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 냄새를 향기라고 해라
"문수야, 최근 이광수가 발표한 이 글을 읽어 보아라."
김영세가 조카에게 보여준 책은 잡지 <동광>이었다. 글의 여백과 행간에는 김영세가 쓴 글씨가 군데군데 메모되어 있었다. 문수는 삼촌이 방바닥에 놓은 잡지를 집어 들고 읽어 보았다.
아세아 대륙의 하늘에는 바야흐로 전운이 꿈틀거린다. 진군나팔이 있고 돌격의 호령이 있고 포연포향이 일어난다. 이것이 민족의 힘의 발현이다.(힘의 재인식, 1931)
문수가 삼촌에게 말했다.
"이광수는 대포의 화약 냄새를 향기라고 표현하는군요."
"그렇다. 그는 전쟁 예찬론자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그는 일본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일본 국민들은 일본이라는 국가와 황실에 대하여 거의 본능적이라 할 만한 신앙심과 애국심을 가진다. 그들은 아무리 취하여도 애국심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금시 죽을 때에도 신불과 천황에 대하여 경배하기를 잊지 아니하니, 이 속에 일본의 생명과 힘의 원천이 있지 아니할까?(동경구경기, 1935)
이광수는 미· 영이 일본과 반목하는 조짐을 보이자 미· 영에게 비판의 날을 돌리기도 했다. 그는 영미식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집단주의를 제시했다. 그는 스스로 그토록 부정했던 조선 촌락의 도덕은 집단주의였고 또 '우리주의'였다고 말한다. 아무튼 그의 결론은 '옛 조선의 집단주의의 미풍이 영미 개인주의에 의해 유린되고 말았다'는 것이다(옛 조선인의 근본 구조, 1932).
그 이후 이광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셀 수 없을 정도의 글을 실었다. 그의 글이 식민지 조선 백성에게 준 영향은 어떠했을까? 그는 전쟁물자 조달을 위해 경제 문제가 중시되자 경제에 관한 함량 미달의 글을 함부로 쓰기 시작한다.
그러던 이광수는 마침내 그가 훗날 그가 찬양해마지 않았던 가미가제처럼 자폭하는 발언을 하기에 이른다.
조선인은 제가 조선인인 것을 잊어야 한다. 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 버려야 한다. 이 속에 진정으로 조선인의 영생의 유일로가 있다. 조선인은 그 민족감정과 전통의 발전적 해소를 단행하자.(매일신보, 1940)
"문수야, 너는 무엇을 느끼냐?"
"이광수에 대한 살의를 느낍니다."
"너는 아버지처럼 독립군 체질인 모양이다. 나는 이런 것을 보면 어떻게 해서라도 더 좋은 글로 반박하고 싶어진다."
"삼촌은 문사이십니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
"아, 예."
김영세는 화제를 엉뚱한 데로 돌렸다.
"이광수의 문장이 의외로 조잡하더구나. 어휘 선택도 그렇고, 관형격 조사 '의'를 남발하는 것은 성의 없이 문장을 쓴다는 증거다."
김영세는 극좌와 극우가 왜 서로를 증오하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그들은 이념이 달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김영세에 의하면 그들은 결국 같은 통속이었다. 노리는 바가 같으니까 이익이 상충되는 것이고 또 그러니까 서로 죽이려 든다는 것이다. 요컨대 좌익이든 우익이든 극단으로 치달으면 모두 파시즘이 된다는 것이었다.
"문수야!"
김영세는 국화주 기운 탓인지 눈동자가 붉어져 있었다.
"너는 떠나라. 나는 남으련다.'
"삼촌은 문사이시니까요."
"그게 아니다. 나는 정화 아줌마의 편지를 더 받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그녀가 국내에 다시 오게 되면 그녀를 돕고 싶다."
김영세의 눈시울이 젖어들고 있었다.
필요해지면 남자가 그리워지는 여자
나민혜는 사람을 좋아하는 박우진의 기질을 이해하지 못했다. 말끔한 신사인 줄 알았는데 남편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친구와 후배들에게 지나치게 잘 대했고 그들의 어려운 사정에는 외면하는 법이 없었다. 나민혜는 부산 집에 한 여인이 다녀간 후 남편의 예금 잔고가 바닥이 난 것을 알고는 어이가 없어 하다가 나중에는 분노가 치밀었다.
다음으로 남편에게는 예술과 문화가 전혀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남편은 자기의 그림을 이해하려조차 하지 않았다. 나민혜의 불만은 가중되고 있었다. 신문사에서는 여류 서양화가라는 희소성 때문인지 그녀에게 종종 원고 청탁을 해 왔다. 그녀는 글을 쓰다가 번번이 절망하고는 했다. 글이라는 것이 의외로 쓰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김문수를 생각했다. 이럴 때 김문수가 있었더라면, 그래서 그의 조언을 받는다면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이렇게 자기 필요에 의해서 남자를 생각해 보는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총독부 외사국에 근무하던 박우진은 전출 명령을 받게 된다. 단동현 부영사로 발령이 난 것이다. 나민혜는 선전(鮮展)에 또 작품을 내놓고 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출품 결과를 받지 못한 채 단동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만 진행된다고 푸념했다.
한편 조순호는 병원 설립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고급 주택지인 북촌 아래쯤에 자리를 물색했지만 그녀는 내키지 않았다. 처음 그녀는 빈민들이 많이 사는 청계천 주변에 병원을 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에게 말했더니 의외로 부모 두 사람이 다 극구 반대했다. 평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하던 부모들이기에 반대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조순호는 겉으로 보아 예절 바르고 온건한 여성 같지만 타인의 명분 없는 주장에는 굽혀 본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부모의 뜻에 반하여 청계천 병원 개업을 꼭 관철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그랬는데 부관연락선에서 나민혜의 언니를 만난 후 그녀의 생각은 바뀌게 되었다.
그녀는 아리랑고개가 가까운 돈암동 전차 종점 부근에 병원을 내겠다고 부모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부모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아마도 청계천에 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기는 눈치였다.
그녀는 개업이 되고 병원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면 본격적으로 김문수의 집을 찾아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옛날 김문수의 말로는 '아리랑고개 돌산 중턱의 가장 으리으리한 집의 바로 옆에 월세로 산다'고 했다. 김문수를 생각하는 그녀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스치고 있었다.
정화가 보낸 편지
마침내 김영세는 정화에게서 온 편지를 받았다.
선생님의 만년필로 쓰는 세 번째 편지입니다. 사실은 그 동안 국내에 또 한 차례 다녀왔습니다. 급한 일정이었고 활동 지역이 서울과 멀어 선생님을 뵙고 오지는 못했지만 국내에 있는 동안에는 선생님 생각을 더 많이 했습니다.
임시정부의 외교적 고립이 악화되어 가고 있는 중에 발발한 만주사변은 한국의 독립 진영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변 전 만주는 명목상 중국의 영토였으므로 독립군의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웠습니다. 물론 일본의 압력으로 중국은 독립군을 소탕하기 위한 일본 군대의 진입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중국인들은 한국 독립군에 대하여 동정적이고 우호적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한국 독립군에게 일본군의 동향을 알려주기까지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혜택을 받고 있었던 독립군은 또 그로 인해서 방심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일본군이 만주를 점령하게 되자 한국 독립군은 하루 아침에 근거지를 잃었습니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체포되었으며 지도부의 대부분은 1년 남짓의 저항 끝에 만리장성 부근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홍진, 유동열, 이청천 장군 등 독립군 지휘관들이 만주를 버려야 했습니다. 홍범도, 김좌진 같은 맹장들은 이미 유명을 달리 했음을 선생님도 아실 겁니다.
지도부가 탈출했다는 것은 투쟁의 종결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국제적 제재를 받고 있지 않는 일본의 만주 침략은 우리 민족의 독립 전망을 더 어둡게 하는 것이라고 이곳 어른들은 걱정하십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중국군 잔류병과 지도부를 떠나보낸 한인 독립군들이 뭉쳐 한중연합 유격대를 결성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특히 양세봉 장군 등을 중심으로 한 신세대 유격대는 신출귀몰하는 게릴라 부대로 유명합니다. 양세봉 장군은 청산리 전투를 연상하게 하는 인상적인 전과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독립운동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계속)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제국주의에 도전하는 인물들의 매혹적인 삶과 사랑이 펼쳐집니다.
작가 김갑수는 최근 전작 장편 <오백년 동안의 표류>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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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인간] 양세봉, 독립운동의 새로운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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