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용대와 고려혁명군
길림성 삼림지대의 김문수는 50여 명의 잔류병들과 조선 독립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미 독립운동의 진영에도 이념 차이로 인한 균열과 대립이 생긴 지 오래였다. 얼마 안 되는 인원이지만, 조선의용군과 고려혁명군에서는 김문수의 부대를 자기 진영으로 가담시키려고 하루가 멀게 사람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마다 김문수는 그들을 만나서 그들이 제안한 내용을 대원들에게 알렸다. 그러고는 가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갈 수 있도록 조치했다.
길림성의 산간과 협곡에는 김문수의 부대 말고도 10여 개의 독립군 부대가 잔류하고 있었다. 그들끼리도 가끔 만나 통합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말이 독립군이지, 그들의 상태는 이제 유민이나 다름없었다. 이념을 분명히 해야 중국 정부나 소련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가 있었다. 조선의용대는 중국정부로부터, 고려혁명군은 소련에게서 상당한 지원을 받고 있었다.
'외세에 의존하여 나라를 구하겠다는 자들은 십중팔구 매국노로 바뀐다.'
김문수는 삼촌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어느 편으로도 가지 않고 주변 독립군들의 통합 작업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대세는 기울고 있었다. 이미 길림성 전역이 일본군의 점령 지대였다. 군사 행동은커녕 이동이나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바뀌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길림성의 독립군 숫자는 눈에 띄게 줄고 있었다.
조선의용군이나 고려혁명군으로 가고 싶어도 부상 때문에 미루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그 부상당한 동지를 돌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김문수의 대원 중에도 부상으로 누워 지내는 사람이 다섯 명 있었다.
길림신문에서 ‘숲에서 죽어가는 한국인’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낸 후, 여론이 일어 한· 중· 일 ‘국경 없는 의사회’가 발족되었다는 소식을 김문수는 들어 알고 있었다. 그들은 말이나 우마차를 타고 직접 왕진까지 해 준다는 것이었다. 김문수는 그들을 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부상자를 직접 보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전현동이 김문수의 움막 휘장을 들치고 들어왔다.
"길림성 의사회에서 오늘 오후에 의사 하나와 간호사 하나를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아니 그들이 어떻게 여길 알고 온다는 거지?"
전현동은 어젯밤 길림 시내에 갔다 왔다고 했다. 그는 환자를 위해 위험을 무릅썼던 것이었다.
"나는 협상 때문에 나갔다 와야 하니 의사가 오면 자네가 안내를 하게."
공산군 측에서 또 만나자는 연락이 와 있었다. 이번에 오는 사람은 김일성의 참모장으로서 꽤 비중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김문수는 점심을 먹은 후 약속 장소를 향해 출발했다.
"김 동지, 약소민족에게는 이데올로기가 곧 정의입니다."
김일성의 참모장은 이념과 조직이 없이 어떻게 독립운동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며 김문수의 전향을 권유했다. 당에 가입만 하면 곧 무기와 자금을 보낼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김문수는, 가서 동지들에게 그대로 전하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런 김문수의 대답을 거절로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그는 김문수가 가서 그대로 전하겠다는 말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임시정부를 비난했다.
"노인네들 몇이 앉아서, 이 당, 저 당 하며 중국 눈치나 보는 집단에 희망을 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김문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소련이 조선에 해 준 일은 뭐냐고 묻고 싶었다.
소련이 해 준 일은 또 뭐가 있다고
소련은 일찍이 이동휘 선생에게 거금을 주어 임시정부에서 이탈케 한 것이나, 자유시에서 조선독립군들을 무더기로 학살한 사실을 김문수는 알고 있었다. 게다가 소련은 구한 말 조선을 침탈하는 데 앞장선 제국주의 국가였다. 조선이 이 지경까지 된 데에는 소련의 책임이 일본 다음으로 크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고종과 민비가 러시아 공사관에 가 있는 1년 동안 나라의 이권을 가장 많이 빼앗겼고, 그 결과 국력이 급속도로 쇠약해졌으며, 이를 기화로 독립협회의 발호가 드세졌던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굳이 지원을 받는다면 그래도 중국에게 받는 것이 뒤탈이 없을 것이었다.
중국은 지금 제 나라 통일하기에도 급급해 조선까지 엿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문수는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았다. 그가 대답을 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민족 분열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제 내린 비로 숲길은 촉촉했고 공기는 한층 맑았다. 김문수는 계곡의 청아한 물소리를 들었다. 길가 바위에는 푸른 이끼가 곱게 배어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밝은 햇살이 짙거나 옅거나 제각각의 음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는 문득 삼촌과 함께 갔던 조국의 소쇄원을 생각했다. 그것은 이제 멀고도 아련한 추억이 되어 있었다. 다시는 그런 날이 올 성싶지 않았다. 갑자기 나무 위에서 듣기 좋은 새소리가 울렸다.
막사로 돌아온 그는 전현동의 보고를 받았다. 환자 다섯 명의 치료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간호사와 함께 온 의사는 여자인데, 환자에게 아주 친절하며 정성을 다 한다는 것이었다.
"대장님이 직접 사의를 표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김문수는 세수를 하고 환자 방으로 가겠다고 했다. 여자 의사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세수를 마친 그는 수건을 목에 두르고 환자들의 움막으로 갔다. 전현동이 그의 뒤를 따랐다. 김문수는 창을 통하여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 의사는 환자의 상처를 만지다가 허리를 펴더니 간호사에게 무슨 말인가를 했다. 그는 움막의 문 앞에서 의사를 기다리기로 했다.
한참 후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가 나왔다. 전현동이 말했다.
"간호사님, 우리 대장님이십니다."
간호사는 중국인 남자였다. 그는 김문수에게 목례를 하더니 안에 들어가 보시라고 말했다.
"치료에 방해가 될 테니 여기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간호사는 전현동에게 물을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전현동이 간호사에게 옹달샘을 안내했다. 간호사는 물을 들고 다시 환자 움막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움막 문이 움직였다. 간호사가 먼저 나왔다.
"의사 선생님, 우리 대장님이십니다."
조순호는 일순간에 김문수를 알아보았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전현동과 간호사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서 보고 있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입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동시에 엇갈려 나왔다. 그들은 끝내 부둥켜안고 말았다.
간호사를 보낸 조순호는 김문수의 움막에서 밤을 새웠다.
"우리 집에 오셔서 하신 말 아직도 유효한가요?"
그들은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 중에는 김영세와 정화 그리고 나민혜도 있었고 조준호도 있었다.
"눈 위에 흉터는 전투하다 생긴 건가요?"
조순호는 김문수가 전투 중에 땅에 머리를 박아 생긴 조그만 흉터가 예전에는 없던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튿날 병원에 가서 조순호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을 김문수에게 내 놓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삼촌과 간난아이가 모두 그 안에 있었다.
김문수는 비로소 아버지가 무슨 일을 했으며 어떻게 죽었는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얼마 후 김문수는 간난아이를 유심히 보고 있다가 조순호와 눈이 마주치자 슬며시 눈길을 창밖으로 돌렸다. 조순호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후일담
김문수는 대원들이 모두 떠나자 하산해서 조순호와 부부가 되었다. 그는 남경대학에서 동양사를 전공하여 학위를 마친 후 조순호와 함께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사진이 아닌 진짜 아기를 안고 귀국했다.
정화는 중경에서 5년을 더 보내다가 해방이 되자 임정 사람들과 함께 미군의 엘에스티를 귀국했다. 그녀는 김영세게게 끝내 중경에서 보내는 편지를 쓰지 못했다. 그녀는 임정요인 중 유일하게 이승만 정부에 가담하여 부통령이 된 이시영으로부터 여성 몫으로 할당된 감찰위원직을 제의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녀는 중경 화탄계에서 멱 감고 빨래하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았다. 그녀가 조국에 와서 바로 김영세를 만났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만났다면 정화의 남편이 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간 이후가 되었을 것이었다. 만약 만났더라면 그들은 마치 초등학교 동창이라도 된다는 듯이 함께 식사도 하고 등산도 했을 터이었다.
김영세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노려보며 서 있었다. 인왕산과 경복궁을 시야에서 완전히 차단한 악의의 건축물 앞에서 그는 한숨과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근정전에서 울려나오는 삼엄하리만치 웅장한 아악 연주를 환청으로 듣게 되었다. 추석과 품석들이 눈에 어른거렸고, 이어 군왕을 알현하고 있는 만조백관의 조회 장면이 나타났다. 다시 대궐 마당에 우렁찬 아악이 울려 퍼졌고 옥좌에 앉아 있는 조선 군왕의 은빛 수염이 햇빛 아래에서 반짝였다.
( 2부 '중경에서 오는 편지' 끝) 덧붙이는 글 | 2부는 오늘로 끝나고 이어서 3부 '열두 개의 눈동자'가 펼쳐집니다. 3부에서는 장준하, 이강국 등 여섯 젊은이가 등장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공유하기
[제국과 인간] 끝내 중경에서 편지를 쓰지 못하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