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인간] "백범, 백범" 임정 주석 이동녕의 최후

김갑수 식민지역사팩션(121회) 제2부 '중경에서 오는 편지'

등록 2008.09.24 12:03수정 2008.09.2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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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에 물이 비치고 항구골에 배가 닿을 때라야 망국의 원한이 풀어지리라. 신라 57대 왕이 될 뻔했던 마의태자가 월악산을 떠나며 남긴 말이었다. 김영세는 월악산을 향하여 문경세재를 넘었다. 능선이 높고 암벽이 가파르다는 월악산이었다. 그는 산을 실컷 본 다음 막걸리나 배부르게 마시고 나루에 가 배를 타 볼 요량이었다.

그가 충주호에 다다른 것은 늦은 오후였다. 불콰하게 취기가 오른 그는 나룻배의 널빤지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월악은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옆으로 퍼진 이등변 삼각형의 자태로 용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산머리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있었고, 배 앞으로는 유리 같은 수면이 산기슭까지 이어져 있었다. 산이 물 속에 처박힌 것인지 아니면 물 속의 산에서 그림자가 솟은 것인지, 수면의 산 그림자는 실제 산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수면이 차츰 넓어지고 있었다. 배가 호수 가운데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후의 봄 햇살이 물 위에서 유희라도 하듯이 살랑거렸다. 김영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떠 보았다. 물은 사람의 마음과 곧잘 비유되는 자연이었다. 일렁이는 물은 풍파라고 하여 동요와 고뇌의 마음이고, 고요한 물은 명경지수라 하여 차분하고 깨끗한 마음을 대신한다. 그리고 흘러가는 물에서는 지나가는 것에 대해 미련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김영세는 정화와 함께 했던 두 번의 시간들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 애틋한 기운이 아련히 감돌게 되었다.

조국에 계신 김영세 선생님께,
1940년 3월, 출중한 지도자 한 분이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계신 석오 이동녕 선생입니다. 그는 사천성 기강에 있는 임시정부 건물 2층 침소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석오는 임정의 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상해에서부터 그 분과 20년 동안 가까이 지냈습니다.

사천성 남쪽의 3월 기후는 한국의 5월처럼 화창했습니다. 우리는 중경으로 가는 임정요원들을 버스정류장에서 전송했습니다. 일행이 떠난 후 집으로 발길을 돌렸을 때 이동녕 선생이 말했습니다.
“오늘은 날이 참 좋네. 산 구경을 하다가 저녁은 밖에서 먹지.”
선생은 저에게 저녁 밥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선생의 뜻대로 근처 야산에 올라갔습니다. 이시영, 조완구, 이숙진(조성환 부인) 그리고 남편과 저, 이렇게 다섯 사람이 이동녕 선생을 모시고 모처럼 산책에 나섰습니다. 선생은 나물 캐는 우리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우리는 함께 시장에 가 국수를 사 먹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동녕 선생이 조금 피로한 기색을 보이긴 했지만 대수롭게 여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선생은 천식으로 고생하던 터라 최근 들어 제가 각별히 관심을 갖고 모시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아침을 차려 옆집으로 갔습니다. 이동녕 선생은 반숙 계란 두 개로 아침을 대신하셨습니다. 선생의 침소가 있는 2층으로 막 올라가려는데 아래층에 사는 병인(이준식의 부인)이 나를 불렀습니다.
“밤새 앓으셨어요. 춥다고 하셔서 뜨거운 물찜질을 해드렸어요.”


저는 급히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병세가 심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중국인 한의가 와서 진맥을 하더니 노환으로 가망이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모두가 지극 정성으로 선생을 찾아뵙고 다시 일어나기를 기원했지만, 고희를 목전에 둔 노 애국지사는 곡기를 끊은 지 열흘 만에 유명을 달리 하셨습니다.

선생은 영욕과 회한의 숨을 거둘 때까지 정결하고 꼿꼿한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깔끔한 용모에 공사 구별이 엄격하셨고, 공적이건 사적이건 너저분한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에 노선이 다른 사람들도 그를 인격적으로 존경했습니다. 일곱 살 아래인 백범은 선생을 언제나 깍듯이 대우했습니다. “백범, 백범”하고 부른 후, 백범과 머리를 맞대고 중대사를 의논하시던 그 분의 모습을 임정 사람들은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비 독립운동가 석오장 이동녕의 최후

석오 이동녕, 본관이 연안인 그는 1892년 진사시에 급제한 구한말의 선비였다. 일찍이 을사조약에 항거하다가 체포되어 짐승 같은 고문을 당하고 석방된 그는 왜경이 따라 붙는 국내 상황에서 더 이상 독립운동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는 간도에 가 이상설과 함께 서전의숙을 세웠는데, 이것이 간도 최초의 한국인 학교였다. 그는 학생들에게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그는 신민회와 권업회 등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이상설이 죽은 후 상해로 옮겨간 그는 임시정부의 의정원 의장과 국무총리와 주석 직을 연임하며 20여 년 동안 임시정부를 지켰다. 그는 독립진영의 분열에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했다. 그는 우선 임시정부 산하의 세 개 정당이라도 통합해 달라는 유언을 했다.

"백범, 백범. 백범이 독립운동 진영의 통합을 이루어다오."

석오의 유언을 받들어 이동녕의 한국국민당과 조소앙의 한국독립당 그리고 홍진의 조선혁명당이 한국독립당으로 통합되었다. 당은 임시정부 부주석으로 있던 백범을 집행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아울러 백범은 석오가 맡고 있던 임시정부의 주석 직을 계승하게 된다.

이어지는 정화의 편지

한독당의 재창당과 더불어 저도 창립 당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인 6월에는 한국여성동맹이 결성되어 저는 간사를 맡았습니다. 저는 여성동맹이 정치적 성향을 갖기보다는 임정과 독립군을 지원하는 친목 단체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임정 산하에 광복군이 창설되었지만 인적자원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중국 중앙군 지배하에 있는 한인 청년을 다 합해야 고작 2,3백 명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임시정부가 피난을 시작하여 만 리 길을 헤쳐 오느라 아무 일도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모두들 안타까워하며 무기를 들고 일본과 싸우게 될 날만을 고대하고 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 지금 국내 분위기는 어떠한지요? 날로 험악해져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창씨개명이 강요되고 있다는 소식 정도는 알고 있지만 국내에서의 항일 투쟁에 대한 세부 정보가 없어 답답합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곳의 분위기는 다소 활기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일본의 중국 침략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무모하게 전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동남아시아 침공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남진정책인데,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일본이 경고를 무시하면, 철강과 원유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8월에 대일 금수령이 내려졌습니다. 일본은 전쟁 수행을 위해 석유가 있어야만 합니다. 일본이 동남아시아를 침공한 것은 분명 석유를 얻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은 소련의 육군에 공포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대륙을 점령했다고는 하지만 치안 상태는 매우 불안합니다. 중일전쟁에서도 초기와 달리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중일전쟁에서 밀릴 것 같으니까,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전장을 남방으로 확대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스스로 어려움을 자초하는 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자멸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 이곳의 분석인데 국내에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곳에서는 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임시정부를 중경으로 옮길 계획이라고 합니다. 과연 우리에게 독립이란 게 찾아올는지요? 실감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해방이나 되어야 조국에 갈 수 있는 저는 과연 선생님을 또 뵈올 수 있겠는지요? 모든 것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정화 올림.

김영세는 더 이상 정화의 편지를 받지 못했다. 일본이 전시 동원 체제를 가동하면서 적국에서 오는 우편물을 검열하고 제한했기 때문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김영세는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경찰의 손에는 정화로부터 온 편지가 쥐어져 있었다. 경찰은 끝내 김영세에게 정화의 편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영장 없이 한 달 이상이나 구금되었다. 고등계 형사는 김영세를 임정과 내통하는 국내 첩자로 몰아붙였다.

그는 무자비한 고문을 받았다. 형사는 손때에 절어 윤이 나는 참나무 막대기로 김영세의 정강이를 때렸다. 그는 김영세의 손가락 마디 사이에 막대기를 끼우고 비틀었다. 김영세는 철봉 같은 데에 한 나절 이상을 매달려 있기도 했다. 형사는 잠을 재우지 않았다. 김영세는 욕조 물에 얼굴이 처박혀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는 그 물을 아예 먹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김영세는 두뇌와 의지가 있는 사람이었다. 살아 버티기만 하면 증거가 없으니 기소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해외에서 보낸 편지를 받아 읽은 것이 죄가 될 리는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는 형사에게 겁을 주었다.

"당신이 무고한 나를 이렇게 괴롭히다가 내가 석방되면 당신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를 생각이나 해 보았소?"

마침내 형사는 그를 풀어 주었다. 그는 아리랑고개에 있는 순호 의원을 찾아갔지만 병원은 철거되고 없었다. 건물 1층에는 병원 대신 우동집 간판이 붙어 있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외출하지 못했다. 물론 고문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덧붙이는 글 | 곧 2부가 끝나고 3부 '열두 개의 눈동자'가 시작됩니다.
3부에서는 장준하, 이강국 등 6명의 젊은이가 주인공으로 출연합니다.


덧붙이는 글 곧 2부가 끝나고 3부 '열두 개의 눈동자'가 시작됩니다.
3부에서는 장준하, 이강국 등 6명의 젊은이가 주인공으로 출연합니다.
#이동녕 #백범 #한국독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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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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