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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에 마음쓰기 558] ‘통찰의 길을 제공’, ‘안락한 집을 제공’ 다듬기

등록 2009.02.21 14:36수정 2009.02.2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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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통찰의 길을 제공하고

 

.. 그 생각 안으로 들어가는 독특한 통찰의 길을 제공하고 있다 ..  <앨런 이에이라-영혼의 부족 코기를 찾아서>(샨티,2006) 17쪽

 

 “생각 안으로”는 “생각으로”로 고쳐 줍니다. ‘독특(獨特)한’은 ‘남다른’으로 다듬고, “통찰(洞察)의 길”은 “통찰하는 길”이나 “꿰뚫어보는 눈길”이나 “슬기로운 눈길”로 다듬습니다. 그나저나, “그 생각 안으로 들어가는 독특한 통찰의 길”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합니다. 참으로 아리송합니다.

 

 ┌ 제공(制空) : 공중에서 적을 제압하는 일

 ├ 제공(祭供) : 제사에 이바지함. 또는 그런 물건

 ├ 제공(提公) : 신라 때에, 나이에 따라 구분한 남자의 등급 가운데 하나

 ├ 제공(提供) : 갖다 주어 이바지함

 │   - 숙식 제공 / 자료 제공 / 정보 제공 /

 │     선거 기간에는 금품 및 향응 제공이 법으로 금지되고 있다

 ├ 제공(提?/諸貢) : 첨차와 살미가 층층이 짜여진 공포

 ├ 제공(提控) : 고려 시대에, 연경궁 제거사에 속한 정칠품 벼슬

 ├ 제공(諸公) = 제위(諸位)

 │

 ├ 통찰의 길을 제공하고 있다

 │→ 꿰뚫어보는 눈길이 되어 준다

 │→ 꿰뚫어볼 수 있게 하고 있다

 │→ 꿰뚫는 데에 도움이 된다

 │→ 꿰뚫어보는 슬기를 일러 준다

 └ …

 

사람과 사회와 나라 모두 어떤 틀에 매여 있습니다. 학교와 집과 마을 또한 어떤 쇠사슬에 얽혀 있습니다. 홀가분하게 어울리거나 느긋하게 어깨동무하는 일이 드뭅니다. 반드시 나아가야 한다는 길이 따로 있고, 이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따돌림을 받거나 푸대접을 받거나 시달리게 됩니다. 모든 아이들이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가도록 되어 있는데, 초등학교에 들기 앞서 어린이집을 다니며 영어와 한글을 익히게끔 짜이고, 대학교에서 학문을 하기보다는 곧 나아갈 회사 일꾼으로 잘 부려지도록 길듭니다.

 

머리속에 지식을 넣지 않는 다른 때에는 인터넷과 텔레비전이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앞날을 내다보며 똑같은 모양새가 나아가도록 손을 잡아끕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흐름이 마찬가지이고, 서로 어울리며 노는 매무새도 매한가지입니다. 바라보는 눈길이나 품는 생각이나 키우는 슬기 가운데 어느 하나에서도 다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결같음이 아닌 틀에 박힘이고, 꾸준함이 아닌 판에 박힘입니다.

 

삶이 틀에 박히고 매무새가 판에 박히면서, 저절로 생각이 틀에 박히고 얼이 판에 박힙니다. 생각과 얼이 꽁꽁 갇혀 버리니 생각과 얼을 담는 그릇인 말과 글도 꽁꽁 얼어붙습니다. 차갑게 얼어붙습니다. 거칠고 사납게 얼어붙습니다. 딱딱하고 메마른 모습으로 얼어붙습니다.

 

 ┌ 숙식 제공 → 밥과 잠자리 줌 / 집과 밥 줌

 ├ 자료 제공 → 자료 줌 / 자료 댐

 └ 금품 및 향응 제공이 → 돈이나 밥 주는 일이 / 돈이나 밥 건네기가

 

 누구나 살아 있는 사람이니, 누구나 살아 있는 말을 써야 올바릅니다. 누구나 ‘내 삶’을 꾸리니 어느 누구이든 ‘내 말’이라 할 만한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나 ‘내 말’이라 할 만한 말을 하고 ‘내 글’이라 할 만한 글을 쓰고 있을까요. 말을 들으면서 ‘아무개 말투로군’ 하고 느낄 수 있습니까.

 

글을 읽으면서 ‘아무개가 쓴 글이로군’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지요. 판에 박힌 삶이라 판에 박힌 말만 쏟아지니, 말에서 새삼스러움과 싱그러움과 해맑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틀에 박힌 매무새라 틀에 박힌 글만 넘쳐나니, 글에서 새로움과 싱싱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는데 우리 모습을 못 느낍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어지럽히고 있는데 우리 삶을 안 느낍니다.

 

 ┌ 그렇게 생각하도록 우리를 남달리 이끄는 슬기로움을 베풀어 준다

 ├ 그렇게 생각하도록 이끄는 남다른 슬기로움을 베풀어 준다

 ├ 그 생각과 하나가 되는 남다른 슬기로움을 보여준다

 ├ 그 생각으로 녹아들 새로운 슬기로움을 보여준다

 └ …

 

 옆지기가 중학생 되는 처남한테 전화로 “야, 너, 교복값도 비싼데 아껴서 잘 입은 다음에 졸업할 때 후배한테 잘 물려줘” 하고 이야기합니다. 어린 처남은 싫다고 말합니다. 나중에 어떻게 마음을 바꿀지 그대로 갈는지 모릅니다만, 수십만 원에 이르는 비싼 학교옷은 졸업식 때 찢어지고 망가지고 튿어집니다. 그러나 졸업식을 맞이하기 앞서 다 엉망이 됩니다.

 

 아이들이 입는 ‘내 옷’도 그렇게 막 다루면서 입을지 궁금합니다. ‘아껴입을 내 옷’보다 훨씬 비싸기도 한 학교옷이 고작 세 해쯤 입혀지고 쓰레기로 버려지게 되는데 아이들 스스로 이런 흐름과 얼개를 얼마나 살피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니,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이 이처럼 생각하도록 길들어 놓지 않았을까요. 아이들이 슬기롭게 생각하고 남다르게 세상을 꿰뚫어보게끔 알차고 훌륭하게 이끌지 못한 탓에 이리 되지 않았을까요. 이러는 동안 시나브로 삶다운 삶을 놓치고, 으레 말다운 말을 버리며 글다운 글은 느끼지 못하는 무덤덤이가 되어 버리지는 않을까요.

 

 

ㄴ. 안락한 집을 제공한다

 

.. 띠, 갯방풍, 모래지치 등 갯가식물은 새들에게 풍부한 먹을거리와 안락한 집을 제공한다 ..  <홍선욱,심원준-바다로 간 플라스틱>(지성사,2008) 16쪽

 

 ‘등(等)’은 ‘같은’으로 다듬습니다. ‘갯가식물(-植物)’은 그대로 두어도 되나, ‘갯가풀’로 손볼 수 있습니다. ‘풍부(豊富)한’은 ‘푸짐한’이나 ‘넘치는’으로 손질하고, ‘안락(安樂)한’은 ‘넉넉한’이나 ‘따뜻한’이나 ‘포근한’으로 손질해 봅니다.

 

 ┌ 안락한 집을 제공한다

 │

 │→ 넉넉한 집이 된다

 │→ 포근한 집이 되어 준다

 │→ 따뜻한 집을 선사한다

 │→ 좋은 집을 베풀어 준다

 └ …

 

 선물을 줍니다. 선물을 받습니다. 책을 줍니다. 책을 받습니다. 돈을 줍니다. 돈을 받습니다. 마음을 줍니다. 마음을 받습니다. 주는 손길에 따라 받는 손길이 있고, 주는 사랑에 따라 받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사랑을 애틋하게 빨아먹으면서 스스럼없이 이웃한테 사랑을 펼치게 됩니다. 믿음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믿음을 곱다시 받아들이면서 저절로 둘레에 믿음을 보이게 됩니다. 나눔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나눔을 아름답게 곱새기면서 시나브로 동무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맑은 말을 듣고 고운 글을 읽으면서 자란 아이들 마음자리에는 맑은 말과 고운 글이 깃듭니다. 어릴 적부터 온갖 지식부스러기와 돈타령을 듣고 자란 아이들 마음밭에는 지식부스러기와 돈타령이 맴돕니다.

 

 ┌ 새들한테 넉넉한 먹을거리와 포근한 집이 된다

 ├ 새들한테 푸짐한 먹을거리와 따순 집이 된다

 ├ 새들한테 좋은 밥과 집이 된다

 └ …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고 나누고 함께하거나 베풀는지는 우리 어른들 스스로 헤아릴 노릇입니다. 아이들한테 물려주기 앞서 우리 어른들이 우리 삶을 어떻게 가꾸며 즐기고 싶은지부터 우리 어른들 스스로 살피며 골라서 걸어갈 노릇입니다.

 

 우리 어른들이 우리 삶을 즐기는 대로 우리 아이들한테 건네주는 셈이고, 우리 어른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우리 아이들한테 선사하는 셈입니다. 좋은 삶이든 궂은 삶이든. 아름다운 말이든 얄궂은 말이든.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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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1 14:36ⓒ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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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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