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59) 수지타산

[우리 말에 마음쓰기 591] ‘수지타산 맞지 않는 농사’ 다듬기

등록 2009.03.27 20:10수정 2009.03.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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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지타산 맞지 않은 농사

.. 수지타산 맞지 않은 농사 지어서 뭐 하느냐고, 이 세계화 시대에 도무지 계산 맞지 않은 고생은 할 필요가 없다면서, 그들은 도시에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일한 뒤에 시골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  《공선옥-마흔에 길을 나서다》(월간 말,2003) 122쪽


"계산(計算)이 맞지 않은 고생(苦生)을 할 필요(必要)가"는 "셈이 맞지 않게 애쓸 까닭이"나 "돈이 안 되는 일에 애쓸 까닭이"로 손질합니다. '열심(熱心)히'는 '부지런히'나 '땀흘려'로 다듬고, '여행(旅行)'은 '나들이'로 다듬으며, '떠나는 것이다'는 '떠난다'로 다듬어 줍니다.

 ┌ 수지타산 : x
 ├ 수지(收支)
 │  (1) 수입과 지출을 아울러 이르는 말
 │   - 수지 균형을 맞추다
 │  (2) 거래 관계에서 얻는 이익
 │   - 수지가 맞는 장사 / 이제 와서 손해를 보느니 수지를 보느니
 ├ 타산(打算) :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 헤아림
 │   - 타산이 빠르다 / 타산이 맞다 / 타산에 밝다
 │
 ├ 수지타산 맞지 않은 농사
 │→ 벌이가 안 되는 농사
 │→ 돈 안 되는 농사
 │→ 돈 못 버는 농사
 │→ 돈 만지기 어려운 농사
 └ …

'수지타산'이라는 낱말은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낱말을 아주 자주 씁니다. 그러면서도 이 낱말이 어떠한 뜻인지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합니다. 나아가, '수지'와 '타산'이 저마다 어떤 뜻인지 올바르게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그러니 두 낱말을 겹으로 쓸 테지요.

어쩌면 '근심걱정'이라는 낱말처럼 '수지 + 타산'을 쓰지 않느냐 싶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뜻이 같은 낱말을 겹으로 쓰면서 우리 느낌이나 생각을 좀더 힘주어 말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수지'와 '타산'은 얼마나 쓰임새가 있을까 살펴봅니다. 우리들은 이 두 가지 낱말을 우리 삶 구석구석에 알뜰살뜰 쓸 만한가 헤아려 봅니다. 우리들이 이 두 가지 낱말을 쓰지 않는다면 우리 생각이나 느낌을 담아낼 수 없을까 곱씹어 봅니다.


 ┌ 수지가 맞는 장사 → 벌이가 잘 되는 장사 / 벌이가 좋은 장사
 ├ 손해를 보느니 → 수지를 보느니 돈을 잃느니 버니
 ├ 타산이 빠르다 → 셈속이 빠르다
 ├ 타산이 맞다 → 벌이가 괜찮다 / 벌이가 된다
 └ 타산에 밝다 → 돈에 밝다 / 돈벌이에 밝다

1990년이었나 1993년이었나, 나라에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컴퓨터'라는 낱말을 걸러낼 토박이말을 빚어내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뜻있는 사람들은 진작 '셈틀'이라는 낱말을 쓰고 있었는데 이처럼 쓰이던 낱말은 뒤로 젖히고 아예 새로운 말을 빚겠다고 하며 '국민 공모'를 한 끝에 나라에서 뽑은 낱말은 '슬기틀'이었습니다. 이렇게 '국민 공모'를 마친 다음 ㅈ일보는 '이제부터 이 낱말로만 씁시다' 하고 큼지막한 기사를 썼습니다만, 이런 기사를 쓴 이튿날부터 '슬기틀'은 한 마디도 안 쓰고 오로지 '컴퓨터'만 쓰더군요. 그러고는 '슬기틀'이라는 낱말은 어디에도 쓰이지 않았습니다. 제법 잘 쓰이던 '셈틀'은 덩달아 힘을 잃었고, 그나마 조금씩 퍼져나가던 흐름마저 한풀 꺾이면서 아예 잊혀집니다. 요새는 우리 말 운동을 한다는 분들조차 '셈틀'을 거의 안 씁니다.


'셈'이나 '셈속'을 가리키기도 하는 '타산'이라는 한자말을 앞에 두고 보니, 지난날 일이 떠오릅니다. 그때나 이제나 비슷한데, 한국사람들은 한국말 '셈'은 '산수놀이'로만 여겨 버릇합니다. '계산(計算)'이라는 뜻 말고는 없는 듯 여깁니다. 그렇지만 '컴퓨터'라는 낱말은 밑말이 어떻습니까. '컴퓨터'라는 낱말 밑바탕이 뭐 대단합디까. '카(car)' 같은 낱말도 그렇고요. 다만, 영어권 사람들은 오랫동안 써 오던 '카' 같은 낱말을 새로운 사회 새로운 문물에 거리낌없이 씁니다. 우리로 치면 '수레'를 '잽싸고 날렵하고 값비싼 자동차'한테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붙이는 셈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아우디나 오피러스를 두고 '수레'라 말하지 못합니다. 아니, 이렇게 말할 생각을 꿈에도 품지 않습니다.

 ┌ 돈 / 돈벌이 / 돈셈 / 셈 / 셈속
 └ 금전 / 수지 / 타산 / 경제 / 화폐

가만히 보면, 우리들은 돈을 '돈'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금전(金錢)'이니 '화폐(貨幣)'니 하고 말합니다. 돈과 얽힌 일을 익히거나 배울 때 '돈 배우기'나 '돈 학문'이라 하는 법 없이 '경제학'이라고만 말합니다. 돈 빌려 주는 일을 할 때에 '돈'이라 하지 않고 '대부'니 '대출'이니, 또 요사이는 영어로 무어라무어라 말하고 있어요.

우리 삶이 삶이 아니고, 우리 모습이 모습이 아니라고 할까요. 말만 말이 아니고 글만 글이 아닙니다. 이 땅이 땅이 아니고 이 나라 사람이 사람이 아닙니다. 제자리를 잃고 제모습을 잃고 제길을 잃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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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상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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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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