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56)

― ‘제2의 고향이 아니라 제1의 고향이라고’ 다듬기

등록 2009.02.07 19:49수정 2009.02.0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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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고향

 

.. 지금은 야사카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더 강하게 야사카를 가깝게 느끼고, 제2의 고향이 아니라 제1의 고향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  《고쿠분 히로코/손성애 옮김-산촌유학》(이후,2008) 226쪽

 

 “더 강(强)하게”는 “더욱더”로 손봅니다. “좋을 정도(程度)입니다”는 “좋다고 느낍니다”나 “좋습니다”로 손질합니다. ‘친근(親近)하게’라 하지 않고 ‘가깝게’라 적은 대목과 ‘방문(訪問)하지’라 않고 ‘찾지’라 적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 제이 : x

 │

 ├ 제2의 고향이 아니라 제1의 고향이라고

 │→ 두 번째 고향이 아니라 첫 번째 고향이라고

 │→ 둘째가는 고향이 아니라 첫째가는 고향이라고

 │→ 버금가는 고향이 아니라 으뜸가는 고향이라고

 │→ 또다른 고향이 아니라 나고 자란 고향이라고

 └ …

 

 예부터 인천은 부산 다음 가는 항구라고들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나 동네에서나 “인천은 제2의 항구”라는 소리를 어렵잖이 들었습니다. 첫째가 아닌 둘째라는 소리였으나, “인천은 둘째가는 항구”라고는 생각하거나 말하지 못하고, 언제나 어른들이 말하는 그대로 “인천은 제2의 항구”라고만 말하고 글쓰고 하면서 지냈습니다.

 

 나이가 들고 머리가 깨고 철이 들 무렵부터, ‘제2의’라는 꾸밈말이 거슬리게 됩니다. 두 번째면 ‘두 번째’이고, 둘째이면 ‘둘째’이지, 왜 ‘제2의’라고 하는가 궁금했고, 둘째이든 첫째이든 그다지 눈길 둘 일이 아닐 텐데, 자꾸 이런 꾸밈말에 마음을 빼앗기니 스스로를 깎아내리거나 스스로 움츠러들기도 하는 한편, 첫째가는 다른 쪽을 좇아가느라 우리다운 모습을 잃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면 어떻고 셋째면 어떻고 넷째면 어떠하며, 꼴찌면 또 어떻습니까. 이곳은 이곳답게 살찌우면 되고, 저곳은 저곳대로 북돋우면 됩니다.

 

 ┌ 제2의 항구

 │

 ├ 두 번째 항구

 ├ 둘째가는 항구

 ├ 버금가는 항구

 └ …

 

 돌이켜보면, 있는 모습 그대로 말하지 않고 자꾸자꾸 스스로를 올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큰 우리들이었기에, 우리가 늘 쓰는 말 또한 있는 모습 그대로 가꾸지 못하지 않았으랴 생각합니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즐기면서 키우면 됩니다.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즐기면서 북돋우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 말과 글에서 모자란 대목을 차근차근 채우고 손질하면서 키우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우리 말과 글에서 넉넉한 대목을 일으키고 보듬으면서 북돋우지 않았습니다.

 

 우리 나름대로 키우거나 북돋울 대목을 놓치거나 못 보았습니다. 어른은 어른대로 못 보거나 놓치면서 아이들한테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거나 엉터리로 물려주었습니다. 아무리 어린이가 어른한테 스승이라 할지라도, 말이며 매무새며 삶이며 어른을 따르거나 좇게 되기 마련입니다. 말투와 말씨도 어른한테 배우거나 따르게 됩니다. 어른들 말투와 말씨가 아름답다면 아이들 말투와 말씨도 아름답겠지만, 어른들 말투와 말씨가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 말투와 말씨도 아름답지 못하고 맙니다.

 

 요 열 몇 해 사이, 인터넷이 발돋움하면서 ‘젊거나 어린 사람들 말매무새가 걱정’이라고 하는 어른들이 많은데, 젊거나 어린 사람들 말매무새를 걱정하기 앞서, ‘어른들 말매무새를 걱정’할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이와 어린이한테 말을 가르치거나 물려줄 어른들이 어떤 말을 쓰고 어떻게 말을 하는지 돌아보아야지요. 어른들이 우리 말과 글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지요. 어른들이 우리 말과 글을 어떻게 무너뜨리거나 흔들고 있는지 깨달아야지요.

 

 ┌ 제2외국어

 ├ 제2의 외국어

 │

 ├ 두 번째 외국어

 ├ 또다른 바깥말

 └ …

 

 나라밖 사람들이 한국말을 깎아내리는 일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라안 사람들, 바로 우리들이 우리 말을 깎아내리는 일은 참으로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늘 봅니다. 어디에서나 봅니다. 길을 거닐면서도 보고, 책을 읽으면서도 보고, 셈틀을 켜고 인터넷에 들어가면서도 봅니다. 신문을 펼쳐도 보고, 길거리에 켜져 있는 텔레비전을 기웃거리면서도 봅니다.

 

 제아무리 우리 삶터에서 한자가 크다고 할지라도, 제아무리 지구 삶터에서 영어가 크다고 할지라도, 우리들은 우리 삶터에서 어떤 말을 어떤 사람과 어떻게 주고받아야 하는가를 먼저 제대로 되새기면서 바탕을 다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사람이 한국말도 못하면서 한자를 잘 쓰고 영어를 잘하면 그만인가요. 한국말은 못하면서 영어만 잘하니, 그렇게도 번역책이 엉터리가 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국말은 눈길을 안 두고 한자만 우격다짐으로 외우게 하니, 토박이말로는 새말을 지을 줄 모르고 한자로만 새말짓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 얼로 바라보고, 제 넋으로 부대끼며, 제 마음으로 함께하고, 제 몸으로 치러야 하는 우리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남 얼이나 남 넋이 아니라, 남 마음이나 남 몸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몸뚱이와 온마음으로 꾸려야 할 삶이라고 봅니다. 사람이 사람됨을 갖추어야 비로소 무슨 일이든 놀이이든 하지, 사람이 사람됨을 갖추지 않고서 무슨 학문을 하고 믿음을 닦고 사랑을 나누겠습니까. 생각을 나누는 말을 제 몸을 뿌리내리고 있는 자리에 맞추어서 보듬지 않고서 우리가 무슨 뜻과 이야기를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2009.02.07 19:49ⓒ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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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의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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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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