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오프 넘나드는 심은경 대사의 '광폭' 행보

[정치 톺아보기] 스티븐스 주한미대사의 '담대한 소통'

등록 2009.03.04 21:35수정 2009.03.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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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주한미국대사로 부임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는 스티븐스 대사가 대사관 직원들로부터 영접을 받고 있다. ⓒ Cafe USA

2008년 9월 주한미국대사로 부임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는 스티븐스 대사가 대사관 직원들로부터 영접을 받고 있다. ⓒ Cafe USA

한국명 심은경(56). 도리스 캐슬린 스티븐스(D. Kathleen Stephens) 주한 미국대사의 광폭(廣幅) 행보가 잔잔한 화제를 낳고 있다.

 

스티븐스 대사가 부임한 것은 지난해 9월. 1883년 한미 수교 이래 한국에 부임한 첫 여성 대사다. 그런 그가 한국말까지 유창하니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그의 광폭 행보를 보면 예사롭지 않다.

 

그는 지난해 9월 23일 한국에 입국해 10월 6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장을 제정 받았다. 그후 평화봉사단(Peace Corps) 시절 원어민 영어 교사로 재직한 충남 예산중학교를 찾아 제자들을 33년만에 재회(10. 8)한 것을 시작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10. 22) ▲국립5ㆍ18민주묘지(11. 8) ▲국립민속박물관(12. 22) ▲백범기념관(1. 3) 등을 방문했다.

 

김대중, 5·18묘지, 백범기념관 방문... MB와는 '불편한 코드'

 

그는 75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처음 와서 78년 외교관으로 변신해 80년 주한미대사관 정치과 근무를 시작으로 ▲주한미대사관 정무담당관(84~87년) ▲부산 영사관 영사(87~89년)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예방해서는 "1980년도에는 주미대사관 정치과에서 근무해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에 헌신한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지금은 한미 관계뿐 아니라 한반도 지역에 중요한 시기인 만큼 김 전 대통령을 통해 해박한 고견과 협조를 듣길 바란다"고 말했다. DJ는 그가 찾은 유일한 전직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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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스티븐스 대사(왼쪽에서 두번째). ⓒ Cafe USA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스티븐스 대사(왼쪽에서 두번째). ⓒ Cafe USA

5·18묘지를 방문해서는 "(광주는) 한국을 떠난 후에도 다른 나라 민주화 관련 운동을 보며 한국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오늘 다시 방문해 보니 굉장히 감동적이다"고 방문 소감을 밝혔다. 그는 방명록에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올해 들어서는 새해 첫 방문 장소로 백범기념관을 아들과 함께 찾았다. 주한미대사의 백범기념관 방문은 처음이라고 한다. 스티븐스 대사는 "거의 2년을 기다려 이곳에 왔다"면서 "백범일지를 매우 즐겨 읽었다"고 백범에 대한 호감을 숨기지 않았다.

 

백범 김구의 암살범 안두희는 끝내 배후를 밝히지 않고 죽었다. 역사의 진실은 아직도 미궁이다. 그러나 안씨가 미군방첩대(CIC) 요원이었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백범과 미국의 관계는 '불편한 진실' 쪽에 가깝다. 미국과 김대중, 그리고 5·18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백범에서부터 김대중 그리고 광주 5·18묘역까지, 그가 찾은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와는 '불편한 코드'들이다. 심지어 이 정부는 백범의 대척점에 있는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을 미화하려다보니 백범의 독립운동까지 비하하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스티븐스 대사의 행보는 담대한 측면이 있다.

 

온-오프를 넘나드는 '심은경의 한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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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외교통상부를 방문한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스티븐스 대사. ⓒ Cafe USA

지난 2월 외교통상부를 방문한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스티븐스 대사. ⓒ Cafe USA

그의 행보는 이처럼 거침이 없을 뿐 아니라 온-오프를 넘나든다. 주한미국대사관이 개설한 온라인 커뮤니티 Café USA(http://cafe.daum.net/usembassy)에 가면 '심은경의 한국 이야기'라는 문패를 단 블로그 게시판이 있다. 그는 여기에다가 '한국에서 보낸 첫 번째 일주일'을 시작으로 '클린턴 장관의 한국 방문'에 이르기까지 24편의 글을 썼다.

 

그가 직접 쓴 글이기에 하나같이 언론에 보도된 것보다 훨씬 더 솔직 담백한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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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스 주한미대사가 5.18묘지를 참배해 방명록에 쓴 글귀. ⓒ Cafe USA

스티븐스 주한미대사가 5.18묘지를 참배해 방명록에 쓴 글귀. ⓒ Cafe USA

"1980년대 주한미국대사관에서 근무했을 당시, 저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한국이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동안 5·18 민주항쟁이 가졌던 중요성과 광주 및 그 외 지역 사람들의 참여와 희생을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정치적 미래에 대해 한국민과 수차례 대화를 나눴고 그때마다 5·18 민주항쟁 참극은 항상 등장하는 화두였습니다. 당시에도 참으로 가슴 아픈 주제였지만, 지난 달 광주를 방문하면서 격동기에 많은 이들이 겪었던 고통과 희생이 다시 한 번 떠올랐습니다.

 

특히 저는 지난번 광주를 방문했을 때는 없었던 국립 5·18 민주묘지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묘역과 박물관은 고인들의 희생을 기리는데 매우 적합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향한 한국의 노력을 아주 감동적이면서도 세심하게 전달해 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광주 방문과 추수감사절)

 

그는 또 KBS 독서 프로그램 '낭독의 발견'에 출연한 소감과 백범과의 인연을 밝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2년 전, 저는 하버드 대학교의 초청으로 한국학 연구소의 김구 포럼에서 한미 관계에 대해 연설을 했습니다. 그때 가서 <백범일지> 영어 번역본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 책을 읽고 있는데요, 책에서 저에게 감명 깊게 다가온 주제 두 가지를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그 중 하나는 김구 선생이 계속 언급했던 교육이라는 주제고, 또 하나는 이 책에서 심혈을 기울여 논한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주제입니다. 김구 선생은 미국을 방문한 적은 없지만, 진정한 통찰력을 갖고 미국의 민주주의에 관해 글을 썼습니다. 바로 그 부분을 제가 KBS에서 낭독했습니다." (낭독의 발견)

 

댓글놀이로 소통하는 스티븐스... 5일은 시민사회와 대화, 6일은 웹채팅

 

그의 글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은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보다는 한국에서 느낀 소소한 이야기까지 전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자신도 블로그에 올린 새해 인사에서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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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아들과 함께 합천 해인사를 찾아 템플 스테이를 체험한 스티븐스 주한미대사. ⓒ Cafe USA

지난 1월 아들과 함께 합천 해인사를 찾아 템플 스테이를 체험한 스티븐스 주한미대사. ⓒ Cafe USA

"Café USA를 통해 공식적이고 정책적인 입장보다는 한국에 대한 제 느낌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이 블로그를 미국 정책이나 미국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장소로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곳에서 여러분들과 한국과 미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즐거운 대화를 이어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는 또 "한국어 읽기 속도가 현저히 느리지만, 저는 주한미국대사관 한국어 웹사이트와 Café USA에서 한국어 읽기를 연습하곤 한다"면서 "여러분들의 댓글과 게시물을 읽는 것도 저에겐 매우 좋은 연습이고, 여러분들의 추천 영화와 장소도 감사하게 잘 읽고 있다"고 밝혀 댓글을 통해서도 네티즌과 소통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가 6일에는 누리꾼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는 웹채팅(Web chat) 시간을 갖는다. Café USA 운영팀에 따르면, 6일(금) 오전 10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되는 이번 웹채팅은 전반적인 한미관계와 관련한 대화와 함께, 아울러 '심은경의 한국 이야기'에서 나누었던 소소한 이야기를 읽고 평소에 궁금했던 점에 대해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웹채팅은 통역을 수반해 한국어로 진행된다.

 

또 스티븐스 대사는 웹 채팅에 앞서 5일 저녁에는 민간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이사장 : 김창국, 상임이사 : 박원순) 초청으로 '오마바 행정부와 미국의 변화 전망'을 주제로 한 '희망의 길을 열어가는 3월의 대화마당'에 참석해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고조 상황에 대해 한국 시민사회와 대화의 자리를 갖고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만큼이나 담대한 그의 온-오프를 넘나드는 행보와 잔잔한 글이 앞으로 한미관계에 어떤 변화를 낳을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기사가 나간 지 1주일 뒤(3월 10일)에 주한미대사관 공보팀 관계자는 "스티븐스 대사는 80년 중국 꽝조우에서 영사 및 공보 업무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으며,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도 예방했다"고 알려왔습니다. 
#심은경 #스티븐슨 대사 #주한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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