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3)

― ‘다섯 편의 작품’, ‘열한 편의 작품’ 다듬기

등록 2008.10.16 19:12수정 2008.10.16 19:12
0
원고료로 응원

ㄱ. 다섯 편의 작품

 

.. 여기에 수록된 다섯 편의 작품은 픽션으로서 문학 작품입니다 ..  <우리와 안녕하려면>(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 양철북,2007) 5쪽

 

 ‘수록(收錄)된’은 ‘실린’으로 다듬습니다. ‘픽션(fiction)’은 ‘꾸민 이야기’를 가리킵니다. 이 자리에서는 “꾸민 이야기로서 문학 작품입니다”나 “내가 지어낸 이야기로, 문학 작품입니다”쯤으로 다듬으면 됩니다.

 

 ┌ 편(篇)

 │  (1) 형식이나 내용, 성질 따위가 다른 글을 구별하여 나타내는 말

 │   - 기초 편 / 수필 편 / 소설 편

 │  (2) 책이나 시문(詩文)을 세는 단위

 │   - 시 한 편 / 그는 평생 동안 수필을 500편이나 썼다

 │  (3) 책의 내용을 일정한 단락으로 크게 나눈 한 부분을 나타내는 말

 │   - 제5편 / 제1편 제2장

 │

 ├ 다섯 편의 작품은

 │→ 작품 다섯 편은

 │→ 다섯 작품은

 │→ 다섯 가지 글은

 │→ 글 다섯 꼭지는

 │→ 글 다섯은

 └ …

 

 보기글에서는 글차례만 바꾸어도 됩니다. “작품 다섯 편”이라고 적어야 올바라요. “한 편의 시”가 아니라 “시 한 편”이잖습니까. “한 편의 글”이 아니라 “글 한 편”이고요.

 

 조금 마음을 기울여 준다면, “시 한 꼭지”나 “글 한 꼭지”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말을 붙이지 않고 “시 하나”나 “글 하나”라고 적어도 좋아요.

 

ㄴ. 열한 편의 작품

 

.. 이 책은 신일본출판사에서 2006년에 펴낸 <환상의 개>, <문을 열고>, <하늘은 이어져 있다> 3권의 책 가운데서 열한 편의 작품을 가려 뽑아 우리 말로 옮겼음을 밝혀 둡니다 ..  <하늘은 이어져 있다>(일본아동문학자협회 엮음/문연주 옮김, 낮은산,2008) 260쪽

 

 ‘선별(選別)’이나 ‘선정(選定)’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가려 뽑아’를 쓴 대목이 반갑습니다. ‘가려뽑다’ 같은 낱말은 넉넉히 한 낱말로 삼아서 국어사전에도 실을 만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열한 편의 작품을 가려 뽑아

 │

 │→ 열한 작품을 가려 뽑아

 │→ 열한 꼭지를 가려 뽑아

 │→ 열한 가지 글을 가려 뽑아

 │→ 열한 가지 이야기를 가려 뽑아

 └ …

 

 그렇지만 토씨 ‘-의’를 알맞지 못하게 붙인 대목은 아쉽습니다. 알맞춤하게 ‘가려 뽑다’라는 낱말을 고르고, ‘번역(飜譯)’이 아닌 ‘옮기다’라는 낱말을 고르는 마음결이었는데, 조금 더 헤아리는 마음결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한 군데 더 살피는 눈길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는지요.

 

 ┌ 3권의 책 (x)

 └ 책 세 권 (o)

 

 그러고 보니 보기글 가운데 짬에도 “책 세 권”이 아닌 “3권의 책”으로 적어 놓았군요. 꽤나 예전부터 잘못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한 잔의 물” 꼴인데, 이 책을 옮긴 분도 이 말투에 물들거나 매여서 헤어나지 못하는 셈인가요. 옮긴이를 넘어서 책을 펴내는 출판사에서도 “3권의 책”이 아닌 “책 세 권”으로 바로잡아 줄 만한 편집자가 없는 셈인가요.

 

 책 한 권에서 잘못 쓰이는 낱말이나 말투는, 이 책을 읽을 수천 수만 사람한테 영향을 끼칩니다. 방송 풀그림 한 꼭지에서 잘못 들려주는 낱말이나 말투는, 그 방송 풀그림을 들여다볼 수만 수십만 사람들한테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들 누구나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하지 않을 테고, 찬찬히 생각을 기울인 끝에 하기는 할 터이나, 잠깐잠깐 마음을 놓으면서 풀어놓는 얄궂은 낱말과 말투는, 우리 말 문화를 안타까운 쪽으로 뒤틀거나 흔듭니다. ‘그 뭐 낱말 한 마디가 대수인가’ 하고 여기면 큰코 다칩니다. 씨앗 하나에서 수백 알곡이 나오고, 씨앗 하나가 우람한 나무로 자랍니다. 잘 뿌린 씨앗 하나도 큰나무가 되지만, 잘못 뿌린 씨앗 하나도 큰나무가 됩니다. 튼튼하고 아름다운 나무를 키울 수 있는 우리들인 한편, 튼튼하지 못하고 아름답지도 못한 나무가 자라도록 내버려 둘 수 있는 우리들이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10.16 19:12ⓒ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토씨 ‘-의’ #-의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3. 3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4. 4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5. 5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