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진짜배기 체험하려면

[걷고 싶은 길 ⑤] 잊혀진 흙길이 있는 제주 하가리 올레

등록 2009.05.16 12:14수정 2009.05.16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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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잣동네에서 가장 긴 올레 ⓒ 김강임


도심사람들에게 올레는 승강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시키면 승강기를 타야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리니까요. 승강기 버튼 하나만 누르면 눈 깜빡 할 사이에 현관 앞까지 도착하게 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콘크리트 벽 뿐입니다.

'올레'란 제주어로 '집 대문에서부터 거릿길까지'를 말합니다. 한 마디로 '집으로 가는 길'이지요. 하지만 도심사람들에게 올레는 그저 시멘트 바닥과 콘크리트 벽이 전부입니다.


최근 제주올레가 뜨기 시작하면서 너도나도 올레 탐방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제주올레는 바람과 외세의 힘에 맞서 척박한 땅을 일구고 살아왔던 제주인의 정서가 깃든 길입니다. 포장하지 않은 울퉁불퉁한 흙길, 돼지 분뇨 냄새가 풍기는 힘들고 가난했던 흔적의 길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간혹, '제주올레'하면 알싸하고 짜릿한 환상올레를 떠 올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척박한 제주인의 삶, 속살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올레가 있습니다.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올레입니다. 지난 5월 2일,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 보았습니다.

감귤 꽃 향수가 돌담을 넘는 하가리 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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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리 마을 주민 올레를 걷는 하가리 마을 주민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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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돌담길 올레 ⓒ 김강임


길을 떠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지요. 더욱이 처음 걷는 길에 대한 기대는 큽니다. 하가리 올레로 떠나던 날 하늘에는 구름 한 점이 없었습니다. 제주공항에서 서쪽으로 1132번 도로를 타고 30분 정도 달리면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마을에 도착합니다. 마을길에 접어들자, 하얗게 핀 감귤 꽃 향수가 돌담 너머로 품어 댔습니다.

해발 80m 정도에 위치해 있는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마을은 오염되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는 마을입니다. 이곳은 전국에서 공기가 제일 맑은 청정지역이기도 하지요. 이 마을이 특별한 이유는 자연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올레길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가리 마을에서 가장 큰 거릿길을 기웃거리다가 드디어 하가리 마을회관 앞에 차를 주차했습니다. 마을회관 옆으로는 거릿길이 있었습니다. 거릿길을 따라 걷다보니 잣동네 올레가 열리더군요. 거릿길의 넓이는 4m 정도 됩니다. 농촌의 길 치고는 꽤나 넓습니다. 이 거릿길은 마을사람들의 생계수단인 경운기와 오토바이, 자동차가 쑥쑥 빠져 나갈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큰길로 연결되는 길이기도 하지요. 거릿길은 다시 갈래갈래 찢어진 올레길로 이어졌습니다. 

그 집이 그 집 같고, 그 길이 그 길 같은 하가리 올레길, 넓이는 3m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가리 올레엔 검은 흙길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에 따라 발길 닿는 곳은 어디든 시멘트로 포장해놓은 요즘, 오랜만에 흙길을 밟게 돼 기분이 좋았습니다.

돌담 너머로 하가리 마을 사람들의 속살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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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리 올레 3-4m나 되는 하가리 올레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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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 이어진 올레 원형 그대로 보존된 하가리 올레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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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올레 돌담올레 ⓒ 김강임


하가리 올레길의 또다른 특징은 대부분이 돌담길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꼬불꼬불 이어진 곡선 길입니다. 무슨 사연이 그리 많아 거릿길에서 대문까지 굽이굽이 돌아가야만 했을까요. 한 구비 돌아가니 대문 없는 초가가 나오더니, 또 한 구비 돌아가니 초가를 개량한 슬레이트 지붕이 나타났습니다. 물론 올레를 통해서야만 대문까지 들어갈 수 있었지요. 

올레를 둘러싸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에서 가장 키가 큰 것은 팽나무입니다. 그리고 팽나무 앞에서는 여지없이 거릿길이 두 세 갈레로 갈라지더군요. 허름한 집과 우영밭(자투리 텃밭), 고목이 무슨 풍경이냐고 반문 할 테지만, 올레와 어우러진 풍경은 말 그대로 동양화입니다. 그리고 그 동양화 자체가 바로 마을사람들의 속살이지요. 온화하고 따뜻하고 넉넉한 그림이었지요.

하가리 마을 잣동네에서 진짜 긴 올레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거릿길에서부터 대문까지 300m 정도 될까요. 바당올레, 마장올레, 생이기정올레, 오름올레만 장관인줄 알았는데, 넝쿨식물들을 칭칭 감고 있는 돌담길 올레 또한 장관입니다. 올레 모서리에 자라는 무성한 잡초는 신록의 계절을 암시했습니다. 요즘은 시골길도 제초제를 뿌려 풀 한포기 자라나지 않고 삭막합니다. 그러나 하가리 잣동네에서 진짜 올레를 걷다보니 숲길을 걷는 것 같더군요.

제주올레와 궁합이 가장 잘 맞는 것이 있다면 돌담이지요. 올레길에 쌓아올린 돌담은 제주만이 지닌 브랜드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올레길 돌담은 한결같이 나지막합니다. 때문에 옆집의 근황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지요. 담을 높아 쌓아 주변과 단절되거나 이웃과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도심의 올레에 비하면 나지막한 돌담은 소통의 담입니다. 그리고 제주사람들은 그 올레길 돌담 위에 곡식을 말리기도 하고 이불을 말리기도 하지요.

올레꾼의 여백을 채워주는 화장실 문화 '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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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밭 우영밭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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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올레 초가올레 ⓒ 김강임


올레를 걷다가 집집마다 펼쳐진 우영밭(텃밭)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땅에 빼곡히 심어놓은 양파와 상추 등의 채소들이 마을사람들의 모습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군요. 우영밭에 정겨움이 넘쳐나고요. 이 우영밭은 마을 사람들이 자급자족 할 수 있는 터로 서울 강남의 어느 땅 보다도 기름지고 영양가 있는 보물이지요.

하가리 올레에 숨어 있는 보물이 또 하나 있다면 제주도민속자료로 지정된 제주초가입니다. 제주도 민속자료 제 3-8호로 지정된 초가로 들어가는 올레를 걸어봤습니다. 10m 정도나 될까요. 짧은 올레에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주렁주렁 달려 있던지요. 콘크리트 대신 흙 담으로 벽을 쌓고 띠로 엮어 놓은 지붕, 초마 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이엉이 절집의 풍경 같았습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예전 제주사람들 화장실 문화였던 통시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통시는 옛사람들의 불편했던 삶의 한 조각이었지요. 하지만 올레꾼에게는 여백을 채워주는 넉넉한 그림이었습니다.

하가리 올레가 정겨운 이유는 대부분 대문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열려진 공간의 넉넉함, 믿음이 살아있는 공간, 더불어 산다는 것이 바로 대문 없는 하가리 올레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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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그대로의 올레 원형그대로 보존된 올레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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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없는 올레 대문 없는 올레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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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에서 마을집 엿보기 하가리 주민이 살고 있는 집 엿보기 ⓒ 김강임


한때 문화재 지정까지 고려했을 정도로 문화재적 가치가 숨어 있는 하가리 마을, 미로처럼 엮어진 길을 1km 정도밖에 걸을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검은 흙길을 걷다보니 흙속에서 삶을 일구고 살아왔던 척박한 섬사람들의 속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주올레를 걷는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다이어트 효과를 주기도 하고, 명상과 치료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길을 걸으며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걸어온 만큼의 과거를 돌아보고, 걷고 있는 지점에서 '현재의 나'를  발견하기도 하지요. 더욱이 걸어야 할 새로운 길에 대한 기대감은 곧 희망입니다. 하가리 올레, 그 길을 걷다보니 가슴이 훈훈해졌습니다. 물론 감춰 둔 속살을 벗기는 작업을 시도할 수 있었지요.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제주공항-노형노타리-1132번도로-구엄-하가리마을(왼쪽에 하가리 표지석에서 좌회전)-하가리 마을회관.


덧붙이는 글 찾아가는 길: 제주공항-노형노타리-1132번도로-구엄-하가리마을(왼쪽에 하가리 표지석에서 좌회전)-하가리 마을회관.
#올레 #걷고 싶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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