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80)

― ‘현상의 원인’, ‘사고의 원인’ 다듬기

등록 2009.04.12 18:59수정 2009.04.1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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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현상의 원인

 

.. 이렇게 아이와 부모의 생각이 맞지 않는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  《안드레아 브라운/배인섭 옮김-소비에 중독된 아이들》(미래의창,2002) 63쪽

 

 '현상(現狀)'은 "나타나 보이는 현재의 상태"를, '현상(現象)'은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사물의 모양과 상태"를, '현상(現想)'은 "보고 듣는 데 관련하여 일어나는 생각"을 뜻한답니다. 한자가 조금 달라지면서 뜻도 조금 달라지는데, 이런 말을 하나하나 낱낱이 가려서 쓴다는 일은 얼마나 어려울까요? 쉽고 깨끗한 우리 말로 누구나 잘 가려낼 만한 말을 골라서 쓰면 한결 낫지 않을는지요.

 

 ┌ 이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

 │→ 이 현상이 일어난 까닭은 무엇일까?

 │→ 이 일이 일어난 까닭은 무엇일까?

 │→ 이 일은 왜 생겨날까?

 │→ 이 까닭은 무엇일까?

 └ …

 

 '원인(原因)'을 쓰지 않고 '까닭'을 살려서 써 주면 반갑습니다. 보기글에서는 "왜 일어날까"로 다듬어 주면 좀더 단출합니다.

 

 언제나 느끼지만, 한자말을 쓴다고 해서 말투가 얄궂어지거나 우리 말씨를 잃지는 않습니다. 다만, 토박이말보다 한자말에 가까워질수록 글쓴이 스스로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잘못 물들거나 안타까이 찌드는 얄궂은 말씨가 늘어나는구나 싶어요.

 

 

ㄴ. 사고의 원인 1

 

.. 위험지역에 이렇게 어김없이 경고 표지가 있음에도 교통사고는 끊이질 않고, 사고의 원인은 대개 운전기사의 부주의 탓으로 돌아가게 된다 ..  《구 원/김태성 옮김-반 처세론》(마티,2005) 43쪽

 

 '대개(大蓋)'는 '거의'나 '으레'로 손봅니다. "운전기사의 부주의(不注意) 탓"은 "운전기사가 조심하지 않은 탓"이나 "운전기사가 마음 놓은 탓"으로 다듬습니다.

 

 ┌ 사고의 원인은

 │

 │→ 사고 난 까닭은

 │→ 사고 난 탓은

 │→ 사고가 일어난 까닭은

 │→ 사고가 터진 탓은

 └ …

 

 학생이 학교에 빠졌다면 "결석한 까닭"이나 "빠진 까닭"을 물어야겠지요. "결석의 이유"가 아니라. 어떤 일을 야무지게 해 보려 했는데 뜻을 이루지 못했다면 "실패한 까닭"을 찾아야겠지요. "실패의 원인"이 아니라. 뜻을 이루었다면 "성공한 까닭"을 찾습니다. "성공의 원인"이 아니라. 찾아야 할 것을 찾고, 잃어버린 것을 돌아봅니다.

 

 

ㄷ. 사고의 원인 2

 

.. 사고가 나면 반드시 그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여 책임자의 과실을 묻게 된다 ..  《홍선욱,심원준-바다로 간 플라스틱》(지성사,2008) 58쪽

 

 '원인(原因)'은 '까닭'으로 다듬고, '조사(調査)하여'는 '알아보아'나 '살펴서'로 다듬습니다. "책임자의 과실(過失)"은 "책임자가 저지른 잘못"이나 "그 일을 맡았던 이가 저지른 잘못"으로 손질해 줍니다.

 

 ┌ 그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여

 │

 │→ 그 사고가 난 까닭을 알아보아

 │→ 그 사고가 일어난 까닭을 살펴서

 │→ 그 일이 터진 까닭을 알아내어

 │→ 그 일이 생긴 까닭을 살펴보고서

 └ …

 

 아무리 애써서 잘했어도 잘못 끝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이 아프거나 다치면서 주눅이 들기도 하는데, 끝마무리가 좋지 않았다 하여도, 우리가 마지막까지 온힘을 다했다면 아쉬워하거나 주눅들 일은 없지 않느냐 싶어요. 좋은 열매를 맺으면 한결 나을 터이나, 좋은 열매를 맺지 못했어도 우리가 걸어온 길과 흘린 땀방울이 있으면 이 또한 좋은 보람이에요.

 

 어떤 일을 하든 어디에서 살든 누구와 어울리든, 언제나 온힘을 다하고 온마음을 쏟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큰일뿐 아니라 작은일 하나에도 아낌없이 마음을 바칠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딱히 무엇을 바라서가 아니라, 하루하루 흘러가는 우리 삶을 모두 사랑하고 아끼니까요. 즐거운 하루도 고마운 하루이고, 즐겁지 못하고 슬펐던 하루도 고마운 하루입니다. 기쁨이 넘치는 하루도 반가운 하루이며, 슬픔만 가득한 하루도 반가운 하루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내 삶을 가꾸고, 꾸밈없이 껴안으며 내 삶을 다스립니다. 늘 하는 데까지 할 뿐이며, 하다가 못 이루면 남김없이 물려줄 뿐입니다. 힘쓰고 애쓰고 마음써서 말 한 마디와 글 한 줄 빈틈없이 잘 여밀 수 있는 한편, 힘쓰고 애쓰고 마음써도 말이며 글이며 얄궂거나 아쉬운 대목이 남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한 가지씩 애쓰면 되고, 먼 앞을 내다보면서 꾸준히 힘쓰면 됩니다. 차근차근 가다듬는다는 생각으로 마음쓰면 말이며 글이며 삶이며 일이며 어느 곳에서고 우리가 뜻하고 바라는 대로 알차게 엮이리라 믿습니다. 아직 모자라고 어수룩하고 어줍잖더라도.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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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2 18:59ⓒ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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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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