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 없으면 밥 굶어야죠

[미국문화읽기16] 'TV디너', 미국인의 생활을 향상시켰나

등록 2008.10.24 14:18수정 2008.12.0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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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인들에게 전자레지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다. 2006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자레인지는 미국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5대 발명품 가운데 하나다. 미국인들이 즐겨 먹는 즉석음식 'TV 디너'가 전자레인지에서 끓고 있다.
미국인들에게 전자레지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다. 2006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자레인지는 미국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5대 발명품 가운데 하나다. 미국인들이 즐겨 먹는 즉석음식 'TV 디너'가 전자레인지에서 끓고 있다.강인규

미국인 가정에 저녁초대를 받았을 때의 일이다. 음식이 준비되고 빈 접시가 식탁에 놓일 때였다. 주인 집 소녀가 어두운 표정으로 '비보'를 전해왔다.

"전자레인지가 고장 났는지 작동이 안 돼요."

저녁을 차리던 아주머니의 얼굴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

"내일부터 어떻게 끼니를 해결해야 하지?"

다행히 그날 저녁은 재래식 오븐으로 요리가 가능한 피자였다. 하지만 이날 남은 음식으로 다음날 아침을 해결하려 해도 당장 전자레인지가 필요할 터였다.

비록 잠시이기는 했으나, 두 사람의 근심스런 낯은 전자레인지가 미국인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잘 말해준다. 95% 이상의 보급률이 말해주듯, 오늘날 전자레인지는 미국 주방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다. 

2006년에 퓨 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는 흥미로운 여론조사를 했다. 미국인들에게 '없이는 못 살' 발명품을 골라보라고 한 것이다. 이때 전자레인지는 자동차·세탁기·건조기·냉방기 다음으로 5위를 차지했다. 전자레인지를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으로 고른 사람은 68%로, 텔레비전(64%)이나 컴퓨터(51%)보다도 높았다.


 냉동식품코너에서 고객이 즉석음식을 고르고 있다. 미국의 식료품점에서 팔리는 냉동음식들 다수는 전자레인지 하나로 조리가 가능하다. 진열대 위에 '주요리(entree)'와 '냉동야채' 등의 안내판이 보인다.
냉동식품코너에서 고객이 즉석음식을 고르고 있다. 미국의 식료품점에서 팔리는 냉동음식들 다수는 전자레인지 하나로 조리가 가능하다. 진열대 위에 '주요리(entree)'와 '냉동야채' 등의 안내판이 보인다.강인규

컴퓨터 없인 살아도 전자레인지 없인 못살아

전자레인지가 없으면 곤란해지는 것은 일반 가정만이 아니다. 냉장 유리진열대에서 손님이 샌드위치를 고르면 점원이 '데워 드릴까요?' 하고 묻고 전자레인지 버튼을 누르는 것은 이제 미국 간이식당의 일상적인 모습이 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전자레인지에 대한 의존은 패스트푸드점을 포함해 거의 모든 식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손님 앞에서 쓰느냐, 주방에서 쓰느냐일 것이다. 대형 식당체인의 '요리'란 이미 조리된 상태에서 각 매장에 배달된 음식을 다시 데워주는 데 지나지 않으며, 이 과정에서 전자레인지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   

전자레인지의 영향은 단순히 요리를 빠르고 간편하게 만들어 준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미국인들의 식생활 자체가 전자레인지를 중심으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어느 식료품점에 가더라도 대형 냉동식품 코너를 볼 수 있다. 그 곳에 진열된 냉동음식 대부분은 포장만 뜯어 전자레인지에 밀어넣기만 하면 된다.

전자레인지 버튼 하나로 끝나는 이 즉석 음식은 'TV디너(TV Dinners)'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미국인들이 먹는 음식 가운데 'TV 디너'로 나와있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해산물 전채요리에서, 육류 튀김, 찜, 구이 등의 주요리, 그리고 케이크와 과일파이 등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프랑스 요리는 물론, 최근에는 각종 '아시아식 별미'도 판매되고 있다.

그릇에 옮겨 담을 필요도 없고, 재료를 더하거나 소스를 뿌릴 필요도 없다. 물론 설거지도 필요 없다. 먹고 난 후 플라스틱 용기만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면 된다.

덕분에 미국에서는 일년 내내 요리 한 번 하지 않고 살 수 있다. 포장을 뜯고 전자레인지 문을 열고 닫는 것을 '요리'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검은 플라스틱 그릇에서 지글거리며 녹는 물질을 기꺼이 '음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2007년 한 해 동안 미국인들은 냉동식품을 사는 데 370억달러를 썼다. 미국 전체 식음료 시장의 12%에 달하는 막대한 액수다.

 식표품점 냉동실에 든 각종 'TV 디너'들. 대식가들을 위해 양을 늘린 '헝그리맨' 시리즈도 있고, 어린이용도 별도로 나와 있다.
식표품점 냉동실에 든 각종 'TV 디너'들. 대식가들을 위해 양을 늘린 '헝그리맨' 시리즈도 있고, 어린이용도 별도로 나와 있다.강인규


 미국인들이 먹는 음식 가운데 전자레인지용 즉석음식으로 나와있지 않은 것들은 거의 없다. 햄버거, 스테이크, 닭튀김, 파스타, 라자냐, 볶음밥, 국수 등 주식은 물론이고, 해물 전채요리와 각종 케이크와 파이 등 후식까지 완벽히 구비되어 있다.
미국인들이 먹는 음식 가운데 전자레인지용 즉석음식으로 나와있지 않은 것들은 거의 없다. 햄버거, 스테이크, 닭튀김, 파스타, 라자냐, 볶음밥, 국수 등 주식은 물론이고, 해물 전채요리와 각종 케이크와 파이 등 후식까지 완벽히 구비되어 있다.강인규

삶이 바꾼 음식, 음식이 바꾼 삶

미국인들의 삶에서 냉동음식의 몫이 이처럼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전자레인지라는 발명품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TV 디너'의 역사는 전자레인지가 보급되기 전인 1950년대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미국 네브래스카의 '스완슨(C. A. Swanson & Sons)'이라는 식품회사가 오븐에 넣어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냉동음식을 내놓은 것이 시작이었다.

흔히 상품의 성공 원인을 기업가의 수완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기발한 상품도 특정 시대를 살아가는 문화구성원의 삶과 결합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음식의 혁명을 불러 온 이 냉동 즉석음식은 '맛'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이 형편 없는 음식이 미국의 삶 속에 파고든 것은 가정구조와 성역할 변화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는 핵가족이 가정의 기본구성요소가 되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비슷한 시기에 여성들의 고용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세계대전 당시 남자들의 참전으로 인해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미국의 재계와 정부는 여성들을 대거 육체노동의 현장으로 불러들였다.

페미니즘의 상징이 된 팔뚝 걷은 여성노동자의 모습('리벳공 로지 Rosie the Riveter')은 미국 기업 웨스팅하우스에서 여성 노동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선전용 포스터였다. 정부나 재계의 홍보가 아니어도 당시 여성들은 전시에 나름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여성 노동자들은 강철 공구에서 중장비를 다루는 일 등을 완벽하게 해냈다.

그 전까지 사회는 '요조숙녀'를 이상적 여성상으로 칭송했으나, 이제는 '여성노동자'를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남자들이 돌아오자 여성들은 다시 찬밥 신세가 되었다. 고용이나 임금에서 차별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비로소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 여성들에게 또 다시 '가정의 가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사회와 직장 모두에서 완벽한 역할을 요구받는 '슈퍼맘(super mom)'이 되었다. 이것은 즉석음식이 가정의 식탁을 파고 든 시점이기도 하다.
    
 1967년에 나온 가정용 '레이다레인지'. 군사용 레이다를 점검하던 한 연구원의 우연한 발견과 호기심이 가정구조의 변화와 결합해 미국의 음식문화를 바꾸어 놓았다.
1967년에 나온 가정용 '레이다레인지'. 군사용 레이다를 점검하던 한 연구원의 우연한 발견과 호기심이 가정구조의 변화와 결합해 미국의 음식문화를 바꾸어 놓았다.Amana

 왼쪽은 전시에 여성고용 촉진을 위해 사용된 선전 포스터로, 전후 페미니즘의 상징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백만명의 여성들이 기계와 공구, 중장비를 다루는 일을 맡았다. 포스터의 여성은 흔히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라 불리는데, 이것은 당시 유행하던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 왼쪽 사진은 포스터의 모델이 되었던 로즈 먼로로, 항공기 제조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다.
왼쪽은 전시에 여성고용 촉진을 위해 사용된 선전 포스터로, 전후 페미니즘의 상징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백만명의 여성들이 기계와 공구, 중장비를 다루는 일을 맡았다. 포스터의 여성은 흔히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라 불리는데, 이것은 당시 유행하던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 왼쪽 사진은 포스터의 모델이 되었던 로즈 먼로로, 항공기 제조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다.공개자료

텔레비전 시대의 '텔레비전 만찬'  

50년대는 여성들의 모순적 정체성을 요구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신기술의 시대이기도 했다. 신기한 발명품이 하루가 멀다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최초의 신용카드(다이너스)가 탄생했고, 비디오 녹화장치도 등장했으며, 먹는 피임약이 개발되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러시아는 최초의 우주선을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렸다.    

'TV 디너'는 이런 신기한 물건 가운데 하나였다. '과학적 진보'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은 '데우기만 하면 되는' 간편식에 대한 관심을 한층 더 북돋웠다. 게다가 1950년대는 텔레비전의 황금기였다. 'TV 디너'라는 이름에 텔레비전 수상기를 본뜬 포장을 한 상품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었다.

'TV 디너'를 '텔레비전을 보면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TV 디너'는 본래 스완슨의 상표명이었으며, 'TV'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텔레비전이라는 기계 자체가 폭발적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스완슨 식품의 경영인이었던 게리 토마스(Gerry Thomas)는 1999년 3월 21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솔직히 저희는 텔레비전을 살 형편도 못 됐어요. '티브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텔레비전이 인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 하면 뭔가 앞서가는 것 같고, 멋진 것 같았으니까요. 아마 요즘 발명되었으면 '디지털 디너'라고 부르지 않았을까요?"

물론 예나 지금이나 'TV 디너'를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식탁에 어떤 음식이 차려져 있더라도 텔레비전은 켜져 있기 마련 아닌가.

 1950년대에 판매된 스완슨 식품회사의 'TV 디너' 광고들. 포장 디자인은 '텔레비전 황금기'였던 1950년대답게 텔레비전 수상기를 본딴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게 한 이 상품은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와 더불어 큰 인기를 끌었다. 두 개의 광고 모두에 등장하는 벽시계와 정장차림에 식료품 봉투를 든 여성은 가정과 사회 어느 곳에서도 쉬기 어렵게 현대여성의 입장을 잘 말해준다. 왼쪽 광고 위 "나는 늦더라도 저녁은 늦지 않을거예요"라는 글귀가 보인다.
1950년대에 판매된 스완슨 식품회사의 'TV 디너' 광고들. 포장 디자인은 '텔레비전 황금기'였던 1950년대답게 텔레비전 수상기를 본딴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게 한 이 상품은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와 더불어 큰 인기를 끌었다. 두 개의 광고 모두에 등장하는 벽시계와 정장차림에 식료품 봉투를 든 여성은 가정과 사회 어느 곳에서도 쉬기 어렵게 현대여성의 입장을 잘 말해준다. 왼쪽 광고 위 "나는 늦더라도 저녁은 늦지 않을거예요"라는 글귀가 보인다.Swanson

레이다, 비행기 대신 닭을 요리하기 시작하다

1950년대는 전자레인지가 가정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전자레인지는 파장이 짧은 전파인 '마이크로웨이브(초단파)'를 음식에 쏘아 익히는 장치다. 초단파는 음식물에 든 수분, 지방, 당분 분자를 빠르게 진동시켜 음식 스스로 열을 내게 한다. 초단파를 쓰기 때문에 영어로는 전자레인지를 '마이크로웨이브 오븐(microwave oven)'이라 부른다.

본래 이 기술은 냉동닭이 아니라 적국의 비행기를 '요리'하는 데 쓰였다. 레이다는 초단파를 쏘아 먼 거리의 물체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전파를 분석하는 장치다. 이 탐지장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중요한 군사기술이었다. 초단파는 경찰의 속도계에도 사용되고, 많은 양의 정보를 멀리 송출하는 데도 효과적이어서 원거리통신이나 방송 등의 용도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이다 실험을 하던 연구원 한 명은 신기한 경험을 한다. 레이다 근처에서 작업을 하던 중 주머니 속의 초콜릿이 녹아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군수업체의 연구원이었던 퍼시 스펜서(Percy Spencer)였다. 이 장치로 팝콘도 튀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음식조리장치'로 1945년에 특허 신청을 낸다.

이렇게 해서 1947년에 탄생한 첫 제품의 이름은 (당연히) '레이다레인지(Radarange)'였다. 그가 처음 만든 전자렌지는 6척 장신에 무게는 300㎏이 넘었고, 가격은 당시 금액으로도 5000불에 달했다. 오늘날 화폐가치로 3500만원이 넘는 가격이었다. 이 괴물이 팔릴 리 없었다.

이 발명품은 개선에 개선을 거듭하며 덩치와 무게,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을 낮췄지만 소비자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생각해 보라. 아무리 신기술의 시대라지만, 1950년대에 '전파로 요리하는 장치'란 현재 기준으로는 '뇌파로 채팅하기' 수준의 이야기로 들렸을 것이다. 제조사를 '사기꾼 집단'으로 모는 이들도 있다.

제조사는 꾸준히 제품을 개선하면서 고객들에게 전자레인지의 편리함을 알려갔다. 주부들을 고용해 가정에서 직접 요리 시연회를 열었고, 전문가를 상시 대기시켜 고객들의 궁금증이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러자 1960년대 후반에 들어 판매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시기에 요리시간 단축은 매력적인 구매요소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자레인지용 'TV 디너'와 즉석팝콘 등의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70년대에는 절반 이상의 가정이 전자레인지를 갖게 되었고, 80년대 후반에는 냉장고보다 더 많이 팔리는 필수품이 되었다. 2007년에는 '자동차용 전자레인지'도 등장했다.

 '조리'가 끝난 'TV 디너'. 전자레인지의 보급은 음식 준비를 간단하고 쉽게 만들었지만, 비만이나 영양불균형 등의 문제점도 함께 가져다 주었다.
'조리'가 끝난 'TV 디너'. 전자레인지의 보급은 음식 준비를 간단하고 쉽게 만들었지만, 비만이나 영양불균형 등의 문제점도 함께 가져다 주었다.강인규

'남자라서 행복해요'?

반세기만에 전자레인지는 미국인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5대 발명품이 되었다. 하지만 과연 이 신기술이 미국인들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해 주었을까? 전자레인지 등 주방기구의 혁신이 여성들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켰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루스 코완(Ruth Cowan)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주방의 현대화가 해방시킨 것은 남성들과 자녀들이지 주부가 아니다.

조리기구가 현대화 되기 전, 요리는 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노동이었다. 남자들은 곡식을 찧고, 장작을 팼으며, 아이들은 음식재료를 준비하거나 요리과정에 일손을 보탰다. 그러나 주방에 신기술이 도입되면서 가사노동은 온전히 여성의 몫이 되었다. 주방기술은 '편리함'의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여성들을 가정과 사회 어디서도 쉬기 어렵게 만들었다. 1950년대 'TV 디너' 광고문구가 이 점을 잘 말해 준다.

"엄마는 늦더라도 저녁은 늦지 않을 거야."

그러나 남성이라고 꼭 전자레인지의 수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자레인지는 남자들의 여가만큼이나 뱃살도 크게 늘려 놓았기 때문이다.

2007년 6월 6일 BBC 보도에 따르면, 전자레인지 보급률과 비만증가율 사이에는 일정한 상관관계가 발견된다. 간단히 음식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더 쉽게 음식을 섭취하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완제품 형태의 즉석음식 가운데 다수는 냉동과정에서 일어나는 맛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더 많은 지방과 당분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몇년 전 미국 의학계는 전자레인지에 쓰이는 초극단파가 지방제거 수술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시술과정에서 흡입할 지방부위를 초극단파로 '데움'으로써 쉽게 몸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신기술은 1999년에 특허를 받았다. 미국 특허출원 5931807.
#전자레인지 #TV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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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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