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한자말 덜기 (68) 판단

[우리 말에 마음쓰기 608] ‘더 좋다고 판단했다’ 다듬기

등록 2009.04.13 10:50수정 2009.04.1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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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단 : 더 좋다고 판단

 

.. 난 아무것도 못 본 척하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했다. 수탉은 내 눈 속에서 내가 멋진 비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읽어 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  《리지아 누네스/길우경 옮김-노랑 가방》(민음사,1991) 41쪽

 

 "못 본 척하는 것이"는 "못 본 척해야"나 "못 본 척하며 있어야"로 다듬습니다. '비상(飛上)'은 '날아오름'으로 손보고, "생각한다는 것을"은 "생각하는 줄을"이나 "생각하고 있음을"로 손봅니다.

 

 ┌ 판단(判斷) :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판정을 내림

 │  - 상황 판단 / 판단 기준 / 판단 착오 / 판단 능력 / 정확한 판단을 내리다 /

 │    자기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자기의 일을 결정한다 / 선악을 판단하다 /

 │    누군가의 공작으로 판단된다 / 대표적인 사례라고 판단하고

 │

 ├ 더 좋다고 판단했다

 │→ 더 좋다고 생각했다

 │→ 더 좋다고 보았다

 │→ 더 좋다고 여겼다

 └ …

 

 한 사람을 함부로 재거나 따지는 일은 자칫 그 한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깜냥껏 어느 한 사람을 보게 되는데, 이 눈길은 올바를 수 있으나 올바르지 않을 수 있는 한편, 올바르더라도 따뜻하지 않을 수 있기에 둘레 사람을 다치게 할까 걱정이곤 합니다.

 

 누군가를 우리 멋대로 도마에 올려놓는 일은 때때로, 또는 자주 그 누군가한테 생채기를 남기곤 합니다. 누구한테는 자유와 권리가 있어서 말할 자유가 있고 글쓸 권리가 있습니다만, 제대로 살피는 눈썰미가 아닌 채 자유로이 말한다든지, 깊이 돌아보는 눈매가 아니면서 글쓸 권리가 있다고 내세운다면 어찌 될는지 근심입니다.

 

 ┌ 상황 판단 → 흐름 살핌

 ├ 판단 기준 → 생각하는 잣대 / 따지는 잣대

 ├ 판단 착오 → 생각 잘못

 └ 정확한 판단을 내리다 → 올바른 생각을 내리다 / 올바로 따지다

 

 어느 누구라 하여도 모든 일을 빈틈없이 살피거나 훑은 다음에 말을 하거나 글을 쓰기란 어렵습니다. 어쩌면 어느 누구라 하여도 이처럼 말하거나 글쓰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러나 빈틈이 생기게 된다 하여도 되도록 빈틈을 줄이도록 애써야 합니다. 스스로 빈틈이 보인다면 그때그때 고개숙여 배우면서 하나하나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터에서 스스로 모자람과 아쉬움을 다독이면서 말하고 글쓰는 분을 만나기란 퍽 어렵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겠다는데 뭐 어때서?' 히는 자유가 들먹여지고, '나는 어릴 때부터 이런 말을 듣고 써 왔는데 이제까지 아무 탈이 없었다고?' 하는 권리가 앞세워집니다. '그렇군요. 그 대목은 여태껏 몰랐는데, 왜 아무도 옳게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이제부터 하나씩 새로 배워야겠네요.' 하면서 기꺼이 새 배움길에 나서려는 분은 아주 드뭅니다. 젊은 사람 가운데에도 드물고, 나이든 사람 가운데에도 드뭅니다.

 

 ┌ 자기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자기의 일을 결정한다

 │→ 제 생각에 따라 제 일을 헤아린다

 │→ 제 뜻에 따라 제 일을 찾는다

 ├ 선악을 판단하다 → 착하고 나쁨을 따진다 / 착하고 나쁨을 가린다

 ├ 누군가의 공작으로 판단된다

 │→ 누군가 꾸몄다고 생각된다

 │→ 누군가 꾸민 일이라 여겨진다

 └ 대표적인 사례라고 판단하고 → 대표되는 일이라 보고

 

 우리가 나누는 말은 몇 가지 낱말이 짜여진 말만은 아닙니다. 사진기가 그냥 기계만이 아니고, 볼펜과 종이와 붓이 한낱 물건만이 아니듯, 낱말은 하찮거나 자잘한 조각모음이 아닙니다. 우리 온 모습이 담기는 말마디이며 글줄입니다. 우리 온 넋이 스미는 말마디이며 글줄입니다. 우리 온 삶자락이 배어드는 말마디이며 글줄입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마디에 우리 생각과 마음과 뜻이 보여집니다. 우리가 나누는 글줄에 우리 넋과 얼과 마음가짐이 드러납니다. 우리 스스로 느끼지 못할 때가 있으나, 이와 같은 말을 듣고 글을 읽는 사람은 차근차근 느낍니다.

 

 ┌ 판단 :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판정을 내림

 ├ 인식 :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앎

 ├ 판정 : 판별하여 결정함

 ├ 분별 : 서로 다른 일이나 사물을 구별하여 가름.

 ├ 판별 :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여 구별함

 ├ 구별 : 성질이나 종류에 따라 나타나는 차이

 │

 ├ 판단 1 = 인식 = 판단

 └ 판단 2 = 판정 = 판별 = 판단

 

 국어사전에서 한자말 '판단' 뜻풀이를 차근차근 헤아립니다. '판단'이란 '인식'하거나 '판정'하는 일이라 풀이하는데, '인식' 뜻풀이를 살피니 '판단'히는 일을 '인식'이라고 적어 놓습니다. '판정'은 어떤 일인가 싶어 주욱 돌아보니 '판별'을 거쳐 '판단'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국어사전을 들추면서 낱말뜻을 헤아리면, '판단 = 판단'인 셈입니다.

 

 ┌ 생각하다 / 헤아리다 / 여기다 / 보다

 ├ 살피다 / 살펴보다 / 돌아보다

 ├ 가리다 / 따지다 / 가누다 / 가늠하다 / 재다

 └ …

 

 토박이말 '생각하다'와 '헤아리다'와 '여기다' 들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아도 낱말풀이는 엇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저런 돌림풀이를 거쳐 처음 찾아보려던 낱말로 돌아오리라 봅니다.

 

 이리하여 좀더 곰곰이 살펴보게 됩니다. 국어사전만으로는 우리 말을 제대로 익힐 수 없고 알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우리 말 씀씀이를 더욱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하나 따지고 엇비슷하게 쓰이는 말을 견주면서 요모조모 가늠합니다. 어느 자리에는 어느 낱말을 넣을 때가 한결 알맞는가를 잽니다. 어느 때에는 어느 낱말이 잘 어울리는가를 헤아립니다. 홀로 이런저런 바른 쓰임새를 찾기란 수월하지 않으나, 정부 국어사전을 비롯해 한글학회 국어사전과 민간 출판사 국어사전에다가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책을 들여다보면서 곱씹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은 일이며, 이런 일을 해 보아야 돈이 나오지 않습니다만, 스스로 즐거우니 찾아보고, 돈이 안 되는 일이라 더욱 기쁘게 찾아봅니다.

 

 그러는 가운데 제 깜냥껏 생각줄기 하나를 마련합니다. 한자말 '판단'이란 딱히 쓸모가 없는 낱말이라고, 우리로서는 '생각하다' 한 마디로 넉넉한 가운데, '따지다'나 '살피다'를 흐름에 따라 알맞게 넣어 주면 넉넉하다고 깨닫습니다.

 

 한 마디 말이라도 가장 싱그럽고 올바른 말을 하도록 땀흘려 알아본 다음 펼쳐야 한다고 느낍니다. 한 줄 글이라도 가장 따스하고 아름다운 글을 적도록 온 품을 들여 헤아린 다음 나누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고 이렇게 하시고 저렇게 하시라 이야기하기 앞서, 저부터 저 스스로 어떤 말을 붙잡고 어떤 글을 다잡아야 하는가를 가눕니다. 생각과 삶과 일거리를 슬기롭게 여미어낼 말과 글이란 어떻게 추스르게 되는가를 따집니다. 아직은 어설프고 서툴더라도 차근차근 나아갈 빛접은 말과 고운 글은 어떻게 다스리게 되는지를 가늠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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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3 10:50ⓒ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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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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