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식품코너에서 고객이 즉석음식을 고르고 있다. 미국의 식료품점에서 팔리는 냉동음식들 다수는 전자레인지 하나로 조리가 가능하다. 진열대 위에 '주요리(entree)'와 '냉동야채' 등의 안내판이 보인다.
강인규
컴퓨터 없인 살아도 전자레인지 없인 못살아전자레인지가 없으면 곤란해지는 것은 일반 가정만이 아니다. 냉장 유리진열대에서 손님이 샌드위치를 고르면 점원이 '데워 드릴까요?' 하고 묻고 전자레인지 버튼을 누르는 것은 이제 미국 간이식당의 일상적인 모습이 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전자레인지에 대한 의존은 패스트푸드점을 포함해 거의 모든 식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손님 앞에서 쓰느냐, 주방에서 쓰느냐일 것이다. 대형 식당체인의 '요리'란 이미 조리된 상태에서 각 매장에 배달된 음식을 다시 데워주는 데 지나지 않으며, 이 과정에서 전자레인지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
전자레인지의 영향은 단순히 요리를 빠르고 간편하게 만들어 준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미국인들의 식생활 자체가 전자레인지를 중심으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어느 식료품점에 가더라도 대형 냉동식품 코너를 볼 수 있다. 그 곳에 진열된 냉동음식 대부분은 포장만 뜯어 전자레인지에 밀어넣기만 하면 된다.
전자레인지 버튼 하나로 끝나는 이 즉석 음식은 'TV디너(TV Dinners)'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미국인들이 먹는 음식 가운데 'TV 디너'로 나와있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해산물 전채요리에서, 육류 튀김, 찜, 구이 등의 주요리, 그리고 케이크와 과일파이 등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프랑스 요리는 물론, 최근에는 각종 '아시아식 별미'도 판매되고 있다.
그릇에 옮겨 담을 필요도 없고, 재료를 더하거나 소스를 뿌릴 필요도 없다. 물론 설거지도 필요 없다. 먹고 난 후 플라스틱 용기만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면 된다.
덕분에 미국에서는 일년 내내 요리 한 번 하지 않고 살 수 있다. 포장을 뜯고 전자레인지 문을 열고 닫는 것을 '요리'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검은 플라스틱 그릇에서 지글거리며 녹는 물질을 기꺼이 '음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2007년 한 해 동안 미국인들은 냉동식품을 사는 데 370억달러를 썼다. 미국 전체 식음료 시장의 12%에 달하는 막대한 액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