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인간] 의열단과 애국단의 차이

김갑수 식민지 역사팩션 (108회) 제2부 '중경에서 오는 편지'

등록 2008.08.30 15:59수정 2008.08.3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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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과 애국단

이제 임시정부도 외교적 노력은 잠정 보류하고 새로운 투쟁 방법을 강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략상 임시정부는 나서지 않고 백범 혼자서 책임지는 형식을 취하며 테러 활동을 벌이기로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테러는 주로 <의열단>에서 주도했었습니다. 그런데 의열단의 대부분 인원이 좌경화되면서 그들은 만주의 유격대로 옮겨 갔습니다. 그들은 주로 중국 공산당과 연대하여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백범은 <애국단>을 만들어 일본 천황을 과녁으로 삼았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적 총수를 처단하자는 것입니다.

국내에 보도가 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봉창 열사의 소식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그는 도쿄에 가서 일본 천황이 탄 마차에 수류탄 두 개를 던졌습니다. 그러나 수류탄의 성능이 좋지 않아 천황은 죽음을 모면했습니다. 중국 신문들은 이 사건을 크게 보도했습니다.

“한인 이봉창, 일본 천황 저격, 불행히 맞지 않다.”

이렇게 제목을 뽑아 실었습니다. 이봉창 열사의 거사 보도가 나간 후 상해의 일본인들이 중국 신문사에 몰려가 사옥을 부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한인에 대한 감정은 아주 좋아졌습니다.

테러 행위는 자기희생의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테러는 그 순수하고 열정적인 동기에 비하여 적에게 입힐 수 있는 타격은 제한되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테러는 우리의 저항 의지를 내외에 알리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봉창 열사는 이 목적을 충분히 수행하였습니다. 게다가 한중 양국을 결속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상해는 아연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침략군의 마수는 상해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는 금명간 단동에 다녀 올 것 같습니다. 비밀 요원들의 여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조국과 가까운 곳이니 그곳에 가면 선생님 생각이 더 날 것입니다.

건강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참 조카 분께서 알아봐 달라고 했던 김영호는 아직 파악이 안 되고 있습니다. 공산당 소속 유격대 독립군으로 계시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이름뿐 아니라 성까지 바꿔서 활동하므로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알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정화 올림.

김문수의 집을 찾아간 조순호

조순호가 김문수의 집을 찾아간 것은 김영세가 정화의 편지를 읽고 난 후 깊은 상념에 잠겨 있을 때였다. 김영세는 처음 보는 여자가 조카를 찾아온 것이 의아했다. 그는 조순호에게 김문수를 찾는 연유를 물었다.

"어떤 일로 우리 문수를 찾으시는지요?"
"저는 조순호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조순호가 병원 이름을 '순호의원'으로 정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김문수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김문수가 오가며 자기의 이름이 있는 병원 간판을 알아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는 1층에는 진료실과 응급실을, 2층에는 입원실을 만들었다. 건물이 작아 입원실이라야 병상이 고작 다섯 개였다. 병실은 셋이었는데, 두 방은 2인실로 했고 나머지 방 하나는 독실로 만들었다.

병원 개업 두 달쯤 되었을 때, 조순호는 아리랑 고개를 넘어 정릉에 산책을 가 보았다. 그녀는 고갯길을 오르며 김문수가 말했던 돌산 중턱을 눈으로 확인해 보았다. 그녀는 나민혜가 김문수와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마음이 급했었는데, 막상 그를 찾아가려고 하니 왠지 계면쩍고 두려워지기도 했다.

오래 전 김문수가 자기에게 와 한 마디 한 것을 가지고 그를 찾아간다는 것이 주제넘은 일 같기도 했다. 나민혜와 결혼은 안 했다고 해도 김문수는 나민혜와 아주 가까운 관계였다는 것도 그녀를 망설이게 만드는 이유였다.

"저는 조순호씨를 깊이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그것은 김문수가 장난처럼 던져 본 말일 수도 있었다. 정식으로 구애했거나 청혼한 말이 아니었다. 그의 말이 진심이었다고 해도 벌써 세월이 오래 흘렀다. 그녀는 어느 날 김문수가 병원을 알아내고 방문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젊은 남자가 병원 문으로 들어올 때마다 김문수를 떠올리고는 했다.

그녀의 병원 주변에는 우동집이 있었다. 그녀는 밀가루 음식을 좋아해서 우동집에 자주 들르는 편이었다. 그녀는 우동에 넣는 튀김을 빼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번번이 생각만 있을 뿐 말을 하지 못했다. 우동집 주인과 낯이 익게 되었는데도 그녀는 그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그녀는 튀김이 들어가 있는 우동을 먹다가 빙긋 웃었다.

'김문수에게 우동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되겠다. 그리고 튀김을 빼 달라는 말을 해 달라고 좀 부탁하면 되겠구나.'

그녀는 토요일 오전 근무를 끝내고 아리랑고개를 걸어 올라갔다. 돌산 중턱에 있는 김문수의 집은 예상보다 쉽게 찾아졌다. 김문수는 없었다. 대신 김문수와 얼굴과 말씨가 비슷한 남자가 있었다.

"김문수씨와는 옛날에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김문수와 비슷하게 생긴 아저씨는 좀처럼 경계의 빛을 풀지 않았다.

"저는 문수의 삼촌되는 사람입니다만."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조순호라고 합니다."
"이름은 조금 전 말했습니다. 혹시 선물가게, 아니 화가 분이 아니신가요?"

조순호는 난처했다. 아마도 나민혜를 묻는 것 같았다.

"다 함께 알고 지내던 친구들입니다."
"문수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김영세는 자기 조카가 국내 문화유산 답사를 떠났는데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조금 무뚝뚝하게 말했다. 조순호는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어깨와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아리랑고개를 걸어 내려왔다.

나민혜, 최린에게 끌리다

단동에 간 나민혜는 출장 간 남편을 대신하여 파티에 참석했다. 영사는 귀한 손님을 소개했는데 그는 놀랍게도 최린이었다. 최린은 나민혜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천도교 간부이며 민족대표 33인 선언을 주도한 최린은 영사로부터 대단히 융숭한 접대를 받고 있었다.

"우리 단동현 부영사 부인이십니다."

최린은 씽긋 웃으며 나민혜에게 악수를 청했다. 최린의 손길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조선 최고의 여류 화가 분을 여기서 뵙게 되다니 나는 참 행운아입니다."

최린은 그 동안 미국에 2년 정도 가 있었다고 말했다. 나민혜의 눈에 최린은 예술가 기질이 있는 재사였다. 여전히 그는 홀쭉한 몸매와 갸름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어 문학청년다운 풍모를 느끼게 했다. 그는 어떤 화제에도 막힘이 없이 좌중을 이끌었다. 나민혜는 최린이 서도와 묵화에도 상당한 소양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나민혜는 취미라고는 쥐뿔도 없는 남편 대신 최린과 나누는 대화가 즐거웠다. 그는 나민혜가 그린 그림을 기억하고 있었다. 최린도 재기발랄한 나민혜와의 대화를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다. 그는 나민혜의 의상을 칭찬하기도 했다. 그는 구미에 다녀온 적이 있지만 또 한 차례 유럽 여행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에 다녀온 지가 얼마 안 되었다는데 또 유럽 여행을 떠난다는 최린은 나민혜에게 범상한 인물로 비치지 않았다.

나민혜는 아쉬워하는 최린과 영사 부부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정보다 조금 늦었습니다. 오늘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입니다."

영사 부부는 고개를 끄덕였고 최린은 문까지 그녀를 배웅하면서 그녀에게 명함을 건넸다. 영사관을 뒤로 하고 나오는 그녀는 최린의 명함을 핸드백에 간직했다.

나민혜는 집의 대문이 열려 있는 것을 좀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자기를 위해 문을 닫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관에 들어선 그녀는 남편을 부를까 하다가 사랑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문득 발을 멈추고 귀를 쫑그렸다. 여자 목소리가 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소리 없이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섰다. 조용히 사랑 문 쪽으로 간 그녀는 방문이 열려져 있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고개를 조심스럽게 기울여 방 안의 동정을 살폈다.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부산에 찾아왔던 그 여자였다. 나민혜는 여자가 다녀간 후 남편의 예금이 바닥났다는 것을 떠올렸다.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제국주의에 도전한 인간들의 매혹적인 삶과 사랑이 펼쳐집니다.
필자 김갑수는 최근 <표해록>을 바탕으로 한 장편소설 <오백 년 동안의 표류>를 출간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제국주의에 도전한 인간들의 매혹적인 삶과 사랑이 펼쳐집니다.
필자 김갑수는 최근 <표해록>을 바탕으로 한 장편소설 <오백 년 동안의 표류>를 출간했습니다.
#의열단 #애국단 #이봉창 #최린 #제국과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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