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건너편의 목소리
.. 나는 건강하시냐고 안부를 물었다. 전화 건너편의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다 .. 《고히야마 하쿠/양억관 옮김-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한얼미디어,2006) 75쪽
“건강(健康)하시냐고 안부(安否)를 물었다”는 익히 쓰는 인사말이니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잘 지내시느냐고 여쭈었다”나 “아픈 데는 없으신가 여쭈었다”처럼 인사말을 해도 잘 어울립니다.
┌ 전화 건너편의 목소리는
│
│→ 전화 건너편 목소리는
│→ 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 전화 건너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 …
말은 하기 나름이고 글은 쓰기 나름입니다. 토씨 ‘-의’도 우리 말에 있는 말씨이기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값이나 뜻이 달라집니다. 알맞는 자리에 넣느냐 알맞지 못한 자리에 억지로 넣느냐에 따라서 여러모로 달라집니다.
┌ 건너편 자리 / 건너편의 자리
├ 건너편 집 / 건너편의 집
├ 건너편 학생 / 건너편의 학생
└ 건너편 우체국 / 건너편의 우체국
우리가 예부터 오늘날까지 써 온 말씨를 헤아려 봅니다. 우리가 오늘날부터 앞으로 쓸 말씨를 곱씹어 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쓰는 말씨를 생각하고, 어릴 적 쓰던 말씨를 생각하며,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말을 생각합니다.
┌ 건너편에 있는 자리, 건너편에 빈 자리
├ 건너편에 있는 집, 건너편에 붙은 집
├ 건너편에 앉은 학생, 건너편에서 책을 읽는 학생
└ 건너편에 있는 우체국, 건너편에 우뚝 솟은 우체국
앞으로 백 해쯤 뒤에는 어떤 말씨로 사람들이 이야기를 주고받을까요. 앞으로 이백 해쯤 뒤에는 어떤 말투로 글이 적히고 책이 나올까요. 앞으로 삼백 해나 사백 해 뒤에도, 우리들이 고이 이어왔던 우리 말결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ㄴ. 개화의 절정
.. 그러나 우리 나라 중부에서는 5월 중순 경이 아마 개화의 절정일 것이다. 물론 6월에도 끝무리로 피고는 있다 .. 《이영노문집》(한국식물연구소,1986) 27쪽
‘-경(頃)’은 ‘께-무렵-쯤’으로 고쳐 줍니다. ‘개화(開花)’는 ‘꽃피다’로, ‘절정(絶頂)’은 ‘고비’로 다듬으면 되는데, 이 자리에서는 ‘고비’보다 ‘흐드러짐’쯤으로 풀면 한결 어울립니다.
┌ 개화의 절정일 것이다
│
│→ 꽃피는 고비이리라
│→ 꽃으로 가득하게 되리라
│→ 꽃이 활짝활짝 피리라
│→ 꽃이 가장 흐드러지는 때이리라
└ …
일본 말투인 “(무엇)의 (무엇)” 꼴입니다만, 일본 말투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런 말투로 한자말 끼워넣기를 꼭 해야 할까 생각해 보곤 합니다. 좀더 쉬운 말로, 한껏 깨끗한 말로, 누구한테나 아름답고 살가이 다가갈 토박이말을 넣어 주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곤 합니다.
얄궂은 말투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 말씀씀이는 차츰 넉넉해집니다. 저마다 다 다른 말 문화를 꽃피울 수 있습니다. 보기글에서는 “꽃피는 고빗사위”로 풀어낼 수 있는 한편, “온 산과 들에 꽃이 가득하리라”처럼 풀어낼 수 있고, “온통 꽃나라가 되리라”처럼 풀어도 됩니다. “온누리는 꽃누리가 된다”처럼 적어도 좋아요.
그나저나, 글쓴이 이영노 님 말투가 이러하다면, 이분한테 배우는 학생들도 스승 말투를 고스란히 배우거나 따라하게 되지는 않을까요. 보기글 하나 다듬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학교나 강단에서 이루어질 일들을 떠올리니 마음 한켠이 싸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09.12 09:35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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