 계획이 물샐틈없이 꼼꼼했으니”처럼 말할 때에는 느낌을 힘주어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이라면서, “물샐틈없이 용의주도했으니”는 겹치기로 쓴 셈이 아니라 둘러댈 수 있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보자면 그러하다고 말해 봅니다. 그렇지만, 알맞춤하게 쓰지 않으면서 말을 자꾸 늘어뜨리니 걱정입니다. 군더더기를 끊임없이 붙이고 있으니 근심입니다. 자기 말씨 가꾸기가 아니라 겉치레와 겉꾸밈에만 마음을 기울이니 끌탕입니다.
ㄴ. 용의주도 2
.. 이렇게 용의주도하게 준비를 하고 기다려도 봄이 지나면 꿀벌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 《이나가키 히데히로/최성현 옮김-풀들의 전략》(도솔오두막,2006) 16쪽
‘더 이상(以上)’은 ‘더는’으로 다듬습니다. ‘준비(準備)를 하고’는 그대로 두어도 괜찮으나, ‘챙기고’나 ‘미리 마련하고’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 용의주도하게
│
│→ 빈틈없이
│→ 꼼꼼하게
│→ 물샐 틈 없게
│→ 빠짐없게
│→ 구석구석
│→ 차근차근
└ …
사람에 따라 매무새가 다르고 하고 싶은 일이 다릅니다. 사람마다 쓰는 말이 다르고 느끼며 내뱉는 말이 다릅니다. 사랑하는 이한테 편지를 쓸 때 말과, 반갑잖은 사람한테 부탁하는 편지를 쓸 때 말은 같을 수 없습니다. 같은 낱말을 적더라도 마음이 다릅니다.
┌ 이렇게 일찌감치 알뜰히 마련해 놓고 기다려도
└ 이렇게 알뜰히 챙겨 놓고 기다려도
빈틈없이 무엇을 마련하는 모습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군가는 말 그대로 ‘빈틈없이’ 마련할 테고, ‘꼼꼼하게’ 챙기는 사람이 있고, ‘물샐 틈 없이’ 살피는 사람이 있으며, ‘구석구석’ 보고 또 보는 사람이 있어요. ‘차근차근’ 장만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하나’ 돌아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 매무새가 다르듯 사람마다 쓰는 말이 다르고, 사람 마음이 다르듯 속마음을 나타내는 말이 달라요.
오랜 세월 우리 삶과 문화를 억누르고 글 계급으로 옥죄던 한자말은 저마다 다르던 삶과 문화 또한 억누르고 옥죄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모습과 다른 느낌으로 쓰던 말을 두루뭉술하게 한두 가지 한자말로 묶어 버렸고, 자기 마음을 널리 펼칠 홀가분한 말 또한 고사성어니 사자성어니 하는 말로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묶이고 갇힌 채 끙끙 앓는 우리 말과 글을 제대로 느끼거나 살필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예전에도 적고, 오늘날에도 드뭅니다. ‘우리 말의 달인’을 찾는다고 하지만, ‘우리 말을 훌륭하게 할 줄 안다’는 ‘달인(達人)’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매무새로, 어떤 말씀씀이로 ‘달인’ 소리를 듣는가요. 지금 우리들은 ‘우리 말을 어떻게 쓸 줄 아는 모습’을 놓고 ‘달인’이라고 하는가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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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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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39) 용의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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