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용기에 박수 보냅니다

[取중眞담] 권력의 '비보도' 남발에 모르쇠 일관하는 기자들

등록 2008.11.19 17:39수정 2008.11.1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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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참여정부 말기에 정부부처 기자실 폐쇄를 놓고 언론계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는데, 권위주의 시대가 끝난 이후로 이명박정부만큼 '언론 통제' 논란으로 나라를 시끄럽게 만드는 정부가 있었는가 의심스럽습니다.

올 상반기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정부와 언론이 긴장 관계에 놓이더니 하반기 메뉴는 '대북 관계'와 '금융위기'로 바뀐 모양입니다.

정부가 현장 기자들의 반발에도 아랑곳 없이 KBS와 YTN 상층부를 장악하려고 할 때부터 '프레스 프렌들리(Press friendly)'라는 말이 허울 뿐이라는 것은 밝혀졌지만, 대통령과 정부의 비뚤어진 언론관은 갈수록 도를 더하는 느낌입니다.

문제는 이를 바로잡아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죠. 최근의 사례를 몇 가지 들겠습니다.

비뚤어진 언론관, 그래도 따라가는 언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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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PD와 기자들이 지난 11일 낮 여의도 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시사투나잇> <미디어포커스> 폐지 및 명칭변경에 반대하는 공동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조선일보>는 10월 31일자 경제부장 명의의 기사에서 "국익과 관련된 것은 언론이 (정권과) 친하고 안 친하고와 관계없이 협력해 주었으면 한다, 일부 보도를 보면 (나라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분명한 것은 지금은 주식을 살 때"라는 대통령의 언론사 경제부장단 오찬 발언을 보도했습니다.

언론에 대한 대통령의 불편한 심경이 공개된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던 <조선일보>가 메신저 역할을 했다는 게 다소 의아합니다.


그런데 언론사끼리 "보도자료로 공개된 내용만 기사로 내보내자"는 묵계가 있었나 봅니다. <조선>으로서는 비록 언론사의 신사협정을 깼지만, 이러한 묵계보다는 '언론사의 알 권리'가 더 크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12일 기자 총회를 열고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약속을 파기했다는 이유로 <조선>에 징계 결정을 내렸습니다. 기자단이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끝난 뒤에 구체적인 징계 수위를 결정한다고 하는데, 이들이 지난 8월 <오마이뉴스>에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오프더레코드를 깼다는 이유로 '2개월 출입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음을 주지시켜 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조선>이 징계받을 일은 아니라는 판단이지만, 기자단으로서는 <오마이뉴스>와의 형평성도 두루 고민해야겠죠. 과거처럼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싶은 청와대 기자단으로서는 곤혹스러운 결정이 될 것 같군요.

그러나 청와대 기자단이 아무리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려고 해도 대통령의 언론관을 의심케 하는 발언들이 여러 채널을 통해 밖으로 새어나가고 있습니다. 소수는 보도하고 대다수가 '모르쇠'로 넘어가는 현상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7일 정부 부처 대변인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왼쪽으로 치우친) 방송을 가운데 갖다놓으라'고 말했다"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전언을 소개한 <한겨레> 기사를 둘러싼 논란이 또 다른 예입니다.

신 차관은 14일 출입기자들과의 오찬자리에서 "대통령은 좋은 보도든 나쁜 보도든 따질 것 없이 정부가 방송에 일체 관여하지 말라면서, 다만 가운데만 갖다 놔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가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대통령 발언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해석을 한 것"이라고 번복했다고 합니다.

신 차관은 오프더레코드를 요청하고 문화부 출입기자단은 "보도를 하더라도 '정부 고위관계자'로 익명 처리하겠다"고 합의 했지만, 문제의 발언을 보도한 언론사는 없었습니다. <경향> 기자가 오찬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겨레> 기자만 이를 지키지 않아 신차관의 전언이 알려진 셈이죠.

지난 7월 23일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기자들과 즉석간담회를 가졌다. ⓒ 청와대


이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한 <한겨레>와 <조선>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주지하다시피 두 신문사는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가치관이 상반된 언론사들입니다. 그럼에도 두 신문사 모두 '오프더레코드' 논란에 휘말린 것은 예사로운 현상으로 볼 수 없습니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권력의 언론 통제는 매체의 성향과 상관없이 무자비하게 진행되는 반면, 대다수 기자들은 정부 관계자와의 인간적 정리에 이끌려 스스로 '알 권리'를 뭉개는 우를 범하는 게 아닐까요?

후보 시절 그대로, 이 대통령의 언론 버릇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 중인 16일(현지 기준) 주미 특파원단과 오찬 간담회에서 특정언론사를 거론하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일도 있었습니다.

원래 이 간담회는 대통령의 모두발언과 특파원 5명의 질문을 받는 것으로 '사전 각본'이 만들어졌지만, 예상외의 질문이 쏟아져 대통령도 준비되지 않은 발언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부정적인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선거 때는 무슨 말을 못하겠냐"고 말했다가 "그러면 대운하도 같은 차원이냐"는 또 다른 질문에 대통령이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 걸 보면 그렇습니다.

'주미 특파원'이라는 자리는 언론사 선임기자가 간부가 되기 전에 맡습니다. 춘추관 기자실에 계속 머물며 권력 핵심부로부터 정보를 빼내야 하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처지와도 다릅니다. 십수년 동안 별의별 취재원을 상대해온 고참 기자들이 어쩌다 한 번 보는 대통령을 봐주지 않는 게 당연할지 모릅니다.

<경향신문> 김진호 특파원은 대통령에게 "최근 북한의 군사분계선 제한·차단 발표에 대해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말했고, '필요하다면 임기 중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여러 번 만날 용의가 있다'는 말도 했는데 둘 중 어느 쪽이 정부의 대북정책이냐?"고 물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그게) <경향신문>의 뜻인지, 국민의 뜻인지 약간의 혼선이 있다"며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것, 핵없이 통일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이라는 '모범 답안'을 내놓았습니다.

김 특파원이 18일자 신문에 쓴 것처럼 한반도 비핵화와 통일은 굳이 대통령이 확인해주지 않아도 될 목적지이고 문제는 어떻게 가느냐는 것인데, 대통령은 답을 내놓지 않고 엉뚱하게 특정신문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셈입니다.

김 특파원은 "땡전 뉴스'가 그리우시냐"고 비꼬았습니다. 나쁘게 해석하면, 자신의 질문에 불성실한 답변을 한 취재원에게 <경향> 기자가 지면을 통해 분풀이를 한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경향>을 제외한 언론사들은 이 일이 대통령과 <경향>의 문제라고 생각했는지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인터뷰 답변을 한 취재원이 대통령이 아니라면 다른 언론들이 모른 체 했을까요?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조금이라도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그런 유치한 질문하지 마라"며 기자들을 무안하게 만들곤 했는데 그 시절의 버릇을 아직도 못 고친 듯 합니다.

그럼에도 오만한 권력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 수 있는 존재는 깨어있는 언론이라고 믿습니다.

3년 전 제도권 언론들은 '황우석'이라는 과학계의 권력에 놀아나 조작된 논문의 진실을 밝히려는 공익 제보자들을 오히려 곤경에 빠뜨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처럼 언론이 권력에 코드를 맞추려다가 독자들의 믿음을 잃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이명박 #한겨레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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