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금을 낸 친일파
나민혜가 말도 없이 방에서 나가자 박우진은 여인이 주고 간 편지를 손에 쥔 채 창가에 서 있었다. 편지에는 상해임시정부에서 정식으로 군자금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공식 문서의 형식을 갖췄지만, 서류 아래에 친구 김의한의 이름이 서명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면 안 된다고 쓰여 있었고, 발설할 바에야 차라리 군자금 출연을 거절하라고 되어 있었다.
다음날 정화는 영도다리가 보이는 다방의 구석 자리에서 박우진을 만나 자금을 전달받았다.
"어제 아주머니께서 잠시 계셨던 방에 의한이가 일주일 정도 머무른 적이 있답니다. 소식이 궁금했었는데 역시 의한이는…. 친구로서 저는 부끄럽다는 말 외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박우진은 예상보다 많은 금액으로 우정을 표시했다. 정화는 고생해서 부산까지 찾아간 보람을 느꼈다. 상해에서 임무를 받을 때 박우진은 돈을 낼 가능성이 가장 적은 사람으로 분류되었는데, 뜻밖에도 그는 적지 않은 자금을 쾌척한 것이다. 게다가 박우진은 총독부 부임을 앞두고 있는 친일파였다. 다만 상해에 가려면 부산에서 관부연락선을 타야 하므로 부산에 간 김에 실패할 셈치고 들러본 것이었다.
돈을 낼 가능성이 크다고 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간부 두 사람에게는 허탕을 친 뒤끝이라 정화의 기쁨과 고마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정화는 지체 없이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러고는 나가사키를 거쳐 배편으로 상해에 귀환했다. 그녀의 국내 잠행은 또 한 차례 성공을 거둔 것이었다.
왠지 들떠 보였던 여자
경성에 온 나민혜는 선전 입선작을 비롯해서 그 동안 일본에서 그린 그림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박우진은 서양 정장을 하고 전시회 내내 그녀의 옆에 있어 주었다. 신문에서도 그녀의 전시회에 관한 기사와 작품 평을 비중 있게 다뤘다.
여류 서양화가 나민혜의 영상은 굵직하고 뚜렷하다. 그네의 명석한 사고력과 솔직한 표현력이 반영된 것이다. 그네의 색깔은 깊이 있게 가라앉은 중간색이다. 그네는 마티스나 피카소를 닮지 않으려 한다. 그네는 세잔을 닮으려 한다.
김문수가 나민혜의 전시회 소식을 담은 신문기사를 가리키며 삼촌에게 말했다.
"바로 이 여자입니다."
"… 이 여자가 누군데?"
"선물가게 주인 말입니다."
김영세는 심각한 표정으로 신문 기사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 환쟁이 아니 서양화가 여자가 너를 좋아한다는 말이냐?"
"네. 조금요."
"조금? 말이 조금 이상하다."
"하하. 삼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그 여자는 결혼을 했습니다. 그것도 총독부 관리와…."
"총독부 관리와? 어쩐지 여자가 좀 들떠 보인다 했더니…."
김영세는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은 학교 근무하시기가 어떠세요?"
조카의 물음에 삼촌은 약간 체념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으니까."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데요?"
"정말 하고 싶은 일? 흐음…그것은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과 같다."
순간 삼촌과 조카는 독립운동이라는 말을 동시에 떠올리고 있었다. 잡지사에서 학교로 직장을 옮긴 김영세는 강의에 열성을 쏟고 있었다. 그는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강의했다. 언제나 그의 뇌리에는 정화가 간직되어 있기도 했다. 그녀 생각이 날 때마다 그는 더욱 민족 주체적인 내용을 담아 학생들에게 말했다.
역사 교사 김영세의 강의
"민족이란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문화적으로 통합된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문화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민족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 사랑한다는 말은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린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역사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부끄러운 일도 그것을 이겨내면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민족의 이력서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조상의 이력서는 우리의 이력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문화와 조상을 사랑하는 정신을 혼 또는 얼이라고 합니다. 혼이 없는 사람이 곧 얼빠진 놈이고 얼빠진 사람이 곧 혼 없는 놈입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는 기억상실증, 곧 정신병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민족 사랑을 말할 때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민족지상주의의 위험입니다. 잘못된 세계주의가 얼빠진 놈을 만든다면 민족지상주의는 죄악까지도 민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덮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주의건 민족지상주의건 마땅히 보편적인 도덕성과 결부되어야 합니다.
중국인들은 우리나라를 군자국 혹은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지칭하고, 우리나라 사신들을 동양 여러 나라 사신 중에서 가장 상석에 배치하여 극진한 우대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조상들의 나라가 국제 사회에서 일류 국가로 인식되었음을 알려주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우리나라 통신사가 일본에 한 번 가면 일본은 국력을 기울일 정도로 후대했습니다. 우리가 일본보다 우등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실로 우리 민족은 최근 50년 간을 제외하고는 일류 국가로 지내온 것입니다.
특히 우리의 가장 가까운 조상들이 세운 조선왕조는 모범국가였습니다. 전통문화의 한국적 특색이 가장 세련되게 발현된 것이 바로 이 시대이고, 중국의 선진 문화를 가장 열성적으로 수용한 것이 이 시대입니다. 조선왕조는 서양의 천주교와 과학 기술에도 우호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의 전통 문화를 파괴하면서 침략성을 드러냈기 때문에 박해를 한 것입니다. 외래 선진 문화를 가급적이면 많이 섭취하자는 것이 우리 조상들의 기본 자세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국주의 일본의 무력에 의해 국치를 당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침략자를 응징해야지 조상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도쿠카와 시대의 어느 일본 유학자는 공자가 만약 군대를 이끌고 일본으로 쳐들어온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제자의 질문을 받고, '내가 공자의 목을 베겠다'고 답변했다 합니다. 이 물음은 정의에 의해서 존재를 강요하는 논리적 오류입니다. 공자가 군대를 이끌고 외국을 침략하는 짓 따위를 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는 것이 논리적으로도 맞습니다.
결국 이 일화는, 일본의 유학자는 진정한 유학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유학의 본질을 안다면 공자가 남의 나라를 침략할 리가 없다고 답할 것입니다. 아울러 이 일화는 일본의 유학이 무사의 수준에서 이해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유학은 이웃 나라와의 평화 공존을 추구하는 학문입니다.
일본에서는 18세기에 국학이 발달했는데, 이것이 18세기 말에 이르러 '해방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서양의 아시아 진출에 대비하여 아시아를 선제공격하되 먼저 조선을 정복하자는 주장입니다. 이 해방론은 19세기 중엽에 들어 '정한론'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것은 일본을 상국으로 대접하지 않는 조선의 오만함을 꺾고 어차피 서양의 식민지가 될 조선을 먼저 점령하자는 것입니다.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라고 추앙되며 유명한 자유 민권론자로 알려진 후쿠자와 유키치는 가공할 정도로 교활한 인물로서 일찍부터 김옥균이나 윤치호 같은 친일파를 데려다 양성했습니다. 그는 양두구육의 전형적인 인물, 즉 양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파는 인물이라는 겁니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점령한 지금 일선동조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일본과 조선은 조상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음모에는 무엇이 바탕에 깔려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고대사를 반대로 왜곡했습니다. 고대부터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벌이는 모든 음모는 잃어버린 옛 땅을 찾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한다는 정책의 연장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비뚤어진 역사의식이 오늘의 불행을 낳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화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죄악입니다. 만약 그런 일을 하거나 돕는 조선인이 있다면 그들은 고등계 형사보다도 훨씬 나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김영세가 주먹을 불끈 쥐며 강의를 마무리하자 학생들로부터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떤 학생은 책상을 치며 "옳소!"라고 외쳤고, 다른 학생은 일어나서 아예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고자 쓰는 3부작 소설입니다. 제국주의에 도전하는 인간들의 매혹적인 삶과 사랑이 펼쳐집니다. 작가 김갑수는 최근 조선 성종 때의 표해록을 바탕으로 한 소설 <오백년 동안의 표류>(어문학사)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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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인간] 공자가 일본을 침략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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