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도시 쿠바 아바나가 부럽지 않다

채소부터 과일까지 심고 가꾸고 나누는 북한산 아래 인수동 사람들

등록 2008.09.11 11:02수정 2009.03.0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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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자 씨네 옥상 정원 김영자 씨는 빌라 옥상에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다. 채소와 꽃부터 감나무, 포도나무, 귤나무까지, 옥상이라는 게 의심될 정도다.
김영자 씨네 옥상 정원김영자 씨는 빌라 옥상에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다. 채소와 꽃부터 감나무, 포도나무, 귤나무까지, 옥상이라는 게 의심될 정도다. 주재일

서울은 아파트와 빌딩숲으로 둘러싸여 회색 도시로 바뀌고 있지만, 북한산 아래 인수동 냉골과 범골만큼은 여전히 푸른 마을을 유지하고 있다. 재개발이니 뉴타운이니 하는 일들로 땅값이 들썩거리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우리 마을도 최근 일부 지역이 재개발될 것이라는 발표가 난 뒤 집값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큰 공장이나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몇 년 안에 들어설 것 같지도 않다. 그렇지만 우리 마을이 푸른 이유를 이런 외적인 탓으로 돌리기엔 뭔가 부족하다. 작은 공간이라도 나면 상추와 고추를 심고, 꽃을 가꾸는 우리 마을 사람들의 정성 때문에 가능했다. 마을이 늘 푸른 진짜 이유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마을버스 2번을 타고 혹은 151번이나 101번을 타고 청수탕 앞에서 내리면 공기부터 다르다. 삼각산에서 냉골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은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이겨내라고 자연이 마을에 준 선물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화답하듯 곳곳에 화단을 만들고 텃밭을 가꾸고 있다. 심지어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쫙 깔린 공간에도 꽃과 채소, 나무는 자란다. 사람들이 화분, 스티로폼 상자 등을 이용해 작물을 심기 때문이다.

심지어 빌라 옥상에도 아름다운 정원이 들어섰다. 516번지 모아빌라 옥상에는 상추, 깻잎, 쑥갓, 배추 같은 채소에 백합과 글라디오라스가 오밀조밀 자라고 있다. 여기에 귤나무, 단감나무, 포도나무까지 가세했다. 10평 남짓한 옥상에 과실나무들까지 키우는 게 가능할까 싶다. 흙도 깊지 않고, 세찬 바람이도 맞으면 금세 넘어갈 것 같은데 용케도 열매를 맺고 있었다. 매일 아침 옥상 정원에 물을 뿌리며 가꾸는 김영자씨 덕분이다.

김씨는 옥상 정원에 심은 나무와 화초 절반은 겨울이 오기 전 베란다로 옮기는 수고도 하고 있다. "혼자 하면 일주일 넘게 걸리지만 쉬엄쉬엄 하면 재미있다. 20년 가까이 가꾼 정원이고, 나무 하나하나에 사연이 담겼다" 김씨가 감나무는 17년, 포도나무는 15년, 향나무는 10년 하는 식으로 나무 나이를 자식 나이 세듯 소개했다.

김형우 씨네 빌라 사람들 텃밭 최근 인수동의 작은 빌라로 이사한 김형우 씨는 이웃들과 작은 텃밭을 개간했다. 버려진 땅이었는데 빌라 주민들이 의기투합해 가꾸기로 했다.
김형우 씨네 빌라 사람들 텃밭최근 인수동의 작은 빌라로 이사한 김형우 씨는 이웃들과 작은 텃밭을 개간했다. 버려진 땅이었는데 빌라 주민들이 의기투합해 가꾸기로 했다.주재일

그리고 화초에 얽힌 사연들도 풀어놓았다. 어느 나무는 시아버지가 사주었고, 어느 나무는 이사하는 집에서 버린 것을 주워왔다고 했다. 김씨는 "흙이 얇아서 크게 자라지 않는다"며 성공하지 못한 자식에게 보이는 부모의 미안한 마음을 나무들에게도 쏟아냈다.


김씨가 우리 마을 토박이로 푸른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라면, 최순영씨 부부는 마당이 딸린 집에서 화초를 가꾸며 살려고 이사 왔다. 아파트에서 살았던 결혼 17년차 최씨 부부는 지난 2004년 516번지 허름한 집을 리모델링해서 살고 있다.

최씨 집 마당에는 각종 채소들이 자라고 담장 주변으로는 장미를 심었다. 집 뒤쪽으로는 살구나무도 자라고 있다. 최씨는 "게을러서 잘 가꾸지는 못한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이따금 채소를 솎아서 이웃과 나눠먹고 친구들을 불러 마당에서 불고기 파티를 심심치 않게 벌인다. 물론 이때 올라오는 채소는 마당에서 기르던 놈들이다.


쿠바라는 먼 나라에 아바나시가 있는데, 도시 곳곳에 텃밭을 가꿔서 먹을 것도 얻고 환경도 좋아졌다고 한다. 대안적인 시도라며 책도 나오고 학자며 시민운동가들이 방문도 했다. 그런데 꼭 그렇게 멀리까지 비싼 비행기값 들여 갈 필요가 있을까.

버스와 지하철 타고 수유동에만 와도 땅 한 줌만 있어도 채소를 심으려는 숱한 이웃들을 만날 수 있는데. 우리 동네 이웃들은 비록 아바나를 모르더라도 도시에서 채소를 기르는 건 그들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서울 강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운동단체 생명평화연대 홈페이지(www.www.welife.org)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글은 서울 강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운동단체 생명평화연대 홈페이지(www.www.welife.org)에도 실렸습니다.
#텃밭 #인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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