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쓴 겹말 손질 (53) 엄청난 거액

[우리 말에 마음쓰기 545] ‘꾸밈없음-티없음-맑음’과 ‘순정-순수’

등록 2009.02.08 10:11수정 2009.02.0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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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엄청난 거액

 

.. 그러나 나에게만은 예외로 1백 원의 출연료를 주었다. 쌀 한 가마니에 6원 하던 시절이니까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거액이었다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1)》(중앙일보사,1973) 64쪽

 

 ‘예외(例外)로’는 그대로 두어도 괜찮지만 ‘따로’로 다듬으면 한결 낫습니다. “1백 원의 출연료”는 “출연료 1백 원”이나 “1백 원이나 되는 출연료”로 손질하고, ‘시절(時節)’은 ‘때’로 손질합니다.

 

 ┌ 거액(巨額) : 아주 많은 액수의 돈

 │   - 거액을 제시하다 / 거액의 계약금을 받다

 │

 ├ 엄청난 거액이었다

 │→ 엄청난 돈이었다

 │→ 엄청나게 많은 돈이었다

 │→ 엄청나게 큰 돈이었다

 └ …

 

 ‘아주 많은’ 돈을 가리키는 한자말 ‘거액’입니다. 그러니, 이 낱말 앞에 ‘엄청난’을 붙이면 겹말이 돼요. 그냥 ‘거액’이라고만 하든지 ‘엄청난 돈’이라고 해야지요. ‘엄청나게’를 꾸밈말로 삼아 “엄청나게 많은 돈”이나 “엄청나게 큰 돈”으로 적어도 괜찮습니다.

 

 ┌ 거액을 제시하다 → 큰돈을 내놓다 / 큰돈을 부르다

 └ 거액의 계약금 → 엄청난 계약금 / 엄청나게 많은 계약금

 

 어쩌면, ‘거액’이 ‘큰돈’을 가리키는지 모르지 않으랴 싶습니다. 또는 ‘거액 = 큰돈’이지만, 여느 큰돈이 아니라 대단히 커다란 돈이라는 뜻을 나타내고자 이처럼 적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아주 많다’라는 말부터 ‘여느 큰돈’이 아님을 가리킵니다. 이런 여느 큰돈조차 아닐 만큼 아주아주 큰돈이면, 말 그대로 “아주아주 큰돈”이라 하거나 “놀랄 만큼 큰돈”이나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큰돈”이나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큰돈”이라 해 볼 수 있습니다.

 

ㄴ. 꾸밈없이 순정으로

 

.. 가을바람에 가녀린 몸 살랑대며 세상살이에 어지러운 나에게 꾸밈없이 살라 순정으로 살라 합니다 ..  《이태수-자연이 예술을 품다, 숲속 그늘 자리》(고인돌,2008) 68쪽

 

 봄에 불면 ‘봄바람’이고, 여름에 불면 ‘여름바람’입니다. 가을에 부니 ‘가을바람’일 테지요. ‘추풍(秋風)’이 아닙니다. 그러나, 적잖은 분들은 ‘추풍낙엽’ 같은 말을 곧잘 씁니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잎’이나 ‘가을철 가랑잎’이라고는 하지 않고.

 

 ┌ 순정(純情) : 순수한 감정이나 애정

 │   - 순정을 바쳐 사랑하다 / 그는 그녀의 어린아이와 같은 순정에 감동했다

 ├ 순수(純粹)

 │  (1) 전혀 다른 것이 섞이지 아니함

 │   - 순수 성분 / 순수 결정체

 │  (2)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

 │   -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를 지녔다

 │

 ├ 꾸밈없이 살라 순정으로 살라

 │→ 꾸밈없이 살라

 │→ 꾸밈없이 살라 깨끗하게 살라

 │→ 꾸밈없이 살라 거짓없이 살라

 │→ 꾸밈없이 살라 맑게 살라

 └ …

 

 국어사전에서 ‘순정’을 찾아봅니다. ‘순수’를 찾아보도록 풀이가 되어 있습니다. ‘순수’를 찾아봅니다.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음”을, “나쁜 마음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다른 것이 섞이지 않거나 나쁜 마음이 없는 모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이런 모습을 가리키는 우리 말은 없는지 궁금해집니다. ‘맑다’, ‘티없다­’, ‘꾸밈없다’ 같은 말이 하나둘 떠오릅니다. ‘해맑다’나 ‘맑디맑다’나 ‘깨끗하다’나 ‘말끔하다’나 ‘깨끔하다’ 같은 말도 찬찬히 떠오릅니다.

 

 보기글에 나오는 ‘순정’과 함께 ‘꾸밈없이’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생각해 봅니다. 참말, ‘꾸밈없이’는 무엇을 말할까요. 어떤 모습을 가리킬까요. 국어사전에서 ‘꾸밈없다’를 찾아봅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로는 “참되고 순수함”이 ‘꾸밈없음’이라고 나옵니다.

 

 ┌ 세상살이에 어지러운 나한테 꾸밈없이 살라 합니다

 ├ 세상살이에 어지러운 나보고 맑게 살라 합니다

 ├ 세상살이에 어지러운 나를 보며 깨끗하게 살라 합니다

 ├ 세상살이에 어지러운 나를 잊고 해맑게 살라 합니다

 └ …

 

 삶도 꾸밈없이입니다. 생각도 꾸밈없이입니다. 말도 꾸밈없이입니다. 일도 놀이도 꾸밈없이입니다. 있는 그대로입니다. 깨끗하게입니다. 티없이입니다. 거짓없이입니다. 참되게입니다. 맑게입니다. 맑디맑거나 해맑게입니다.

 

 꾸밈없지 못해서 꾸밈없이 살고픈 마음을 힘주어 나타내고 싶었다면, “꾸밈없이, 그야말로 꾸밈없이”라 적으면 됩니다. 또는, “꾸밈없이 해맑게”라 적거나 “꾸밈없이 깨끗하게 싱그러이”라 적어 줍니다. “꾸밈없이 맑게 곱게 티없이”라 적어 보아도 잘 어울립니다.

 

 삶을 맑게 추스르면 말 또한 맑아지고, 삶을 곱게 다스리면 말 또한 고와지며, 삶을 싱그러이 다독이면 말 또한 싱그러워집니다. 우리 스스로 삶을 어떻게 돌보거나 보듬느냐에 따라 말이 달라지고 생각이 바뀌며 매무새가 남다르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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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8 10:11ⓒ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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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중복표현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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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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