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자 씨네 옥상 정원김영자 씨는 빌라 옥상에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다. 채소와 꽃부터 감나무, 포도나무, 귤나무까지, 옥상이라는 게 의심될 정도다.
주재일
서울은 아파트와 빌딩숲으로 둘러싸여 회색 도시로 바뀌고 있지만, 북한산 아래 인수동 냉골과 범골만큼은 여전히 푸른 마을을 유지하고 있다. 재개발이니 뉴타운이니 하는 일들로 땅값이 들썩거리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우리 마을도 최근 일부 지역이 재개발될 것이라는 발표가 난 뒤 집값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큰 공장이나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몇 년 안에 들어설 것 같지도 않다. 그렇지만 우리 마을이 푸른 이유를 이런 외적인 탓으로 돌리기엔 뭔가 부족하다. 작은 공간이라도 나면 상추와 고추를 심고, 꽃을 가꾸는 우리 마을 사람들의 정성 때문에 가능했다. 마을이 늘 푸른 진짜 이유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마을버스 2번을 타고 혹은 151번이나 101번을 타고 청수탕 앞에서 내리면 공기부터 다르다. 삼각산에서 냉골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은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이겨내라고 자연이 마을에 준 선물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화답하듯 곳곳에 화단을 만들고 텃밭을 가꾸고 있다. 심지어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쫙 깔린 공간에도 꽃과 채소, 나무는 자란다. 사람들이 화분, 스티로폼 상자 등을 이용해 작물을 심기 때문이다.
심지어 빌라 옥상에도 아름다운 정원이 들어섰다. 516번지 모아빌라 옥상에는 상추, 깻잎, 쑥갓, 배추 같은 채소에 백합과 글라디오라스가 오밀조밀 자라고 있다. 여기에 귤나무, 단감나무, 포도나무까지 가세했다. 10평 남짓한 옥상에 과실나무들까지 키우는 게 가능할까 싶다. 흙도 깊지 않고, 세찬 바람이도 맞으면 금세 넘어갈 것 같은데 용케도 열매를 맺고 있었다. 매일 아침 옥상 정원에 물을 뿌리며 가꾸는 김영자씨 덕분이다.
김씨는 옥상 정원에 심은 나무와 화초 절반은 겨울이 오기 전 베란다로 옮기는 수고도 하고 있다. "혼자 하면 일주일 넘게 걸리지만 쉬엄쉬엄 하면 재미있다. 20년 가까이 가꾼 정원이고, 나무 하나하나에 사연이 담겼다" 김씨가 감나무는 17년, 포도나무는 15년, 향나무는 10년 하는 식으로 나무 나이를 자식 나이 세듯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