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62) 쇼

[우리 말에 마음쓰기 555] '별 쇼를 다 했다 안 합니꺼', 북쇼, 디너쇼

등록 2009.02.18 10:40수정 2009.02.1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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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show)

 

.. “내가 열 살 무렵부터 병이 나서 별 쇼를 다 했다 안 합니꺼.” ..  <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삼인, 2008) 129쪽

 

‘별(別)’은 ‘온갖’이나 ‘갖은’으로 손질해 줍니다.

 

 ┌ 쇼(show)

 │  (1) 보이거나 보도록 늘어놓는 일. 또는 그런 구경거리

 │   - 갑자기 구두가 벗겨지는 바람에 한바탕 쇼가 벌어졌다

 │  (2) 춤과 노래 따위를 엮어 무대에 올리는 오락

 │   - 쇼 공연 / 쇼를 보다 / 저희 쇼를 관람해 주신

 │  (3) 일부러 꾸미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그들의 행동이 전연 쇼 같지가 않아 / 이번만큼은 쇼가 아니라며

 │

 ├ 별 쇼를

 │→ 온갖 짓을

 │→ 온갖 일을

 │→ 갖은 지랄을

 │→ 이것저것

 │→ 이 일 저 일

 └ …

 

학교 문턱을 제대로 밟아 보지 못한 분들이 ‘쇼’라는 영어를 알 턱이 없습니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어느 결에 ‘쇼’라는 영어를 알게 되고, 예전 같으면 ‘짓-지랄-짓거리’라 했을 자리에 ‘쇼’를 읊게 됩니다.

 

 ┌ 한바탕 쇼가 벌어졌다 → 한바탕 구경거리가 벌어졌다 / 한바탕 법석을 떨었다

 ├ 쇼 공연 → 무대 공연

 ├ 쇼를 보다 → 공연을 보다 / 놀이잔치를 보다 / 노래잔치를 보다 / …

 ├ 전연 쇼 같지가 않아 → 조금도 장난 같지가 않아

 └ 쇼가 아니라며 → 거짓말이 아니라며 / 꾸민 일이 아니라며

 

지난 2008년부터인지 아니면 더 예전부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경기도 파주에 있는 ‘책마을’을 두고 누군가 ‘북시티(bookcity)’로 이름을 고쳐썼습니다. 파주에서 일하시는 분들 스스로 ‘책마을’이라는 이름을 내팽개치고 ‘북시티’라 하셨는지, 아니면 언론사 기자들이 이런 이름을 붙여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책마을’ 아닌 ‘북시티’라는 이름이 차츰 쓰이면서 ‘책잔치’라는 말은 아예 둥지를 틀지 못하고 ‘북쇼(bookshow)’라는 말이 새롭게 나타납니다.

 

책으로 무슨 ‘쇼’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책이 아닌 ‘북’을 말하고, 잔치가 아닌 ‘쇼’를 말하니, 또한 우리 말로 생각하기보다는 영어로 생각하고자 하니까, 우리 나라 곳곳에는 ‘한글마을’은 생기지 않고 ‘잉글리쉬 타운’이 수백억 원을 들여 세워지게 됩니다. 이제는 ‘영어마을’조차 아닌 ‘잉글리쉬 타운’이라고 말합니다.

 

 ┌ 내가 열 살 무렵부터 아파서 갖은 지랄을 다 했다 안 합니꺼

 └ 내가 열 살 무렵부터 아파서 안 해 본 짓이 없다 아닙니꺼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알맞춤하게 쓰고자 애쓰지 않습니다. 나라에서도 우리들이 우리 말을 올바르게 쓰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교사와 부모는 아이들이 우리 말을 알뜰살뜰 익히고 배우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 말을 배우고 헤아리는 데에는 아주 어릴 적 한글 떼기만 하면 그만으로 여기고, 그 뒤로는 어느 한 번도 제대로 우리 말과 글을 익히게끔 이끌지 않습니다.

 

우리 말을 올바르고 알맞춤하고 제대로 배우는 일이란, 우리 스스로 우리 생각을 올바르고 알맞춤하고 제대로 가눌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우리 생각을 올바르고 알맞춤하고 제대로 가누도록 하는 일이란, 우리 삶을 올바르고 알맞춤하면서 제대로 꾸리도록 다스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우리 삶을 올바르게 다스린다면, 알맞춤하게 꾸린다면, 제대로 북돋운다면 어찌 될까요. 우리 삶터와 마을과 나라가 한껏 거듭날 테지요. 달라질 테지요. 온갖 검은 셈속이 사라지고 갖가지 더러운 짓이 쫓겨나며 돈벌레 짓거리는 자리잡을 수 없을 테고요. 거짓말 일삼는 정치꾼은 뿌리내릴 수 없고, 뒷돈 챙기는 쇠밥그릇 공무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말다운 말을 쓰는 일은 생각다운 생각을 하며 삶다운 삶을 꾸리는 일하고 차근차근 이어지기에, 나라를 주무르는 이들로서는 우리들이 말다운 말을 쓰기를 안 바랄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제 얼과 넋을 내어주기를 바라고, 스스로 나라밖 물질문명에 넋이 나가기를 바라며, 스스로 제 삶터를 사랑하지 않고 돌아보지 못하기를 바랍니다.

 

 ┌ 저녁잔치

 └ 디너쇼(dinner show)

 

그렇지만, 우리들은 “나훈아와 함께”나 “나훈아 잔치”나 “나훈아 노래잔치”나 “나훈아와 저녁을”을 하지 않고 “나훈아 쇼”만 합니다. ‘노래잔치’라 하면 어설프거나 멋이 안 난다고 생각하지만, ‘뮤직쇼(music show)’라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멋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온갖 잔치’나 ‘놀이 한마당’이나 ‘놀이 큰잔치’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 가운데 ‘버라이어티쇼(variety show)’만 꾀하고 펼치고 즐깁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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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8 10:40ⓒ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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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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