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세자, 서양 문물에 충격 먹다

[역사소설 소현세자 111] 서양 신부를 만나다

등록 2008.10.19 18:33수정 2008.10.1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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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고궁. 심양고궁 편액 ⓒ 이정근

▲ 심양고궁. 심양고궁 편액 ⓒ 이정근

북경을 장악한 도르곤이 용골대를 불렀다.

 

"심양에 돌아가 황제를 모셔 오도록 하라."

"넵."

"황제는 물론 태황후와 황실가족 모두를 모셔 와야 한다."

"네?"

 

용골대는 어안이 벙벙했다. 황제를 잠깐 모셔오는 의전 절차인줄 알았는데 황실가족 모두를 모셔 오라면 천도다. 북경 공략 못지않게 중요한 작전이다. 천 육백여리. 머나먼 길에 이자성의 패잔병이 숨어 있을 수 있고 복병이 깔려있을 수 있다. 만에 하나 불상사가 발생하면 군사 하나 둘, 죽는 것하고는 격이 다르다. 용골대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천도를 결심했다, "황제를 모셔 오라"

 

무주공산 북경에 팔기군 깃발을 꽂은 도르곤은 자신감을 얻었다. 천하무적 명나라의 잔존 부대는 오삼계라는 이름아래 청나라 휘하에 들어와 있고 명 황실을 멸망시킨 이자성의 반란군은 패주하고 있다. 청나라를 위협할 만한 군사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족이라면 만만디를 구가하겠지만 만주족은 달랐다. 더 미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도르곤이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는 것을 결심한 것이다.

 

용골대를 돌려보낸 도르곤이 소현을 불렀다. 융경황제 부마 후공진의 집을 배정받아 시강원 관원들과 머물고 있던 소현은 자금성으로 도르곤을 찾았다.

 

"심양에 나아가 세자관 식솔들을 데리고 들어오시오."

"아니, 심양에서 북경까지 머나먼 길을 어떻게?"

 

소현은 아득했다. 세자관이 이주해오는 것도 문제였지만 조국과 점점 멀어진다는 것이 불길한 예감으로 작용했다.

 

"황제를 모셔 오기 위하여 용골대를 내보냈소. 들어올 때는 황제의 행차와 행동을 같이 하시오."

 

심양으로 돌아온 용골대와 소현은 북경 이주에 여념이 없었다. 황실이 움직이고 세자관이 이동하는 것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챙길 것도 많고 격식과 예법도 많았다. 이러한 와중에 북경천도를 제일 기뻐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효장황후다. 황제에 등극한 아들을 데리고 보고 싶은 남자를 만나러 가니 아니 기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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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릉 홍타이지가 잠들어 있는 북릉 ⓒ 이정근

▲ 북릉 홍타이지가 잠들어 있는 북릉 ⓒ 이정근

 

8월 20일. 드디어 황궁을 나선 순치황제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실 식솔과 제왕들의 가솔 등 수많은 사람들의 이동은 장관이었다. 소현도 세자관 사람들을 거느리고 황제의 행차를 뒤따랐다. 세자관 짐이 많아 익찬 김시성과 내관 조방벽이 우선 세자관에 머물러 있기로 하고 떠났지만 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봉림대군과 부인, 시강원 관원 등 2백여 명의 대식구였다.

 

서문을 빠져 나온 황제 행차가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홍타이지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기 위해서다. 북릉에 도착한 복림이 아버지 홍타이지에게 배사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장비의 심정은 착잡했다. 이곳에 잠들어 있는 사람은 소년 황제의 아버지이며 자신의 지아비다. 자신이 죽으면 이곳에 묻히는 것이 법도이지만 홍타이지 곁에 묻힐 자신이 없었다.

 

복림에 이어 제왕과 청나라에 항복한 몽고왕이 절을 올렸다. 이어 소현과 봉림대군이 예를 갖췄다. 홍타이지 능소 참배를 마친 황제 일행은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행차의 속도는 더뎠다. 평소 같으면 하루 걸이에 불과 한 요하까지 사흘 걸렸다. 요하 강변에 막차를 마련하고 하룻밤을 묵었다.

 

고국과 멀어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식솔들을 대동하고 북경으로 향하는 소현의 마음은 착잡했다. 북경은 아버지의 나라 수도다. 아버지가 있던 곳이다. 그러나 현재 아버지는 없고 팔기군 깃발이 펄럭이는 북경이다. 또한 북경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관광도 아니고 유학도 아니다. 끌려가는 것이다. 세자의 심정이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45일간의 여정 끝에 황제 행차가 북경에 도착했다. 연도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나와 머리를 조아렸고 청나라의 황실을 환영했다. 정양문을 통과한 복림이 자금성에 입궐했다. 정양문은 황제 전용문이다.

 

북경에 입성한 복림은 제왕을 거느리고 천단(天壇)에 제사를 올리고 등극을 고했다. 이제 바야흐로 중원의 황제가 된 것이다. 나이 어린 황제가 심양에서 황제에 등극하고 북경에서 또 한 번 황제에 등극한 셈이다. 이로서 공식적인 청나라의 북경접수가 완료 되었다. 황극전(皇極殿)으로 돌아온 복림은 대소신료들의 하례를 받고 조서를 반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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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좌. 자금성 황제의 자리 ⓒ 임충구

▲ 황좌. 자금성 황제의 자리 ⓒ 임충구

"짐이 국가요 국가가 짐이다. 모든 신민은 국가를 공경하라."

 

청(淸)· 몽(蒙)· 한(漢)의 어음(語音)으로 각각 한 번씩 읽었다.

 

"황제폐하 천천세!"

 

수천 대소신료가 함성을 지르며 머리를 땅에 찧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도 참례했다. 제왕의 배례가 끝나고 복림이 도르곤을 불렀다. 도르곤이 복림 앞에 무릎을 꿇었다.

 

"북경을 평정하는데 그대의 공이 컷으므로 이에 옥새(玉璽)를 주어 국정을 대리하도록 한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도르곤이 세 번 옆드려 절을 올렸다.

 

"그대에게 금(金) 1만 냥, 채단(彩段) 10만 필, 말 1백 필, 낙타 10필을 상으로 내려 공을 치하 하노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도르곤이 거듭 사례했다. 공식행사가 끝나고 잔치가 벌어졌다. 만여 명이 넘는 대형 잔치였다. 이튿날 몽고자(蒙古字)와 한자(漢字)로 된 새 책력을 반포한 도르곤이 소현을 황궁으로 초치했다.

 

"북경에는 서양에서 온 천문학자가 있소. 그의 학문이 깊어 놀라운 것이 하나 둘이 아니오. 이번 책력도 그의 자문을 받아 반포했소. 세자도 그와 친교를 맺으면 이로울 것이오. 내가 소개해 줄테니 만나 보도록 하시오."

 

도르곤이 소개장을 내밀었다.

 

"그에게 흠천감(欽天監)을 맡겼소. 시간을 내어 천문대를 찾아가 보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세자관으로 돌아온 소현은 이튿날, 빈객 임광과 문학 이래를 대동하고 천문대를 찾았다.

 

서양 신부와의 교우

 

"어서 오시오. 세자! 섭정왕으로부터 해 뜨는 동쪽나라를 이끌어 갈 차세대 주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갈색 머리칼의 서양인이 반갑게 맞이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소현이 가볍게 읍했다.

 

"나는 탕약망이라 합니다. 하 하 하."

 

맑은 눈동자를 굴리던 서양인이 유창한 중국어와 함께 너털웃음을 웃었다. 천문대에는 여러 종류의 천문관측기구와 편찬 작업 중이던 서양신법역서(西洋新法曆書) 원고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중에서 소현의 눈길을 끄는 것이 달 항아리처럼 둥그런 물체였다.

 

"이것이 무엇이오?"

"천구의(天球儀)라고 합니다."

"뭐하는 물건이오?"

"지평좌표와 적도좌표를 판독하는데 중요한 기구이며 계절에 따른 별자리의 변화를 살피는데 아주 유용하게 쓰입니다."

 

소현은 하나도 알아들 수 없는 말이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지만 먼 바다에 나가면 절벽으로 떨어진다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시대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한지 이제 백년. 아직 그의 학설이 검증되지 않고 설왕설래하던 시기였다.

 

"내일은 성당에 있을 예정입니다."

"성당이 무엇 하는 곳이오?"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곳입니다."

"아하, 대웅전처럼 기도드리는 곳이란 말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절집하고는 다릅니다."

 

이튿날, 세자는 빈객과 익위사 관원들을 대동하고 성당을 찾았다. 지붕이 꼬갈처럼 뾰쪽한 것이 난생처음 보는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기다란 나무 의자가 놓여 있고 단상 중앙에는 십자가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세자!"

 

자애로운 얼굴이 반갑게 맞이했다. 목소리는 어제와 같았으나 차림새는 달랐다. 머리에 둥그런 모자를 쓰고 두루마기에 도포를 겹쳐 입은 듯한 옷차림에 큰 구슬 5개와 작은 구슬 54개를 꿰어 만든 묵주를 목에 걸고 있었다.

 

"어제하고는 영 딴판이군요."

"저는 신성로마제국 퀼른에서 온 예수회 소속 신부 아담 샬 폰 벨입니다."

 

당시 북경에는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중국 이름 탕약망(湯若望)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담 샬 폰 벨 이었다. 그는 1618년 퀼른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북경에 들어와 전도에 종사하고 있었다. 아담 샬은 천문 역법에도 밝아 3차례 월식을 예보하여 명성을 얻었다. 이에 숭정제의 총애를 받은 그는‘숭정역서’를 편찬했다. 명나라가 멸망했지만 북경에 눌러앉은 그는 도르곤에게 발탁되어 천문대장인 흠천감(欽天監)직을 맡아 봉사하며 천주교와 서양역법을 전파하고 있었다.

 

새로운 문물에 충격받은 왕세자

 

"저 나무를 엮어 걸어 놓은 것은 무엇이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힌 십자가입니다."

"생사람을 목 박아 죽였단 말이오?”

"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자기 죄도 아니라고 꽁무니 빼는 세상에 남의 죄를 안고 죽어가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단 말이오?"

"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왼쪽 뺨을 치거든 오른쪽 뺨을 내 놓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오? 정신병자 아니면 뭔가 모자란 사람이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무거운 짐을 진 자, 모두 나에게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소현은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소현은 머리가 무거웠다. 심한 두통이다. 소현은 성당 밖으로 나와 세자관으로 향했다.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천정에 십자가가 보이고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는 말이 귀에 맴돌았다.

 

#북경 #도르곤 #아담샬 #심양 #소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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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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