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유선(乳腺)
.. 안드류슈카의 유선(乳腺)에 염증이 생겼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측은하다 .. 《타르코프스키/김창우 옮김-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두레,1997) 35쪽
“염증(炎症)이 생기는” 일은 무엇을 가리키나 생각해 봅니다. ‘부어오르기’? ‘붓기’? 어떤 ‘말썽’? ‘측은(惻隱)하다’는 ‘가엾다’나 ‘불쌍하다’나 ‘딱하다’나 ‘안됐다’로 고쳐 줍니다.
┌ 유선(乳腺) = 젖샘
│
├ 안드류슈카의 유선(乳腺)에
│→ 안드류슈카한테 젖샘에
│→ 안드류슈카가 젖샘에
└ …
‘유선’이라고 적으면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적어 넣게 됩니다. 그런데 ‘乳腺’이라고 적은 한자는 알아볼 만한지요. 뜻이나 느낌이 잘 와닿는지요.
어쩌면 ‘젖샘’이라는 우리 말도 어디를 가리키는가를 못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차라리 “젖꼭지 안쪽”이라고 해야 알아들을는지 모릅니다.
┌ 안드류슈카는 젖샘이 부어올랐다
└ 안드류슈카는 젖샘이 부어서 몹시 아파한다
몸이 아픈 모습을 가리킬 때에는 왜 아픈지,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아픈지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 주면 좋겠습니다. 이래저래 겉치레 말을 붙이기보다는, 알맹이를 잘 읽어낼 수 있는 말로 담아내면 좋겠습니다.
ㄴ. 파설초(破雪草)
.. 눈을 헤치고 꽃이 핀다고 해서 파설초破雪草라 부르는 노루귀 .. 《이태수-숲속 그늘 자리》(고인돌,2008) 116쪽
우리 나라 산자락이면 어디에나 흔하게 자라는 풀 가운데 ‘노루귀’가 있습니다. 이파리가 오므리고 돋을 때 노루귀를 닮았다고 해서 ‘노루귀’입니다. 그런데 이 풀을 가리켜 ‘파설초’라고도 한다는군요.
┌ 파설초(破雪草) : x
└ 노루귀 :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
눈을 헤치며 꽃이 핀다고 해서 ‘파설초’라고 한다니, ‘헤칠 破 + 눈 雪 + 풀 草’로 엮어서 ‘破雪草’구나 싶습니다.
┌ 破 + 雪 + 草 = 破雪草
└ 눈 + 헤치다 + 꽃 = 눈헤침꽃
그런데, 눈을 헤치면서 피어나는 꽃이면 ‘눈헤침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눈을 헤치니까 ‘눈헤침’이라 하고, 눈을 헤치며 꽃이 피었으니 ‘눈헤침꽃’입니다.
― 눈을 헤치고 꽃이 핀다고 해서 눈헤침꽃이라고도 하는 노루귀
‘노루귀’라는 풀이름이 꽃생김을 보고서 지은 만큼, 눈을 헤치며 피는 꽃 매무새를 보고서 붙이는 이름이라 할 때에도, 이 모습 그대로 이름을 붙일 때가 가장 알맞다고 느낍니다.
ㄷ. 정상(頂上)
.. 그래서 인민은, 아니 인간은 세계 이곳저곳에서 머리 위에 덮쳐 있는 정상(頂上)을 제거하는 데모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신동엽-젊은 시인의 사랑》(실천문학사,1988) 165쪽
‘제거(除去)하는’은 ‘없애는’이나 ‘떨구는’으로 다듬고, “하고 있는 것이다”는 “하고 있다”로 다듬습니다. ‘인민(人民)’과 ‘인간(人間)’은 글흐름으로 볼 때 그대로 둘 수 있으나, 뒤쪽 ‘인간’은 ‘사람’으로 고치면 어떨까 싶습니다.
┌ 정상(頂上)
│ (1) 산 따위의 맨 꼭대기
│ - 지리산의 정상 / 산 정상에 자리 잡은 관측소 / 정상에서 내려오다
│ (2) 그 이상 더없는 최고의 상태
│ - 인기 정상의 가수 / 정상 다툼을 벌이다 / 정상에 등극하다
│ (3) 한 나라의 최고 수뇌
│ - 정상들이 회담을 갖기로 하였다
│
├ 머리 위에 덮쳐 있는 정상(頂上)
│→ 머리 위에 덮쳐 있는 지도자
│→ 머리 위에 덮쳐 있는 우두머리
└ …
한자로 ‘頂上’이라고 적는 ‘정상’은, 한 나라를 이끄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끄는 사람은 한자말로 하면 ‘지도자(指導者)’이고, 토박이말로 하면 ‘이끔이’입니다. 또는 ‘우두머리’라 할 수 있어요.
산에서 맨 꼭대기를 가리키는 ‘정상’은 그냥 ‘꼭대기’일 뿐입니다. 그보다 더 높을 수 없는 가장 높음은 ‘으뜸’이나 ‘하늘(을 찌름)’입니다.
┌ 지리산의 정상 → 지리산 꼭대기
└ 인기 정상의 가수 →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가수
‘정상’이라는 낱말이 우리가 넉넉히 쓸 만하다면 널리 쓸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정상’ 같은 낱말을 굳이 안 써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우두머리’로 쓸 자리에 ‘정상’을 쓰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자리에서도 ‘꼭대기’나 ‘으뜸’이나 ‘하늘’이나 ‘첫 손가락’ 같은 낱말을 넣어 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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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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