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가을길 만나고 싶다면, 지금 걸으세요

[도보여행] 두문동재에서 금대봉 지나 분주령길 걷기

등록 2008.09.29 17:57수정 2008.09.3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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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대봉 가는 길 ⓒ 유혜준


강원도의 이른 가을은 을씨년스러운 느낌으로 먼저 와 닿습니다. 물기가 말라가는 나뭇잎은 아직 가을 색으로 물들지 않았고, 여름내 웃자란 풀들은 바싹 마른 채 갈색으로 변해가는 중이었습니다. 부는 바람은 선뜩한 기운을 머금고 있어 걷느라고 이마에 맺힌 땀을 한순간에 식히곤 했지요.

가을이 채 깊어지기도 전에 뱀들은 벌써 잘 자리를 찾아 또아리를 틀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풀숲에서 뱀을 만날 확률이 적다는 게 두문동재 산불감시초소에서 만난 태백시 공무원의 설명이었습니다. 대신 산에 돼지가 많다고 했습니다. '산에 웬 돼지?'하실지 모르지만 산에서 만나는 돼지가 집돼지일 리 없겠지요.


하지만 산길에서 돼지 발뒤꿈치도 못 봤습니다. 인적이 드문 산 속으로 숨어버린 모양입니다. 대신 걷기 좋은 전나무 숲길을 만났고, 푹신한 융단 같은 흙길도 만났습니다.

28일, 두문동재에서 금대봉을 지나고 분주령을 넘어서 한강의 발원지라는 검룡소까지 걸었습니다. 중간에 대덕산 정상에도 올랐지요. 대덕산과 금대봉은 생태·경관 보전지역이라 등산을 하거나 산길을 걸을 때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자연은 잘 보전해서 후손에게 넘겨주어야 할 우리의 자산이지요.

두문동재에서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까지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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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령에 가을이 왔네 ⓒ 유혜준


이번 도보여행은 걷기모임 '길따라 바람따라 사람따라' 회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두문동재를 중심으로 금대봉 가는 길과 은대봉 가는 길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은대봉 가는 길을 따라 걸으면 걷기 좋은 숲길이 함백산을 지나 야생화의 천국으로 알려진 '산상의 화원' 만항재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금대봉 가는 길 역시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길이지만 가을이 성큼 다가온 덕분에 야생화는 많이 졌습니다. 시든 꽃잎을 달고 있거나 바싹 마른 채 씨를 머금고 다음 생을 준비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조금은 삭막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두문동재에서 금대봉까지는 1km가 채 되지 않습니다. 등산로가 아닌 길로 가지 못하도록 길옆으로 말뚝을 박아 줄을 쳐놨습니다. 그 길을 따라 걷습니다. 길이 아닌 곳은 가지 않는 게 좋겠지요. 나무도 풀도 꽃도 열매도 손대지 말고 눈으로만 보자구요.

금대봉까지는 오르막도 심하지 않아 천천히 걸으면 힘들이지 않고 금방 닿을 수 있습니다.

금대봉임을 알려주는 표지석 외에는 그다지 볼 건 없습니다. 이제 분주령을 향해 가볍게 발을 내딛습니다.

평평하고 걷기 좋은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전나무 숲이 나옵니다. 곧게 뻗어 잘 자란 나무를 보면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옵니다. 하늘을 향해 1자로 경쟁하듯이 나무들이 자랐습니다. 나무를 올려다보니 하늘 끝에 닿은 것처럼 보입니다. 나무를 타고 하늘에서 누군가가 내려올 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나무 못지않게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건 푹신한 길입니다. 걷는 길 전부 그런 것은 아니나 부드러운 융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포근하고 푹신합니다. 그런 길을 걸을 때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당연하겠지요?

전나무 숲에서 융단 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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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숲길 ⓒ 유혜준


시들어가는 엉겅퀴들이 많이 보입니다. 어떤 것은 가시 같은 꽃잎이 모조리 없어지고 짙은 갈색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세월은 참 신기하게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흐릅니다. 봄이면 꽃이 피어나고 여름이면 녹음이 짙어지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고 겨울이면 눈이 내리지요. 이런 자연의 섭리가, 세월의 흐름이 인간이 만든 환경 재앙으로 흔들리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분주령 가는 길은 야생화 천국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야생화가 많이 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아직 피어 있는 꽃들이 눈에 띕니다. 붉은 열매가 매달려 있는 나무들도 보입니다. 숲의 향기에 취해 걷다보니 어느새 분주령입니다.

분주령이라고 하면 가파른 고개를 연상할 수 있지만 툭 트인 공간입니다. 풀이 우거져 있지요. 억새풀도 듬성듬성 자라 있답니다. 억새를 보니 가을이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분주령의 가을을 만끽하고 대덕산 정상을 향해 걷습니다. 이 길, 역시 걷기 좋은 길입니다. 오르막길이 조금 있기는 하나,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등산로라기보다는 트래킹 코스라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대덕산에서 우리가 지나온 금대봉 보입니다. 그 뒤로 은대봉이 보이고, 매봉산이 보이고,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밭도 보입니다. 전망이 확 트여 보고 있노라니 가슴 속이 후련해집니다. 가슴을 쭉 펴고 산의 맑은 공기를 흠뻑 들이마십니다.

산의 정기를 마셨으니 이제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로 가야겠지요?

검룡소 가는 길도 걷기 좋은 숲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전나무 숲이지요. 검룡소는 금대봉 기슭에 있는 제당굼 샘과 고목나무 샘, 물골의 물구녕 석간수와 예터굼에서 솟아나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솟아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하루에 2천 톤의 물이 솟아난다고 하는데 소의 규모로 봐서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가물어서 그런지 물이 많아 보이지 않았거든요. 소 안에 검룡이라 불리는 용이 살았다고 해서 검룡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네요.

검룡소에는 검룡이 산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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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룡소 ⓒ 유혜준


나무 계단을 올라가 소를 내려다보니 물 속에 동전들이 잔뜩 들어가 있습니다. 저런, 나무계단 난간에 동전을 던지지 말라는 글이 붙어 있네요. 환경이 오염될 수 있답니다. 맑은 물속에 던져진 동전들이 흉물스럽게 보이는 순간입니다.

이날의 도보여행은 여기까지입니다. 두문동재에서 검룡소까지 걸은 길은 13km 남짓입니다. 걸린 시간은 휴식시간 포함해서 네 시간 정도. 산길 1km와 평지 1km는 걷는 시간이 다르다지만 이 길은 험한 등산로가 아닌 걷기 좋은 길이기 때문에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이 즐기면서 걸었지요. 

이 길을 가장 걷기 좋은 계절은 야생화가 피기 시작하는 5월부터 9월 초까지라고 합니다. 이 길을 미처 걷지 못하신 분들은 내년 봄이나 여름을 기약하시면 될 듯합니다. 하지만 황량한 가을을 만끽하고 싶다면 지금 걷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지요. 더 늦어지면 출입금지가 되어서 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도보여행 #두문동재 #분주령 #검룡소 #대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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