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에 있는 남중에서 펴낸 교지 <남중>입니다. 전국 어느 곳이나 '남중'과 '남고'라고만 이름을 적는 학교가 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최종규
어쩌면 앞으로 몇 해가 더 가면, 제가 다닌 고등학교뿐 아니라 우리 나라 거의 모든 학교에서 교지를 아예 안 엮을는지 모릅니다. 몇 군데 학교에서 가까스로 이름만 이어나갈는지 모릅니다. 하기는, 요사이는 대학교에서도 교지를 잘 안 엮을 뿐더러 아주 얇고 가벼워지기까지 하는데, 고등학생 된 아이들이 무슨 교지를 엮거나 보려 할까 싶고, 교지를 들출 틈 하나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부질없는 생각이요, 쓸데없는 느낌이요, 하릴없는 몸부림인가 싶으면서도, 낯설고 물선 다른 학교 낡은 교지를 가만히 쓰다듬어 봅니다.
잡지 《서랑》(서울편집디자인스쿨) 1호(1992.여름)를 봅니다. 몇 호까지 냈을지 궁금한 잡지입니다. 책을 이야기하겠대서 '書'랑인 잡지라, 1990년대 첫머리 책마을 자취를 여러모로 더듬어 보게 됩니다. 이런 잡지도 있었네 하고 빙그레 웃으면서 한 쪽 두 쪽 넘기는데, 큰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꿈꾸지 않고 조촐하게 펴내던 잡지 흐름이 오늘날에는 얼마나 있는지 곰곰이 되새기게 됩니다. 잡지란 돈이 아닌 '너른 목소리'에 따라 내야 하지 않느냐고, 더 많은 독자가 아닌 더 너른 독자를 바라보아야 하지 않느냐고, 한두 번 내고 끝이 아니라 열 백 천이라는 숫자를 하나하나 잇고 쌓으면서 우리 삶터와 생각이 골고루 살찔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책을 이야기하는 잡지, 책이야기를 다루는 잡지, 책에서도 어린이책을 다루는 잡지, 청소년책을 다루는 잡지, 어른책을 다루는 잡지, 늘그막에 즐기는 책을 다루는 잡지, 동네책방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 헌책방을 다루는 잡지, 도서관을 다루는 잡지, 책 유통을 다루는 잡지, 편집자 이야기를 싣는 잡지, 영업자 삶을 담는 잡지, 디자인과 인쇄를 말하는 잡지, 잘 팔리는 책을 알리는 잡지, 갈래에 따른 잡지, 1인출판을 보여주는 잡지, 번역을 북돋우는 잡지, 글쓰기를 이끄는 잡지, …… , 이 잡지가 있고 저 잡지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고르고 너른 잡지가 저마다 제 목소리를 꾸밈없이 맑고 환하게 퍼뜨리면서 우리들 다 다른 꿈과 넋을 키울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다 다른 헌책방에서 다 다른 헌책을 만나고, 다 다른 새책방에서 다 다른 새책을 만나며, 다 다른 도서관에서 다 다른 장서를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생각합니다.
(3) 책 하나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